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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Jun 24. 2022

일상의 논어 <공야장公冶長9>-후목분장朽木糞牆


宰予晝寢 子曰 朽木不可雕也 糞土之牆不可杇也 於予與何誅 子曰 始吾於人也 聽其言而信其行 今吾於人也 聽其言而觀其行 於予與改是

재여주침 자왈 후목불가조야 분토지장불가오야 어여여하주 자왈 시오어인야 청기언이신기행 금오어인야 청기언이관기행 어여여개시


-재여가 낮잠을 자자 공자가 말했다. "썩은 나무에는 조각할 수 없고 분토로 쌓은 담장에는 칠을 할 수 없다. 여에게 무엇을 책망하겠는가?" 공자가 말했다. "처음에 나는 사람에 대해 그의 말을 들은대로 행실을 믿었지만 지금은 사람에 대하여 그의 말을 들어도 행실을 살핀다. 여로 인하여 이렇게 바뀐 것이다."    



재여는 공문십철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선진先進> 편 2장에 '언어재아자공言語宰我子貢'이라고 하였으니 지적인 능력이 자공 못지 않았을 것입니다. 재여는 이 구절을 제외한 논어의 다른 대목들에서는 재아宰我나 여로 등장합니다. <양화陽貨> 편 21장에서 공자가 불인不仁하다고 규정한 제자이지요. 


지智가 아니라 인仁을 최우선 가치로 삼은 공자의 눈에 재여는 머리 좋고 학식 높은 것만 믿는 작은 그릇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주역>> 1괘 중천건괘重天乾卦 <대상전>에서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天行健 君子以 自彊不息 천행건 군자이 자강불식 / 하늘의 운행이 굳건하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스스로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쉬지 않는다.' 이런 군자관을 가진 공자에게는 재여의 낮잠을 긍정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단지 어느 하루의 낮잠 문제가 아니라 평소의 언행불일치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모습으로 받아들여졌을 테지요.      


공자의 은유는 재여가 완전히 공자의 눈 밖에 난 상황임을 알게 해줍니다. 조각이 불가능한 썩은 나무, 깨끗한 흙으로 덧칠해 봐야 거름 냄새를 막을 수 없는 담장과 같다고 했으니 그야말로 구제불능의 인간으로 본 것이지요.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 주었던 공자는 재여로 인해 사람의 말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고 고백합니다. 공자 정도의 성인이 이렇게 말할 정도이니 재여가 어지간히 엉망이었던 모양입니다. 우리 역시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은 신뢰하기 어렵지요. 지금 우리는 그런 지도자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모든 악재는 무조건 전 정권의 책임이라며 입에 게거품을 물고 그를 찬양하기에 여념없는 자들이여, 그대들에게 무엇을 책망하겠는가? 낮잠들이나 늘어지게 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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