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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 Oct 06. 2021

시골에서 여는 소소한 플리마켓

어쩌다 보니 플리마켓

 집에 물건은 넘쳐나는데 모두 멀쩡한 제품이라 그냥 버리기는 아까웠다. 나는 이웃 언니들에게 "읍내에서 플리마켓을 열면 어떨까?”라고 가볍게 말을 꺼냈다. 이왕이면 필요한 사람에게 물건을 팔아 보자는 이야기였다. “근데, 이런 조그만 시골에서 플리마켓을 연다고 누가 오기는 할까?”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아무도 안 오면 우리끼리 사고팔지 뭐.”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해맑게 웃었다.

    

그렇게 농담처럼 시작된 플리마켓 프로젝트는 여름의 끝자락 무렵 본격적으로 준비가 시작되었다. 준비과정에서 플리마켓 수익금은 기부를 하자는 내용이 추가됐다. 얼마 되지 않을 것이 뻔한 수익금을 셋이 나누어 갖기도 번거로우니 이왕이면 전부 합해 좋은 일에 쓰자는 의견이었다. ‘기부’라는 명목을 더하면 벼룩시장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들도 좋은 일에 보탠다는 생각에 지갑을 더 쉽게 열지 않을까 하는 나름의 계산이 깔려있었다.


그 무렵 '로컬 크리에이터'라는 새로운 트렌드가 유행했다. 도시에서 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지역만의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한 창업이나 문화사업을 시작하는 젊은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방은 더 이상 죽어가는 퇴락한 도시가 아니라 잘만 활용하면 이미 포화상태인 도시보다 여유롭게 새로운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도전의 장이 되는 시점이었다. 거창하게 ‘창업’이나 ‘문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끼리 즐거운 놀이를 펼쳐보자는 나름의 포부가 생겼다.     

 

우리는 로컬 크리에이터라도 된 것처럼 흥이 났다. 도시와 지방을 가릴 것 없이 누구에게나 플리마켓은 익숙한 즐길 거리이다. 어차피 필요 없는 물건이니 가격을 싸게 낮추어 팔면 판매자나 소비자나 기분 좋게 물건을 사고팔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옷가게 차리고 싶어 했던 지연언니는 일일 장사를 체험해 볼 수 있다며 흥분했다. 문제는 판매할 물건을 모으는 일과, 플리마켓을 실현할 장소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는 모두 과거 ‘소비의 여왕’이었고, 집안에 남아도는 옷과 물건이 많았다. 게다가 각자의 지인들에게 부탁하니 제법 괜찮은 물건들이 많이 모였다. 서울과 청주 등지에서 깨끗한 옷이 담긴 택배가 도착했다.

 물건을 해결했으니 다음은 마켓을 열 장소.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면서도 너무 초라해 보이지 않는 장소가 필요했다. 처음에는 벼룩시장답게 야외에서 열어보자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셀러가 적은 소규모 마켓이라 야외에서는 오히려 휑하고 썰렁해 보일 것 같았다. 게다가 여름의 끝무렵이라 바깥은 찜통이었다. 날씨에 구애를 받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이 쉽게 올 수 있는 장소, 시골 장터 같지 않게 분위기도 괜찮은 곳.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카페를 생각하게 되었다.      


쾌활하고 외향적인 성격의 지연언니와 짝을 지어 읍내를 돌아다니며 함께 판매할 ‘셀러’를 모집하고 카페를 물색했다. 때마침 읍내에 ‘청년몰’이라는 상점이 생겨 그곳에도 들렸다. 국가 지원을 받은 젊은 창업자들이었는데 시골 읍내에서 처음으로 개최하는 플리마켓에 관심을 보이다가도 ‘수익금은 기부를 할 생각이다’는 대목에서 난색을 표했다. 하긴, 장사가 업인 사람들에게 수익금 기부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우리는 다급하게 “저희는 기부하지만, 다른 셀러들은 안 하셔도 돼요. 그냥 마켓에만 동참해주셔도 감사해요”라고 외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의 시선은 이미 먼 산을 향했다. '준비도 부족하고, 차후 저희도 마켓을 열 생각이니 그때 함께하자' 라며 부드러운 거절을 표혔다.


 그렇게 다른 셀러 모집에는 실패했지만 로컬 크리에이터들과의 만남은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당시만 해도 시간, 공간, 사람이 융복합된 문화콘텐츠는 지역의 상권에서 막 시작된 걸음마 단계였다. (솔직히 현재 전국의 청년몰은 실패한 정책으로 낙인찍혔지만, 젊은 로컬 크리에이터의 다양한 활동은 로컬 시장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전통시장에서는 지역민들이 직접 재배한(혹은 만든) 제품을 싼 가격에 대량으로 팔았다면, 그들은 전혀 다른 방식을 택했다. 제품 하나하나에 의미가 가득한 네이밍을 하고 원형에서 살짝 변형된 제품을 재창조하는 과정을 거친다. 재생산된 제품은 예쁜 박스에 일일이 낱개로 담아 근사하게 포장했고, 보기에 아름다운 그 가게만의 독특한 느낌을 창출했다. 그들의 전략은 아직 정착단계였지만 흥미로워 보였다. 한마디로 그들은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감성을 팔았다.      


시장 가판의 어르신들이 보면 비싸기만 하고 알맹이는 부실한 애들 놀이처럼 보일 테지만, 감성적인 제품은 젊은 소비자들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들에게 힌트를 얻어 평소 취미로 삼았던 원석 액세서리를 만들어 플리마켓에 팔 계획을 세웠다. 완성된 액세서리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이고 프린팅 해서 포장지에 붙였다. 원석마다 각자 다른 소원성취의 의미를 담아 특별한 원석 팔찌를 만들었다. 플리마켓에 내놓을 팔찌를 만들며 잠시 창업의 꿈을 꾸기도 했는데 밤새 가내수공업을 하다가 허리와 어깨가 망가져 금방 꿈을 접었다.  (안타깝게도 플리마켓에서 내 원석 팔찌는 인기가 없었다.)  

오픈 전 물건 정리와 오픈 후 몰려드는 손님들

셀러 모집뿐만 아니라 장소 대관도 난관이었다. 기대와 달리 읍내의 카페는 우리를 반기지 않았다. 내심 플리마켓 손님이 오면 카페 입장에서도 음료를 팔 수 있으니 서로 상부상조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건 우리만의 착각이었다. 가게 입장에서야 공간이 곧 돈인데 물건을 늘어놓으면 자리를 빼야 하니 큰 손해이다. 게다가 가게 안에서 벼룩시장 장사를 하다 보면 분위기도 어수선해지고 시작 전 준비나 뒷정리도 귀찮은 작업이다. 입장한다고 카페에서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손님이 많이 올 것 같지도 않은 귀찮은 일에 선뜻 나서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처음 들른 대규모 카페에서는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인데, 순진무구한 우리는 거절에 큰 충격을 받았다.)     


언니와 나는 약간 의기소침한 상태로 별 기대 없이 집 앞의 작은 카페를 방문했다. 앞선 퇴짜의 경험 때문인지 카페 사장님에게 입을 떼기가 조심스러웠다. 사장님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로 평소 말이 없고 조용한 스타일이라 더욱 긴장됐다. 손님이 와도 무심하게 주문한 음료만 건네고 별다른 말을 섞지 않아 낯가림이 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긴장된 표정으로 더듬더듬 취지를 설명하자 사장님은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어떠한 금전적 대가도 없이 무료로 장소를 제공해 주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손님의 제안에 ‘수익금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쓰인다’는 설명만으로 선뜻 응해줘서 오히려 부탁한 우리가 화들짝 놀랐다. 송구한 마음으로 “정말 고맙다”라고 감사인사를 전하자 “좋은 취지인데 제가 더 고맙죠.”하고 수줍게 웃었다. 평소 시크해 보이는 무표정한 얼굴과 다르게 웃는 얼굴이 앳되고 귀여워 반전이었다. 꽁꽁 숨어 있어서 그렇지 역시 뜻이 맞는 좋은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장소 섭외를 마치고 마켓에 장식할 플래카드와 소품, 전단지를 만들어 읍내 곳곳을 돌아다녔다. 읍내에 있는 아파트마다 플리마켓 날짜와 시간, 장소가 적힌 전단지를 붙였다. 전단지가 금지된 곳은 경비아저씨에게 사정해 허락을 받았고, 읍내 사거리에 있는 가게를 돌아다니며 잘 보이는 곳에 전단지를 붙여달라고 부탁했다.       

프리마켓 당일 우리는 집안에 쌓아두었던 물건을 들고 출동했다. 서울에서 알바 경력이 많은 후배까지 모셔와 마켓을 시작했다.(역시 알바왕 후배는 큰 도움이 됐다. 이 친구가 없었다면 우리는 판매는 물론 계산도 제대로 하지 못할 뻔했다) 처음엔 물건 배치 때문에 우왕좌왕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준비를 진행했다. 플래카드와 포스터 사진으로 카페를 장식하고 지연언니의 패션 센스를 살려 고급스러운 디피를 마쳤다. 집안 어두운 구석에 처박혀 있을 때는 몰랐는데 세탁을 하고 다림질까지 마쳐서 헹거에 걸어두니 조명에 반사된 옷이 제법 그럴싸해 보였다.      


마켓이 오픈되고 한참이 지난 후까지 사람들이 오지 않아 초조했다. 역시 시골에서 플리마켓은 무리인가 싶던 찰나, 점점 사람들이 카페 안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플리마켓을 즐길 새도 없었다. 그래 봤자 몇천 원짜리 제품들이 전부였지만, 정확하게 계산을 하고 돈을 받는 일만 해도 진땀이 났다. 오후가 가까워질 무렵엔 카페에 사람들이 가득 차서 카페 사장님도 음료를 만드느라 바빠졌다. 그나마 사장님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준비했던 물건은 일찌감치 다 빠지고 마감을 예상보다 빨리 마쳤다. 마켓에 팔고 남은 물건들은 서로 나눠가지며(남은 물건은 예상대로 우리끼리 사고팔았다) 판매 수익금을 계산했다. 무려 백만 원이 넘는 수익이었다. 처음 치고는 괜찮은 수입이라 서로 환호하며 뿌듯해했다. 뭔가 해냈다는 만족감이 들었다. 이때의 플리마켓 경험으로 우리는 나중에 지역신문에서 인터뷰도 하게 됐는데 아마도 읍내 면사무소 복지과를 통해 기부를 했기 때문에 홍보와 격려차원이 아닌가 싶다.

     

사실 플리마켓으로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개인적인 이익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도대체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열심 인지도 모른 채 열정적으로 플리마켓 준비에 매달렸다. 아마도 우리들은 각자 무료한 시골 일상에 무언가 열중할 거리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혹은 내가 정말 제대로 이곳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에 대한 답을 찾고 있었는지도. 도시가 아닌 시골을 선택한 삶, 내가 이곳에서 제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눈에 보이는 증거가 필요했다. 그러기에 나는 어린애들 장난 같은 플리마켓에 온 힘을 쏟았다.      


어느 자기 계발서 책 제목처럼 (이 책을 읽어보진 않았다),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격언이 가장 무서웠다. 나는 점차 시골에서의 삶도 무감해졌고, 앞으로 어떤 기대나 흥분도 느끼지 못하며 주어진 삶을 근근이 살아낼지도 모른다. 앞으로 평생 여기에서 살게 될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니요. 마음속의 내가 대답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정말 우연하게 영암으로 흘러들어와 살게 된 것처럼 나는 또다시 다른 곳을 꿈꾸고 어느 날 훌쩍 터전을 옮길지도 모른다. 나에게 장소가 어디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느 곳에서든 ‘내가 사는 삶을 온전하게 느끼며 살고 있는가’이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계속 이런 마음으로 살고 싶다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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