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종호 Jul 17. 2022

일상의 논어 <공야장公冶長27_final>-호학好學


子曰 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

자왈 십실지읍 필유충신여구자언 불여구지호학야


-공자가 말했다. "열 가구 정도 사는 마을에도 반드시 나만큼 충하고 신한 사람이 있겠으나 내가 학문을 좋아하느니만 못할 것이다."



<공야장> 편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공자가 자신이 얼마나 학문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인지 밝히고 있지요.    


'작은 시골 마을 어디에나 나만큼 충하고 신의 있는 사람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지만 그런 사람들도 나만큼 공부를 좋아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학이> 편 8장에서 공자는 충忠과 신信을 중重과 학學의 기본 자세로 삼아야 한다고 했지요. 충은 충성스럽다는 뜻이 아니라 중심이 있는 것, 공익적 가치의 실천에 진심을 다하는 것의 의미입니다. 


비록 충과 신의 덕목을 갖추고 있더라도 그것이 저절로 배움을 좋아하도록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공자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특정 대상에 대한 선호를 본능적인 것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자신의 타고난 성정과 기질이 대상들에 대한 호불호를 결정한다고 인식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알지 못하고는 좋아할 수 없습니다. 영화라는 예술을 접하여 액션 스릴러, 로맨스, 공상과학 등의 다양한 장르 작품들을 감상한 경험이 축적되어야 비로소 영화의 매력에 빠지게 됩니다. 영화라는 미디어의 존재 자체를 모른 채 그것을 좋아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유한준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지즉위진애 애즉위진간 간즉축지이비도축야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 / 알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며, 보면 모으게 되지만 헛되이 모으는 것은 아니다." 대상에 대한 앎 없이 그것의 진가에 대해 눈을 뜨고 빠져들게 되는 일은 없다는 것이지요. 이 관점을 빌리면 공자의 호학은 배움을 통한 앎이 늘어날수록 공부의 매력에 자발적으로 심취하게 되는 개념입니다. 공부의 진가를 온몸과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깨우쳐 학문하기를 무엇보다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기를 멈출 수 없어 날마다 배우고 익히기를 실천하는 상태인 것입니다.


학위의 권위에 대한 사랑, 베스트셀러 작가의 명예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읽고 사유하며 글 쓰는 과정에 대한 참 사랑이 우리 안에 있을 때 우리도 호학의 단계에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상의 논어 <공야장公冶長26>-자송自訟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