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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Sep 01. 2022

일상의 논어 <술이述而11>-종오소호從吾所好


子曰 富而可求也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從吾所好

자왈 부이가구야 수집편지사 오역위지 여불가구 종오소호


-공자가 말했다. "부라는 것이 가히 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집편지사 자리일지라도 나는 하겠다. 그러나 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르겠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명제는 자기 계발서에 수두룩하게 등장하는 얘기이지요. 하지만 이미 오래 전에 공자가 한 얘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공자 이전에 이름 없는 장삼이사들도 술자리에서 다 한마디씩 했을 법한 흔한 말입니다. '죽어라고 노력했는데도 돈이 모이지 않더라, 가진 놈들이 더 갖겠다고 다 빼앗아 가더라. 에이, 더러운 놈의 세상. 너는 그냥 네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어', 이런 레파토리이지요.


공자는 부를 일구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부란 노력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지요. 돈을 벌려면 돈이 모이는 장소로 가야 하는데 혼탁한 세상일수록 그곳은 권력이 있는 곳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높은 사람이 나다닐 때 채찍을 들고 길을 터서 치우는' 일을 하는 '집편지사'의 예를 굳이 든 것이지요. 세상이 천하다고 규정한 일을 해도 위세 등등한 자를 위해 해야 떨어지는 콩고물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공자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일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될 수 있는 것이 부자라면 굳이 그 길을 좇지 않겠다는 자세입니다. 불편하고 배고프더라도 학문하는 길로 나아가겠다는 것이지요. 


길가의 풀을 뜯어먹고 살 수는 없는 것이 사람인지라 누구든 밥벌이를 해야 합니다. 수백억 원대의 연봉을 받는 CEO가 있는가 하면 최저 생계비 수준의 수입을 올리는데 급급한 노동자와 자영업자들이 있는 것이 현실이지요. 경쟁을 통해 결정된 승자가 독식하는 능력주의 세상에서 빈부의 격차는 일견 실력을 기르지 못한 개인의 문제로 보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다르게 타고난 신체 능력과 지능, 가정 환경, 불의의 사고, 질병 등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면 경제적 가난을 개인의 문제로만 보는 것은 매정한 일입니다. 그래서 21세기 선진국 대한민국을 이끄는 정부라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여 국민이라면 누구나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영위하도록 보장하는 국가상을 지향해야 마땅하지요. 


하지만 현 정부가 그려 가는 사회는 매정하다 못해 비정합니다. 노골적으로 승자들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있지요. 패자들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끼리끼리 다 처먹기 위해 회사를 만들어 직원들을 착취하는 악덕 기업들이나 하는 짓이지요. 각자도생의 시대에 돈을 좇지 말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라는 공자의 조언은 얼치기 인문학자의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공자의 말은 군더더기 없이 옳은 말입니다. 


명리학적 조언을 제공하는 사람으로서 인간의 빈부는 운명적으로 정해진 사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완전히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매우 높은 확률로 정해진 것이지요. 별도의 공부를 통해 운명적 에너지를 읽게 되기 전에는 사실상 에너지가 조화를 부리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명리학적 깨달음을 얻고 주역을 이해하게 되면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새로워지게 되지요. 1, 2년 정도 시중의 책들을 읽고 나서 '명리학은 맞지 않는다', '사주대로 사는 사람 얼마 없다' 등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배 타고 저수지를 이리저리 돌아다닌 후 '바다에 고래는 없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셈이지요.  


부자의 사주를 타고난 사람이 돈을 벌지 못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운명적 에너지 조합에 따라 번 돈을 다 날리는 일이 생길 수 있어도 일단 많은 돈을 벌기는 법니다. 부자들이 돈을 번 방법은 간단합니다. 운명적 범주에 규정된 대로 자신과 맞는 일을 한 것이지요. 자신에게 맞다는 것은 그것이 자기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가는 분야, 해야겠다고 생각되는 일, 더 나아가 하지 않으면 결국 크게 후회하게 될 것 같은 일, 이런 일이 곧 좋아하는 일입니다. 표현이 다를 뿐이지요. 


부자 사주는 흔하지 않습니다. 다들 부자 사주로 태어나게 한다면 세상에서 가난은 사라질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런 사회적 실험은 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주는 평범합니다. 특히 안정적인 직장인 구조는 직장 생활 자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기에 일시적 충동이 발생하는 때를 잘 넘기며 직장에 머무는 동안에는 삶 자체가 크게 불안정해지지는 않습니다. 경제적 문제가 야기되는 사주는 돈을 벌고 모으기가 어렵거나 벌어도 순식간에 사라지거나 꿈이 커서 작은 돈에 만족하지 못하고 무리에 무리를 거듭하는 구조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건강에 문제가 있어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하는 등의 경우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마음이 당기는 일을 하기만 하면 돈이 벌리는 부자 사주에 비해 마음이 가는 일을 해도 꼬이기만 하는 사주의 삶은 괴롭습니다.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괴로움을 모르고, 명리학을 모르면 공감이 불가능하지요. '명을 모르면 군자가 될 수 없다(不知命 無以爲君子也 부지명 무이위군자야)'는 공자의 말이 논어의 끝에 배치된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 불평등의 기원은 사주라는 시스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돈을 모으는 과정이 순탄치 않은 사주의 주인공일수록 자기에게 맞는 길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르는 채 하는 일들은 시행착오로만 남기 쉽기 때문이지요. 경험이 결과로 이어지기만 한다면 인간은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살면 됩니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풀리지 않지요. 나에게 맞는 일을 내 머리로 알아내고 내 가슴으로 동의하는 단계를 통과하지 않고는 사실상 꼬인 매듭을 풀어 부자의 길에 들어설 수 없습니다. 일반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인간 존재에 대한 통찰을 얻은 사람으로서의 말입니다. 


성취하고자 한다면 자기의 명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은 천명天命이기도 하고 소명召命이기도 합니다. 지천명할 때 소명의식이 생기는 법이지요. 나아갈 길이 또렷이 보이면 그 길 위의 일이 좋아집니다. 깨닫지 못해서 그렇지 원래부터 자신에게 맞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의 일이 비로소 성과를 향해 이어집니다. '종오소호從吾所好', 이것은 논어에서 얻을 수 있는 실천 지침 중 최우선으로 행동에 옮겨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구부득고求不得苦에 시달리기를 멈추고 자신이 걸어야 할 진정한 길과 만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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