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종호 Sep 08. 2022

일상의 논어 <술이述而18>-발분망식發憤忘食


葉公問孔子於子路 子路不對 子曰 女奚不曰 其爲人也 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 云爾

섭공문공자어자로 자로부대 자왈 여해불왈 기위인야 발분망식 낙이망우 부지노지장지 운이  


-섭공이 자로에게 공자에 대해 물었으나 자로가 대답하지 않았다. 공자가 말했다. "어찌하여 말하지 않았느냐? 그의 사람됨은 학문에 발분하면 끼니조차 잊고 즐기느라 근심도 잊으며 늙음이 다가오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고 말했어야지!" 



섭공은 '섭공호룡葉公好龍'이라는 고사의 주인공입니다. 초나라 귀족 섭공은 용을 좋아해 옷이나 술잔은 물론 집안 곳곳에도 용 그림과 조각을 장식했다고 합니다. 하늘에 사는 용이 이에 감명 받아 섭공의 집에 찾아갔는데 실제로 용을 본 섭공은 놀라 기절해 자빠졌다고 합니다. 본인의 책무는 다하지 않으면서 얼마나 '용용' 거렸으면 사람들이 이런 얘기를 지어냈을까요?


공자의 제자 자장子張이 선비를 좋아한다고 알려진 노나라 애공哀公을 찾아갔는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만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애공이 선비를 좋아하는 일은 섭공이 용을 좋아하는 일과 흡사하구나", 자장은 이렇게 말하고 떠나 버렸습니다.   


섭공은 논어 다른 대목들에도 등장합니다. 그의 사람됨을 짐작할 수 있는 유명한 구절이 <자로> 편 18장에 있습니다. '葉公語孔子曰 吾黨有直躬者 其父攘羊 而子證之 孔子曰 吾黨之直者異於是 父爲子隱 子爲父隱 直在其中矣 섭공어공자왈 오당유직궁자 기부양양 이자증지 공자왈 오당지직자 이어시 부위자은 자위부은 직재기중의 - 섭공이 공자에게 말했다. "우리 마을에는 직궁이라는 자가 있는데 아비가 양을 훔치자 아들이 그 일을 고했지요." 공자가 말했다. "우리 마을의 정직이라는 것은 이와 다릅니다. 아비는 자식이 숨도록 돕고 자식은 부모가 숨도록 도우니 정직이란 그 가운데 다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온 고사성어가 '직궁증부直躬證父'와 '직궁지신直躬之信'입니다. 


한마디로 섭공은 개념이 부족한 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자의 질문에 자로가 입을 열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너 같은 놈에게 스승님에 대해 얘기한 들 알아 처먹겠냐?', 자로의 속마음이 딱 이랬을 것입니다. 급이 낮은 섭공 같은 자에게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니 자로는 침묵을 선택한 것입니다. 다혈질의 자로가 이럴 때는 비트겐슈타인 못지 않은 모습이지요. 


공자의 대답도 재미있습니다. 만일 안회나 자공이 침묵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면 공자는 빙그레 미소지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대학생이 초등학생의 질문에 일일이 답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저 알 듯 모를 듯한 묵묵부답이 최고의 답변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공자가 농을 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섭공의 상대가 자로였기 때문이지요. '같은 초딩끼리 대답 좀 잘해 주지 그랬냐? 우리 선생님이 어떤 분인 줄 알아? 바로 이러이러하게 어마무시한 분이라구! 이렇게 말이다', 공자는 이런 뉘앙스로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자로를 상대하는 공자의 유머에 웃음이 나지 않을 없습니다. 


말할 수 없는 상대에게는 말할 수 없다는 점을 충분히 알고 있었던 자로는 충분한 속 깊이를 갖고 있었으면서 어쩌면 늘 스승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 자신의 콘셉트를 유지했던 참 좋은 제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법이라는 기준은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말이 되든 안 되든 법을 잣대 삼아 기소하고 구형하고 판결하는 과정은 말할 수 있는 것이고 글로 적을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정치와 외교는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에는 이렇게 처신하고 저럴 경우에는 저렇게 대처하면 바라는 결과가 나오는 영역이 아니지요. 그래서 말할 수 없는 것을 잘 다루기 위해서는 많은 지식과 다양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통찰력이 필수인 것입니다. 이 나라의 외교가 세계의 조롱거리로 전락한 이유와 나라가 정신 없이 망가지고 있는 까닭은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하지 않는 언론에게 공자는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요? '어찌하여 말하지 않느냐? 그의 사람됨은 술에 발분하면 끼니조차 잊고 즐기느라 근심도 잊으며 어둠이 다가오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고 말해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일상의 논어 <술이述而17>-아언雅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