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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Aug 09. 2022

일상의 논어 <옹야雍也20>-선난이후획先難而後獲


樊遲問知 子曰 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 問仁 曰 仁者先難而後獲 可謂仁矣

번지문지 자왈 무민지의 경귀신이원지 가위지의 문인 왈 인자선난이후획 가위인의


-번지가 앎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백성이 옳다고 하는 것에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면 안다고 할 수 있다." 인에 대해 묻자 말했다. "어려운 일을 먼저 하고 얻는 것을 나중에 하면 인하다고 할 수 있다."



번지는 <위정> 편 5장에서 만난 바 있지요. 계씨 집안의 가신으로서 제나라의 노나라 침공 시 좌장군을 맡아 공을 세운 염유의 수하에 있다가 공자 말년의 제자가 되어 수레를 몰았습니다. 스승을 지근거리에서 수행하니 아무래도 대화를 나눌 기회를 많이 잡을 수 있었겠지요. 그래서 논어에는 위 구절과 같은 어린 번지와 나이 든 공자의 질의응답 장면이 여러 개 나옵니다.


'무민지의'에 대해서는 여러 버전의 해석이 존재하지만 저는 민民을 본래의 뜻대로 백성으로 보아 '민지의'를 '백성의 의' 곧 '백성이 옳다고 하는 것, 백성이 정의라고 하는 것'이라고 풀이합니다. 한때 무인으로서 나라를 위해 일했던 번지임을 감안한다면 공자가 일깨우려는 앎의 의미가 '백성이 도리를 다하도록 힘쓰는 것'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앎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의 차원이지요. 국민의 뜻과 어긋난 위정자의 신념은 위험합니다. 국민은 틀리고 자신은 옳다는 오만은 국민을 지배의 대상으로 보는 데서 생겨나지요. '민심은 언제나 옳다'는 생각이야말로 위정자의 지혜로움을 증거합니다.


귀신은 현상적 물질계를 둘러싸고 있는 불가지의 정신계를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그 존재는 인정하되 심취해서는 안 된다고 공자는 말합니다. 신앙이 아닌 존중의 대상으로 삼아 객관적 거리 두기를 유지하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의 자세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사이비 종교나 무속에 대한 광적인 집착으로 인한 폐해를 떠올려 보면 공자의 조언은 매우 시의적절합니다. 신神이나 운명에 대한 인간의 접근은 오직 학문적 연구라는 수단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신학이나 종교학, 주역이나 명리학과 같은 학문이지요. 큰 틀에서 철학의 범주에 포함되는 학문들입니다. 인간의 사유 능력을 증진시키는 순기능을 수반하지요. 무조건적인 믿음으로 도달할 수 있는 높이란 기껏해야 광신도의 위치일 뿐입니다. 위정자에게는 허깨비를 모시지 말고 구체적으로 실존하는 신인 국민을 섬기라고 조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민심은 곧 천심이기 때문이지요.     


'선난이후획'은 '어려운 일 곧 공적인 일을 먼저하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사적인 일은 나중에 하라'는 것입니다. 이 표현을 통해 우리는 '무민지의'의 의미에 보다 가까이 갈 수 있게 되기도 합니다. 인사工事, 공사人事에서 '선획이후난'의 사례들이 속출하고 권력 주변에 무속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현 시국 위로 비가 쏟아졌습니다. 도심을 선제타격한 물난리를 바라보며 국민들은 다시 '이게 나라냐?', '사실상 무정부 상태'라고 말하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지요. 국민이 옳다고 하는 것에 귀기울인 적 없는 불인한 자들에게 기대한 것 자체가 무지無知의 소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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