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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Sep 14. 2022

일상의 논어 <술이述而23>-오무은吾無隱


子曰 二三子以我爲隱乎 吾無隱乎爾 吾無行而不與二三子者 是丘也

자왈 이삼자이아위은호 오무은호이 오무행이불여이삼자자 시구야 


-공자가 말했다. "너희들은 내가 숨긴다고 여기느냐? 나는 너희들에게 숨기지 않는다. 내가 행하고서 너희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은 없으니, 이것이 구다."    



행行은 수행修行의 개념으로 그 중에서도 학문을 닦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공자의 제자들 중 덜된 녀석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하나를 배우면 열을 깨닫기 위해 공부에 매진하는 대신 스승의 가르침에 온전히 의존하는 어리석은 자들 말입니다. 물론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습니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비싼 수업료를 내고 하나라도 더 배워야 하는데 선생이 농담 따먹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거나 질문해도 제대로 된 답변을 안 해주거나 하면 속이 터지겠지요. 하지만 칠푼이 제자들은 지금 자신들 앞의 선생이 어느 정도 급인 지도 모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불교로 보면 중근기中根機 수준의 제자들인 것이지요. 


스승은 모든 것을 다 가르쳐 줄 수는 없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이 없다는 공자의 말도 꼭 맞는 말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말과 글로는 결코 전할 수 없는 가르침이 존재하기 마련이며 그것은 오직 스스로의 깨달음을 통해서만 알게 되는 성격의 것입니다. 분야를 막론합니다. 그럼에도 공자는 자신의 이름까지 들먹이며 자신의 솔직함을 강조하고 있지요.    


석가모니는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고 불렸던 아난阿難이 아니라 가섭迦葉에게 '말과 글로는 전할 수 없는 경지의 미묘한 법'을 전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염화미소拈華示衆의 그 현장에서였지요. 세월이 흘렀어도 아난에겐 이해되지 않는 바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어느 날 마하가섭에게 그가 묻습니다. "세존께서 금란가사를 전한 것 외에 별도로 어떤 것을 주셨습니까?" 이 말을 들은 가섭이 "아난!"하고 그의 이름을 부르자 아난이 "예"라고 답합니다. 그러자 가섭이 말합니다. "찰간刹竿을 넘어뜨려라!" 


찰간은 절 앞에 세우는 깃대입니다. 찰간을 넘어뜨리라는 것은 '오늘 설법 끝났으니 문 걸어 잠그라'는 것이지요. '스승에게서 별도로 받은 것 따위는 없다. 나는 스스로 부처가 되었기에 너의 스승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너도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아난의 이름을 부른 순간에 가섭은 이렇게 가르침을 전한 것입니다. 이름을 부르니 자동으로 대답한 것이지만 사실 아난은 이 질문에 자기도 모르게 '그렇다'고 약속한 셈입니다. 더 이상의 얘기는 불필요해졌지요.  


과거의 말과 글을 머릿속에 잔뜩 쌓아 두고 인용하는 것에 머물면 평생 아류에 머물고 맙니다. 선생의 입만 바라보고 살아서야 어느 세월에 자기로서의 말을 하고 글을 쓸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배우고 익혀 생각을 기르고 통찰력을 키워 자기 운명의 굴레조차 벗어던지며 타인과 공동체 속으로 들어가기가 한 평생을 다 바쳐도 될까 말까한 일인데 공부도 하고 술만 마시며 세월을 보내면 근본 없는 법사들의 말에 휘둘리게 됩니다. 중심中心이 없으니 눈만 껌뻑껌뻑하며 요상한 입만 쳐다보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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