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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Jun 26. 2022

일상의 논어 <공야장公冶長11>-무가저인無加諸人


子貢曰 我不欲人之加諸我也 吾亦欲無加諸人 子曰 賜也 非爾所及也

자공왈 아불욕인지가저아야 오역욕무가저인 자왈 사야 비이소급야


-자공이 말했다. "제가 사람들이 저에게 가하기를 원치 않는 만큼 저 역시 사람들에게 가하지 않고자 합니다." 공자가 말했다. "사야, 네가 이를 바가 아니다."



더할 가(加)는 '가하다' 곧 '타인으로 하여금 어떤 행위를 하도록 영향을 끼치다'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타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나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지요. 흔히 '채찍을 가하다, 일침을 가하다, 철퇴를 가하다' 등과 같은 관용구로 쓰이는 데서 이 글자를 통해 자공이 의도한 바를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자의 평가는 냉정합니다. "너는 지智하지만 인仁하지 않다. 그러므로 인의 경지에 도달해야 할 수 있는 그 일을 너는 하기 어렵다"의 뉘앙스이지요. 안회 수준이 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조차도 인하다고 자처하지 않은 공자가 안회에 대해서는 인을 분명하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공자의 인을 학문적으로 파고들면 수많은 학자들의 해설과 만나게 됩니다. 위의 공자의 인식에 따르면 인에 대한 지식을 통해 우리의 지혜가 깊어진다고 해서 우리가 인에 저절로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므로 여기에서는 현대적 상식이라는 우회로를 타고 인에 접근해 보려 합니다. 물론 지혜롭지 않은 자가 인한 존재가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점 역시 상식적입니다. 무지한 자는 지혜를 터득할 수도 인을 이해할 수도 없기 때문이지요.  


인의 상식적 정의는 '어짊이요 사랑이며 이를 확장한 박애'입니다. 따라서 아무나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군자 곧 현대적으로는 큰사람 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의 정신입니다. 학문적, 종교적 리더의 덕목입니다. 종합적인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정치적 지도자에게도 반드시 요구되는 정신 수준입니다. 


고 신영복 선생님의 글씨체를 본 떠 만든 어깨동무체로 새겨진 국가정보원의 원훈석이 교체된다고 하지요.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을 버리고 김종필이 지은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를 다시 쓴다고 합니다. 우리 현대사에서 중앙정보부와 안전기획부의 역사는 공작과 탄압의 그것 그 자체입니다. 독재의 음습한 그림자가 바야흐로 우리의 머리 위를 뒤덮고 있는 중이지요. 


국정원 원훈석 교체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여당 원내대표의 말을 실은 언론 기사의 한 대목은 이렇습니다. '권 원내대표는 "지난 정부는 통혁당 간첩 사건으로 복역한 신영복의 글씨를 국정원 원훈석에 새겼다. 간첩 잡는 국정원에 간첩 혐의자의 서체를 가져온 것"이라며 "이것은 안보에 대한 무시인가, 아니면 조롱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국정원과 국가 안보를 철저하게 망가트린 민주당이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새 정부의 인사 조치를 비판할 수 있는가"라며 "새 정부 들어 국정원은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초대 원훈을 복원했다. 이것은 국정원 정상화의 시작일 것"이라고 강조했다.'(뉴시스, 2022년 6월 25일.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3/0011267405?sid=100


참으로 끔찍한 인식이 아닐 수 없지요. 중앙정보부에 의해 상당 부분 부풀려지고 왜곡된 통혁당 사건을 빌미로 고인을 폄훼하는 것은 물론 온갖 궤변으로 사실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시대의 지성을 간첩 협의자로 낙인찍는 역사에 대한 몰이해와 무사유無思惟의 수준이 참으로 천박하지요. 


(참고: http://legacy.h21.hani.co.kr/section-021075000/2006/05/021075000200605110609056.html)


이러다가 우리가 사랑하는 소주 하나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일이 일어나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공자라면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요? "동아, 네가 이를 이름이 아니다."


어짊과 사랑, 박애의 마음으로 가득한 리더라면 독립적으로 운영되어야 할 권력 기관들을 손아귀에 움켜쥐려고 혈안이 되는 대신 국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덜기 위해 밤잠을 못 이루며 참모들과 논의에 논의를 거듭할 것입니다. 인仁은커녕 의예지신義禮智信 그 어떤 것도 갖추지 못한 자를 어쩌자고 리더로 선출해 놓은 것일까요? 나라의 기둥뿌리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머지 않아 펼쳐질 지옥도는 국민들의 절규로 가득 차겠지요. 


자고로 평생 낮은 자세로 살아온 사람 만이 인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습니다. 인의 경지는 높지만 그곳은 한없이 내려가는 사람 만이 다다를 수 있는 정상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인의 상식의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소주 맛이 쓰디쓴 나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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