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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Oct 17. 2022

(D+9) 이제야 인공호흡기를 뺐다

주치의와 면담과 엄마의 면회를 약속한 아침이다. 주치의는 엄마의 의식 수준이 상당히 좋아졌고 폐렴도 많이 호전되어서 오늘 아침에 인공호흡기도 떼어내고 목에 넣어두었던 관도 빼내었으니 말씀도 하실 수 있으시다고 했다.


다른 분들은 수술 이후에 곧 말씀도 하셨다는 글들을 보고 왜 이렇게 우리 엄마는 회복이 느린 걸까 싶었는데 폐렴 때문에 인공호흡기와 목에 관을 넣어두어서였다. 심장에 문제가 있었으니 자연스럽게 엄마는 폐부터 안 좋아졌고 인공호흡기까지 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재출혈은 이제 안심해도 될듯하지만 혈관 연축은 아직 4-5일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수두증이라고 했다. 머리에 피가 빠지도록 꼽아둔 빨대 같은 호수를 뺐을 때에 엄마가 괜찮을지를 연습해 보아야 하는데 계속 피와 물이 차면 다시 한번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엄마를 보러 집중치료실 안으로 들어왔다.


간호사가 우리에게 와서 엄마의 양손은 머리에 있는 빨대 같은 것을 뺄 수 있기 때문에 약하게 결박되어 있는 상태라고 했다. 뇌출혈 수술 이후 흔히 발생하는 섬망 같은 증세를 우려한 조치 같았다. 알겠다고 하고 엄마의 침상 쪽으로 걸어와 보니 엄마는 주무시는 것 같았다. "엄마, 나 왔어"라고 말하니 가늘게 실눈을 뜨더니 작은 목소리로 "안다~"라는 답변이 들려왔다. 그 뒤로도 많이 호전되었다, 고생했다 등등의 말을 해보았지만 엄마는 눈을 감고 잠만 주무셨다.


담당 간호사가 내게 와 목에 관을 이제 막 빼내었는데 엄마는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그걸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태까지 많이 힘드셨을 텐데 이제야 빼서 좀 편해지신 것 같다고 했다. 수술했던 날 의사가 보통은 목에 관을 넣어두면 많이 힘들기 때문에 재우는 약을 투여하는데 엄마는 뇌 수술 환자라 의식상태를 봐야 해서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고 동의하느냐는 말을 했던 게 떠올랐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말 한마디 뱉지 못하고 고통을 참아내었을 엄마 생각에 몹시도 마음이 아팠지만 그걸 또 잘 이겨내어 준 엄마가 무척 너무 대견스럽고 또 고마웠다.


아마도 이제야 좀 편해지셔서 주무시는 듯했다. 엄마를 깨워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좀 쉬시게 해 드리는 게 나은 것 같아 간호사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붓기도 지난주보다 많이 빠진 데다 인공호흡기도 빼어낸 상태라 훨씬 엄마의 모습이 호전되어 보였다. 아빠도 한시름 던 모양이었다. 다행이다, 정말.


엄마, 남들보다 천천히 회복되어도 괜찮아.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기만 하면 돼.

나랑 아빠랑 잘 기다려줄게. 그러니까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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