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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 Oct 19. 2021

요양하는 마음

시골 태생이 아닌 사람들이 귀촌을 희망할 때는 대부분 분명한 결심이나 소기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아무런 책임도, 계획도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사는 타고난 자유인이 아니라면 평생을 살았던 터전을 옮기는 데에는 큰 각오가 필요하다. 누군가는 삶의 새로운 방향을 발견하고 젊음을 담보로 기꺼이 낯선 불모지에 뛰어들기도 하고, 어떤 이는 진리라고 믿었던 신념이나 욕심을 버리고 두 손에 움켜쥐었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조용한 곳을 찾아 한적한 시골로 들어온다.      


내가 만난 귀촌인들은 거의 전자의 경우로 결혼이나 이직, 혹은 생계를 위해서 시골행을 선택했다. 그들은 대체로 미래에 대해서 낙관적이며 앞으로 맞이할 행복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희생을 치를 각오도 서 있다. 물론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삶은 녹록지 않고,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난관이 생길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본적으로 세상이 꽤 살만한 곳이라는 희망적인 믿음이 강하다.    

  

십여 년 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타지에서 온 젊은이를 찾기 힘들었다. 지금은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요사이 읍내에 나가보면 이삼십 대의 젊은 청년들이 자주 보인다. 월출산 근처에서 근사한 커피숍과 베이커리를 차린 청년들도 있고, 군청의 지원사업에 응모하기 위해 서울에서의 기반과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온 친구도 있다.      


얼마 전 읍내에 새로 생긴 화실에 들렀다. 그곳에서 이웃 주민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남는 시간에는 자기 작품 활동을 하는 젊은 화가를 만났다. 서울과 독일을 오가며 바쁘게 살다가 전원생활과 여유로운 일상을 찾기 위해서 아무런 연고도 없는 시골로 이주한 부부였다. 화실 전시회에 갔다가 “왜 하필 예술과 거리가 먼 이런 시골 동네에 터를 잡았냐”라고 물어보니 “사람 많은 도시보다 그림 그리는 사람한테는 시골이 오히려 블루오션이에요.”라고 산뜻하게 대답했다. 예상치 못한 대답이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알고 보니 이들은 현재 유튜브에 잔잔한 시골의 일상과 손수 시골집을 짓는 과정을 올리면서 꽤 구독자가 많아진 인기 유튜버이기도 하다)


한편 일생을 살아가면서 쓴맛과 단맛은 모두 보았으니 이제 고요한 시간만이 필요하다는 사람들도 있다. 요양자들이다. 은퇴를 마친 지긋한 나이라 건강을 위해 산책을 하거나 소일거리를 일삼았다. 이들은 앞으로 이루어야 하는 거대한 포부보다는 그저 해가 지고 달이 뜨는 작은 일상에 감사를 느끼는 사람들이다. 지치고 병든 몸을 쉬게 할 목적으로 시골에 온 사람 중에는 드물게 젊은 사람도 있다. 아직 젊은 나이에 한적한 시골로 요양을 올 만큼 중병을 앓았던 경우이다.


정현은 30대 중반에 자궁암 판정을 받았다. 4기였고, 일정한 톤으로 말하는 의사의 설명을 듣다 보면 자신이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일상은 빠르게 무너졌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고 남자 친구와도 소원해졌다. 가족과 부딪히거나 과거를 원망하는 일도 잦았다. 몸의 질병보다 마음의 병이 그녀를 잠식했다.      


그녀는 마침내 ‘지금 죽어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생각할 만큼 모든 게 지긋지긋했다. 살아야 할 어떤 이유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여러 번의 항암치료가 그녀를 할퀴고 지나갔다. 항암을 견디려면 잘 먹어야 했는데 도무지 음식을 목 안으로 넘길 수가 없었다. 치료를 받는 동안 그녀는 암세포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내가 이렇게 굶어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할 만큼 음식을 삼키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힘든 수술과 항암을 견뎌낸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마치 누군가가 강력한 힘으로 저쪽으로 건너가지 못하게 막아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그 순간 간절히 살고 싶어졌다. 무엇보다 그녀의 곁에는 “너는 반드시 살아야 한다고, 이렇게 너를 보낼 수는 없다”라고 애원하는 엄마가 있었다.      

그녀는 치료를 마치고 엄마의 고향인 남쪽으로 향했다. 그녀가 나고 자란 서울은 항상 소란스러웠고 주변이 숨 가쁘게 움직여서 그녀 자신을 돌볼 여력을 주지 않았다. 외할머니가 있는 산 밑의 한옥은 달랐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고요했다. 인적이 드문 대신 맑은 하늘과 나무, 초원이 가득했다. 밤이면 마당에 나가 아무런 잡념 없이 가만히 풀벌레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처마 밑 쪽마루에 앉아 해가 지고 달이 기우는 풍경을 오랫동안 보았다.      


봄이 가까울 무렵 외할머니는 대나무가 있는 뒷산으로 가서 죽순을 캤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소쿠리 가득 고사리와 봄나물도 따서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할머니가 준 자연의 재료로 음식을 해 먹었다. 아삭아삭한 죽순의 식감과 쌉싸름한 봄나물의 향기가 입안에 퍼졌다. 갓 지은 밥은 씹을수록 달았고 된장을 푼 아욱국은 목 안을 보드랍게 타고 흘렀다. 그녀는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쳤다. 해가 따뜻해 툇마루에 누워 눈을 감고 바람의 감촉을 느꼈다. 까무룩 졸음이 밀려와 꿈도 없이 길게 낮잠을 잤다. 그녀의 마음에 어느덧 훈풍이 불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곳은 도자기 수업에서였다. 나는 그녀가 암환자였다는 사실을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밝고 활기찬 표정과 매사에 진취적인 그녀의 성격 때문이었다. 흙을 만지는 그녀의 손길은 꼼꼼했고 그녀가 만든 작품은 단정했다. 수업이 끝난 후에도 그녀와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건강식과 몸에 좋은 차에 관한 정보, 그녀가 만나는 새로운 남자 친구와의 연애, 먹고살기 위해 시작한 사업과 일, 지금은 가물가물한 병마의 시련. 그녀는 이른 나이에 죽음의 고비를 넘겼기 때문인지 신비주의에 관심이 많았다. 가끔 삶과 죽음에 관한 철학적인 이야기를 나눌 때면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편안했다.      


나는 그녀로부터 삶을 경쾌하게 사는 방법을 배웠다. 주로 이런 것들이다. 자기 연민이나 패배의 감정에 빠져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 것, 자신을 소모하면서까지 너무 애쓰면서 살지 말 것, 소중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말 것, 어떠한 경우라도 스스로를 속이지 말 것. 듣고 보면 별거 아닌 평범한 말인데 이상하게 마음에 크게 와닿았다. 아마도 살다가 발목이 꺾여 주저앉아본 경험이 있는 이가 말하는 진실한 언어이기 때문이리라. 그러고 보면 요양은 단순히 건강을 찾기 위한 휴식이 아니라 욕심을 내려놓고 평안으로 향하는 마음가짐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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