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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Sep 09. 2022

일상의 논어 <술이述而19>-호고민이구지好古敏以求之


子曰 我非生而知之者 好古敏以求之者也

자왈 아비생이지지자 호고민이구지자야


-공자가 말했다. "나는 나면서 안 사람이 아니다. 옛 것을 좋아하여 그것을 구하는데 힘쓴 사람이다."



공자는 지금 하나 마나 한 뻔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가 굳이 이 얘기를 하고 제자들이 논어에 굳이 이 말을 실은 이유가 있겠지요. 


스승이 도달한 지점은 때로 제자들에게 좌절을 선사합니다. 자신들로서는 도저히 오를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높이에 고고하게 서 있는 스승은 그 자체로 거대한 벽으로 작동하기 때문이지요. 스승은 의기소침해 있는 제자들을 어떤 식으로든 일으켜 세워야만 합니다. 임제 스님이라면 '할喝'을 외치며 귀싸대기를 갈겼을 것이고, 덕산 스님이라면 주장자를 내리쳤겠지요. 옛 선승들에 비해 공자의 말은 아무래도 군더더기처럼 느껴집니다. 때로는 말의 길이 끊어진 곳에서(언어도단言語道斷)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각성이 가능한 법이니까요.  


공자는 그저 솔직하게 얘기하는 언어의 길을 택했습니다. '너희들도 호학好學의 마음을 유지하여 온고지신 하다 보면 머지 않아 나의 수준에 오를 것이다. 나 정도는 별 거 아니야. 그러니 힘내서 나를 훌쩍 훌쩍 뛰어넘도록 해라', 이런 마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지요. 


깨우친 사람만이 겸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자신보다 낫기를 진심으로 기대하지요.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을 이길 도리가 없습니다. 나의 뺨을 후려갈기는 사람은 수두룩하게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내가 넘어선 경지를 절대적으로 인식하는 자는 어리석습니다. 내가 했으면 남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나도 너도 다 올라설 때 다들 말이 필요 없는 곳에서 함께 술을 마시며 노래도 하고 춤도 출 수 있는 것입니다. 


공자 덕에 저도 주역을 공부하고 논어도 공부하여 이렇게 문자와 노닐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마음 가는 곳도 없어져 '천상천하유아독존 삼계개고아당안지 天上天下唯我獨尊 三界皆苦我當安之' 할 수 있으리란 믿음만이 남습니다. 제가 그럴 수 있으니 여러분도 모두 그럴 수 있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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