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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Aug 24. 2022

일상의 논어 <술이述而5>-몽견주공夢見周公


子曰 甚矣 吾衰也 久矣 吾不復夢見周公

자왈 심의 오쇠야 구의 오불부몽견주공


-공자가 말했다. "많이 늙었구나. 오래되었도다, 꿈에서 주공을 다시 뵙지 못한 지가."



주공은 주나라 문왕文王의 아들이자 무왕武王의 동생입니다. 무왕의 사후 그의 아들 성왕成王을 도와 주나라 황실의 기초를 다졌고, 성왕이 장성한 후에는 스스로 황실을 떠나 노나라를 책봉 받았습니다. 곧 주공은 공자가 태어난 노나라의 시조이지요. 또한 <<주역>> 384효에 효사를 붙인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노나라의 정신적 근간을 이루는 인물로 공자가 흠모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가지고 있었지요. 


'심의 오쇠야'를 직역하면 '심하구나, 나의 노쇠함이여'의 뜻이지만 위와 같이 풀이하고 뒤에 이어지는 문장에서 원래대로 감탄문의 뉘앙스를 살리는 것이 보다 담백한 느낌입니다.


살 날이 좀 더 주어져 주역을 보다 깊이 연구할 수 있기를 소망했던(子曰 加我數年 五十以學易 可以無大過矣 자왈 가아수년 오십이학역 가이무대과의 - 공자가 말했다. "나에게 몇 년의 시간이 주어져 쉰 살에 했던 것처럼 역을 공부할 수 있다면 큰 허물은 없을 텐데...", <술이> 편 16장) 공자에게 주공은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던 존재이지요. 우리는 공자가 주공을 오매불망했던 까닭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흔히 늙으면 서럽다고 하지요. 육체가 쇠하면서 정력적으로 몸을 움직이기 녹록지 않고, 총기가 흐려지면서 생산적인 정신 활동을 이어가기 버겁게 됩니다. 물론 사람의 노력 여하에 따라 쇠멸의 과정을 지연시킬 수 있지만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지요. 공자의 탄식은 몸에 깃들어 살다 가는 인간의 운명적 삶에 대한 회한과 공부하고 가르치는 즐거움을 이어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슬픔의 복합적 감정 때문일 것입니다. 일시적이나마 감정이 북받친 공자의 모습을 통해 우리 모두는 결국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공자는 그저 늙음을 서러워하는데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주공을 얘기하는 것이 그 증거이지요. 인생의 사표師表가 되었던 존재에 대한 그리움을 끌어들임으로써 그는 후학들에게 그런 존재로 남을 수 있기를 소망하며 남은 날을 남김없이 불태우겠다는 의지를 다졌을 것입니다. 성인인 공자였기에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역시 우리의 말년을 뒷방 늙은이가 아니라 푸르디 푸른 영혼을 가진 지혜로운 어른의 모습으로 채우길 희망합니다. 후대에게 남겨야 할 것은 재산만이 아니지요. '지혜의 어른'이 되기 위해 지금 날마다 읽고 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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