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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 Jul 20. 2021

목수일의 기쁨과 슬픔

대목수의 아내로 살아가기

  퇴근한 남편의 얼굴이 어두웠다. 저녁을 차리며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자 긴 한숨을 내뱉었다. “철이가 많이 다쳤어. 어쩌면 손가락 하나를 잃을 것 같아.” 나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초지종을 캐물었다. 남편은 오전에 친구가 원형톱으로 나무를 자르다가 손가락 마디가 절단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전했다. 잘린 손가락을 주워 곧장 병원으로 갔지만 톱날에 신경 손상이 심각해서 수술이 어려울 것 같다는 비보였다.  

   

  철이씨는 남편과 함께 한옥을 공부한 남편의 오래된 친구이다. 나이도 같고 관심사도 비슷해서 두 사람은 통하는 것이 많았다. 한옥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둘은 자주 만나 우정을 쌓았고 결혼식을 치를 때 사회를 봐줄 만큼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남편은 한옥 강사로 교육을 시작했고 철이씨는 한옥 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조그만 회사를 차려 각자의 길을 걸었다. 사는 게 바빠 예전만큼 얼굴을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종종 연락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부를 챙겼다. 남편은 세 아이의 아빠가 된 철이씨가 힘겹게 사업을 이어나가는 것을 보고 안타까움과 응원의 마음을 내비쳤다. 남편으로부터 친구인 철이씨의 근황을 들을 때마다 나는 철이씨의 아내를 떠올렸다.      


  첫인상이 좀 촌스럽고 어수룩한 여자로 기억한다. 철이씨의 아내는 혼자 힘으로 어린아이 셋을 건사하고 도편수인 남편이 일터를 옮길 때마다 묵묵히 그를 기다렸다. 전해 듣기론 독실한 불교 신자라 엄격한 채식을 고수했고, 아이 셋을 자연주의 방식으로 키워내며 남편의 어떤 결정도 끝없이 지지한다고. 어쩐지 희생과 인내로 점철된 전통적인 과거 어머니상을 떠올리게 하는 면모가 있어 ‘나랑은 전혀 맞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그녀와 가깝게 지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남편에게 철이씨의 사고 소식을 듣는 순간 나는 곧바로 오래전 만난 그녀의 말간 얼굴을 떠올렸다. 원형톱에 손가락 마디가 절단되어 응급실로 간 남편을 마주하고 그녀는 무슨 마음이 들었을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남편이 하는 일에 대해 무지하다. 그저 남편의 직업이 보수에 비해 많은 노력과 재능을 필요로 하고, 사람들의 생각만큼 크게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게 아쉬운 속물 아내일 뿐이다. 남편은 정규적인 일 외에 가욋일을 부탁받으면 며칠간 컴퓨터로 도면을 그렸다. 현장에 나가면 일이 진행되는 동안은 몸이 축나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고생을 했다. 이른 새벽에 출근해 저녁이면 구부정한 몰골로 등에 소금기가 묻어날 만큼 땀에 절어 겨우 몸을 씻었다. 뼈 빠지게 고생하는 모습에 화가 나서 제발 이런 일은 때려치우고 다른 일을 하라고 악을 쓰기도 했다. 정작 힘든 사람은 남편인데 울툭불툭 성질은 내가 부리다니, 세상에 악처도 이런 악처가 없다.      


  그래서인지 남편은 나에게 일 이야기를 자주하지 않는다. 다행히도 큰 사고는 없었지만 자잘한 부상과 통증은 수도 없이 달고 살았다. 아마도 내가 모르는 위험한 순간도 많았을 것이다. 언젠가 남편이 아주 지친 얼굴로 들어와 “당신이 오늘 나 일하는 거 봤음, 눈물 났을 거야.”라고 말을 하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 말 한마디로 그날의 아찔함을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고, 나는 먹먹한 마음이 들어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남편은 공대를 졸업한 후 사무직으로만 일하다가 서른이 넘어서야 뒤늦게 한옥에 뛰어들었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다. 몸을 쓰는 힘든 일인 데다 공학적인 설계와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까다로운 작업이다. 그렇다고 세상 사람들에게 그다지 인정을 받는 일도 아니다. 사업적인 기질도 없어 돈을 벌기보단 늘 남 좋은 일만 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만 보니 남편뿐만 아니라 철이씨도 그렇고, 같은 일을 하는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슨 의미로 일을 할까?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단순히 돈 때문에? 그런 이유라면 학부 전공과 관련된 다른 편한 일자리를 알아봤어도 충분했을 것이다.      


  언젠가 남편에게 왜 그 일을 하는가에 대해 물었다. “어려서부터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일을 좋아했고, 나무라는 재료로 집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좋다. 사무실 의자에만 앉아 있을 때보다 몸을 움직이고 땀 흘려 일을 할 때 스스로 정직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기분이 든다, 더 내면에 가까워진다.”라고 더듬더듬 대답했다. 솔직히 나는 ‘밥벌이의 지겨움’에 관해서라면 100가지도 넘게 나열할 수 있을 만큼 직장생활을 지긋지긋해한 사람이다. 체력이 약해 몸 쓰는 힘든 일도 싫어한다. 그래서 그의 말을 공감하기가 어려우면서도 한편 고맙기도 하다. 자기 일에 대한 책임감과 삶에 있어 겸허함을 가진 사람이 풍기는 깊은 울림이 때때로 부러웠다.

     

  철이씨의 아내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언젠가 경조사 자리에서 우연히 철이씨를 만난 적이 있다. 나는 몇 년 사이에 철이씨가 너무 많이 늙어버린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직 40대인데도 불구하고 하얗게 세어버린 흰머리와 검은 피부, 상한 잇몸과 손의 상처들로 제 나이보다 열 살 이상은 많아 보였다. 사찰이나 대형 한옥 건설 현장 일을 주로 맡았던 철이씨는 고생한 흔적이 얼굴에 남을 만큼 몸이 상했다. 허물어진 외형은 그가 대목수 일에 그만큼 몰두했다는 증거이리라. 아마도 그의 아내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남편의 괴롭고 힘든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을 것이다. 십수 년 이상 숙련된 기술자인 그에게 어이없는 사고가 찾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놀란 사람은 다름 아닌 그녀일 것이다.      


  다음 날, 철이씨는 결국 접합 수술을 하지 못하고 퇴원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남편은 한동안 자기 일처럼 우울해하며 지냈다. 나는 철이씨의 아내가 걱정됐다. 분명 당사자만큼이나 애태우며 슬픔에 묻혀 지내리라 생각했다. 만약 나라면 그러고도 남았을 테니까. 그러나 며칠 후 전해 들은 이야기는 전혀 뜻밖이었다. 아이들을 맡기고 곧장 병원으로 달려간 그녀는 남편을 마주하고 담담하게  말했다. 손가락 하나 잃은 이깟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당신이 더 크게 다치지 않은 것만 해도 어디냐고, 천만다행이라며 조용히 그를 위로했다. 그녀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평소처럼 가족들을 돌보고 간병과 집안일을 해나갔다. 철이씨가 얼마나 자기 일에 치열했고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가슴속 깊은 열망을 위해서 소명에 전념했는지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그녀이다. 그녀는 내가 아는 누구보다 내면이 강한 사람이었다.     


  나는 잔걱정이 많은 편이라 남편이 평소보다 늦거나 소식이 없으면 혹시 궂은일을 하다가 어디 다친 것은 아닌가 걱정이 들어 마음을 졸인다. 대목수의 아내로 살며 나는 요사이 ‘일’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한다. 도대체 일이란 무엇일까? 왜 어떤 사람들은 굳이 그 일을 하는 것일까? 당연하게도 답을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일이라는 것은, 그 일이 좋건 싫건, 어느 정도 감내하고 참아내야 하는 순간이 온다. 물론 놀이처럼 즐기며 일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목표한 결과에 도달하는 동안은 누구나 얼마쯤은 수련자의 자세로 버티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 맡은 역할과 일을 하며 인생을 보낸다. 누군가는 자기 일에 신념을 바치고 누군가는 그저 습관처럼 출퇴근을 한다. 옳고 그른 것은 없다.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는 것처럼 절박하고 중요한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하는 일을 통해서만 그 사람을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일하지 않는다고 그 사람의 가치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일이 꼭 경제 활동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법도 없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해 전념하는 사람을 지켜보면 마음에 잔잔한 파동이 일렁인다. 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의 일이 평생의 직업이 될지, 아니면 언제가 그만둘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내 옆에서 나와 함께 늙어가는 이 사람이  자기 일을 하는 동안 그가 매일 보는 커다란 나무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좋아하는 대목처럼  더 단단하고 향기로운 사람이 되리라, 조용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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