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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Jun 25. 2022

일상의 논어 <공야장公冶長10>-강욕剛慾


子曰 吾未見剛者 或對曰 申棖 子曰 棖也慾 焉得剛

자왈 오미견강자 혹대왈 신장 자왈 정야욕 언득강


-공자가 말했다. "나는 아직 강한 자를 보지 못했다." 어떤 사람이 이에 대해 말했다. "신장이 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장은 욕망이 있는 것이지 어찌 강을 얻은 것이겠는가?"



과 욕대비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강을 강직함, 욕을 욕망으로 보면 신장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뚜렷하여 사람들에게 자기 의지가 결연한 사람의 인상을 풍기는 인물로 보입니다. 하지만 공자는 그런 것은 강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고 있지요.


그렇다면 공자가 말하는 강의 개념에 대해 사유해야 할 일이 남았습니다. <<주역>>에서 강유剛柔는 음양陰陽의 질質적 측면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강이 양이고 유가 음이지요. 음양이라는 기氣의 운동성을 통해 강함과 유함이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인식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세상의 변화란 강유의 섞임과 어울림에 기인하는 것이지요. 


핵심은 주역에서 강유가 기본적으로 각각 군자와 소인의 속성을 대표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공자가 말한 강자剛者란 곧 군자로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군자의 성정으로서의 강剛이란 욕망의 실현을 향한 강인強靭함 따위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곧 앞에서 보았던 자강불식自彊不息의 강입니다. 하늘의 운행(天行)의 굳건함(健)을 본받아 몸과 마음을 스스로 가다듬는 강強함입니다. 자강불식의 강을 강彊과 강으로 함께 쓰는 까닭입니다.


자기 계발서에서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인정 받는 사람들이 강조하는 수십 가지에 이르는 성공과 승리의 법칙이란 위 구절의 혹자와 같은 현대인들에게 강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해 볼 일입니다. 그 많은 자기 계발서들은 왜 현대인들을 구원하는데 실패했는지 말이지요. 공자는 말합니다. "그런 것은 사람들의 마음에 내재된 욕망을 자극할 뿐이다. 진정한 강함이란 욕망을 쫓는 불굴의 질주가 아니라 하늘의 뜻에 순응하기 위한 절제와 성찰의 일상적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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