子曰 三年無改於父之道 可謂孝矣
자왈 삼년무개어부지도 가위효의
-공자가 말했다. "삼 년 동안은 부친의 도를 고치지 않아야 효라고 말할 수 있다."
<학이> 편 11장(子曰 父在觀其志 父沒觀其行 三年無改於父之道 可謂孝矣 자왈 부재관기지 부몰관기행 삼년무개어부지도 가위효의 / 공자가 말했다. "부친이 생존해 계실 때는 뜻을 살피고, 돌아가시면 행적을 살피라. 삼 년 동안은 부친의 도를 고치지 않아야 효라고 말할 수 있다.")에 들어있는 내용의 일부가 그대로 다시 쓰였습니다. 아래에 <학이> 편 11장의 해설을 고스란히 옮깁니다.
<학이學而11>-무개無改
효의 가치를 최상위에 두었던 공자다운 말입니다. 효에 대한 공자의 인식은 자식과 부모로서의 자신의 삶에서 길러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역시 인간이었기 때문이지요.
하급 무관이었던 공자의 부친은 첫 부인과의 사이에서 딸 여럿을 두었으나 아들은 하나뿐이었습니다. 혼란한 시대인만큼 외아들에게 변고가 생길 경우를 염두에 두었겠지요. 대가 끊기는 상황 말입니다. 나이 칠십에 그는 열 여섯 살의 처녀를 첩으로 맞았고 공자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삼 년 후에 세상을 떠났지요. 세 살의 어린 공자가 아버지의 부재를 실감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의 성장 과정에서 서자라는 자신의 신분이 주는 서러움과 함께 사춘기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주요 기제 중 하나로 작용했겠지요.
삼천 명에 달하는 제자를 양성했지만 공자는 아들 백어(공리)를 직접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논어>> <계씨편季氏第> 16장에 있는 진항과 백어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공자의 자식 교육 방식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시를 아느냐?"고 물어 <<시경>>을 공부하게 하고, "예를 아느냐?"고 물어 <<예기>>를 공부하게 하는 식이었지요. 우리는 이를 '가르치는 자'로서 공과 사를 구분하는 자세라고 볼 수 있지만 동시에 '낳고 기르는 자'로부터 받아야 했던 부정父情의 결핍에 따른 감성적 한계로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우리는 효에 대한 공자의 말에서 현재의 삶에 수용할 수 있는 통찰을 얻는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공자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의 입장과는 달라야 하지요.
여기에서의 관觀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살피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기지'는 부친의 심정을 잘 헤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행行은 행적行跡으로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부친의 삶이 어떠했는지 그 자취들 더듬어 보고 기리며 본받을 점은 자신의 삶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취지로 '관기행'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 이전에 한 명의 사람이지요. 사람은 일생을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수립하고 그렇게 수립된 가치관을 삶의 철학 삼아 자기의 길을 걸어갑니다. 모든 사람의 길에는 시행착오의 흔적이 남아 있기 마련이며, 때로는 그 흔적 자체가 길로 남기도 합니다. 누구나 후대의 눈에 반듯한 길을 물려줄 수는 없지요. 중요한 점은 자식 눈에 아버지가 걸어 간 길이 구불구불해 보인다고 해서 실제로 그렇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의 삶 속에 녹아 있는 한 인간으로서의 욕망과 회한, 그리고 사연을 알지 못하고는 평가 자체를 할 수 없는 것이지요. "왜 이때 하필 이런 어리석은 선택을 하신 거지?"와 같은 사후적 판단을 하는 것이야말로 주제넘은 짓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삼년무개어부지도'를 적어도 부친의 죽음을 추모하는 삼 년 간은 주관적인 잣대로 부친의 삶을 재단하지 말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공자는 자기 부친의 삶의 행적을 따라가 보았을까요? 그랬다면 그는 그것이 자신에 의해 가치 판단될 수 없는 성격의 것임을 알지 않았을까요? 뉘라서 죽은 뒤의 우리의 삶에 대해 함부로 논할 수 있을까요? 부모의 삶을 평가하지 말고 인간의 것 그대로 인정하라, 공자의 표현 '무개無改'에서 저는 이런 공자의 말이 들리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