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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Sep 15. 2022

일상의 논어 <술이述而24>-이사교以四敎


子以四敎 文行忠信

자이사교 문행충신


-스승께서는 네 가지로써 가르치셨다. 문행충신이 그것이다.



가르치는 자로서의 공자의 네 가지 교수敎授 원칙에 대해 얘기하는 구절입니다. 원칙 네 가지를 가지고 교육에 임했다는 것이지요. '네 가지를 가르쳤다'와 같이 해석하는 것은 터무니없습니다.  


문文은 학문學文입니다. 과거의 글들을 공부하여 축적한 깊은 지식에 근거하여 가르친 것이지요. 

행行은 덕행德行입니다. 앎의 실천을 통해 본보기를 보인 것입니다.

충忠은 진심眞心입니다. 진심을 다해 가르쳤다는 것이지요.

신信은 신의信義입니다. 제자들을 믿고 의리를 지켰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당연한 얘기입니다. 하지만 당연한 것을 실행하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지요. 예를 들어 평소에 선생이 약속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입술이 부르트도록 떠들어도 정작 본인이 약속보다 사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일이 발생하면 모두 공염불이 되고 맙니다. 선생으로서의 권위를 스스로 구기게 되지요.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논어는 깨달음이 아니라 실천의 책입니다. 누구나 실천을 얘기하지만 실천을 입 밖에 내는 순간 실천의 굴레에 갇히고 말지요. 세상은 실천에 옮겨야 할 수많은 일로 뒤덮이게 됩니다. 실천은 의지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논어가 어려운 이유는 내용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부여하는 실천의 무게 때문이지요.


서점에 들러 자기계발서 코너에서 아무 책이나 집어들어도 그 안에는 온갖 실천 사항들이 빼곡히 담겨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기 전까지 인간은 제대로 실천하기 어려운 존재라고 저는 단언합니다. 자기를 알 때 비로소 변화의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지요. 바뀐 사람은 더 이상 그 이전의 사람이 아닙니다. 달라진 사람만이 실천할 수 있습니다. 나에 대한 앎이 선행되어야 세계 속에서 나를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한 발짝 떨어져 이 시대의 풍경을 관조해 보십시오. 정신 나간 놈들의 헛소리와 헛짓거리의 환상적인 콜라보가 참으로 희극적이지 않습니까? 아무리 훌륭한 스승이 와서 네 가지 원칙을 준수하며 가르침을 베풀어도 이 놈들은 변할 수 없습니다. '네가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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