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잉고잉 박리라 Nov 08. 2022

(D+31) 휠체어 태워 드리기

눈을 뜨자마자 코로나 검사를 하고 주치의를 만나러 갈 준비를 했다. 병원 앞 단풍나무와 은행나무가 참 예쁘다. 엄마가 쓰러지시고 난 뒤 시간이 멈춘 줄로만 알았는데 병원 풍경이 바뀌어가는 걸 보니 가을이 점점 짙어져 가는가 보다.

일반 병실로 옮기고 주치의가 바뀌었는데 이번 주치의도 주말 내내 병원에 있는 모양이다. 토요일 9시~11시 사이에 오면 면담이 가능하다고 했다. 엄마가 있는 병동에 도착하자마자 간호사실에 면담을 요청하니 곧 주치의가 나타났다. 주치의는 병동 내 회의실로 옮겨 엄마의 뇌 사진과 피검사 수치 등을 보여주며 엄마의 상태에 대해 설명해주었는데 아직까지는 엄마의 수두증이 가장 우려스럽다고 했다. 현재 수술할 정도는 아니지만 수두증의 위험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니 조금 더 지켜보는 것이 좋겠다는 소견이었다. 추후 수두증도 괜찮다고 판단이 되고 내과적으로 안정이 된다면(폐렴, 전해질 수치 등을 말하는 듯) 재활 쪽에 치중해서 치료를 하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오늘부터는 가능하다면 하루 한 번이라도 휠체어를 태워드리라고 했다. 하루 한 번이라도 휠체어를 태워드리는 게 폐렴 예방 등 엄마의 상태를 호전시켜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엄마는 삼 일 전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아마도 간병인 여사님이 엄마를 깔끔히 닦아주신 것 같았다. 내가 엄마를 보고 있을 땐 콧줄을 뺄까 봐 묶어둔 엄마의 손을 풀어드리고 있었는데 엄마가 머리를 자꾸 긁는 걸 봐서는 간지러운 것 같았다. 실밥을 풀고 그 자리가 좀 아물 때까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음 주 주말 즈음해서 간호사 선생님께서 샴푸는 언제쯤 가능한지 여쭤보아야겠다.

엄마는 우리를 분명 알아보는 듯했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간호사 선생님 의사 선생님이 가끔 와서 다리를 들어보라는 둥 움직여보라는 둥의 말을 했지만 엄마는 눈을 감은체 꿈적도 하지 않기도 했다. 아직까지는 대부분 졸린 상태구나 싶었는데 선생님들이 가시고 엄마에게 힘들고 귀찮아도 선생님들이 시키면 최대한 해보려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얼른 회복해서 집으로 갈 수 있다고 이야기해 드렸는데 그랬더니 금세 엄마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는 게 보였다. 그 뒤로는 다른 사람들이나 내가 어떤 말을 할 때 엄마의 눈 쪽을 유심히 지켜보았는데, 엄마의 눈가는 종종 촉촉해졌고 그럴 때면 엄마는 눈을 감고 있었다. 언뜻 보면 엄마가 잠을 자는 것 같았지만  나는 엄마의 모습이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인지 기능이 돌아오면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양손이 묶인 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서글퍼 자꾸 눈물만 나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질문을 했을 때, 예를 들어 "손톱 깎아 줄까?"와 같은 어떤 특정한 질문에는 간단하지만 명확하게 "괜찮아"와 같은 대답을 작지만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에 더 그런 생각에 확신이 생겼다.

그나저나 엄마는 온몸을 움직일 수가 없는데 정말 휠체어를 태워도 되긴 하는 걸까, 혹시나 잘못해서 실수를 하면 어쩌나 온갖 걱정이 다 들어 다음 주 주말로 휠체어 태우는 것을 미룰까 싶었는데 주치의가 들어와 휠체어 태우기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나갔다. 믿고 의지할 곳이라곤 간병인 여사님 밖에 없었다. 간병인 여사님의 진두지휘 아래 휠체어를 침대에 바짝 붙여 고정을 한 뒤 시트를 들어 그대로 엄마를 휠체어로 옮기는 방식이었다. 하나 둘 셋 구령에 맞추어 네 나, 아빠, 남편, 간병인 여사님, 총 넷이서 시트의 각 꼭짓점을 동시에 들고 구령에 맞추어 두세 번에 나누어 옮기니 생각만큼 어렵지 않았다.

엄마도 침대에만 있다 휠체어를 타고 복도에 나오니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었다. 눈도 크게 뜨고 침대에서 보다는 묻는 말에 좀 더 잘 대답해주었다. 비록 "응", "아니" 정도였지만.

한 시간 가까이 휠체어를 탔을까. 엄마를 다시 침대에 옮겨드리고 나니 많이 피곤하셨던 모양이다. 금세 잠이 드셔 선 코까지 고신다. 나 역시 엄마 옆에 붙어 서서 이런저런 말을 걸고 기저귀를 갈고 휠체어를 태우고 복도를 걸어 다니느라 힘들었던 모양인지 저녁이 되니 피로가 몰려왔다. 그래도 엄마를 위해 무언가 할 수 있어 참 좋았던 하루였다. 내일도 아침 일찍 병원으로 와 한번이라도 더 휠체어를 태워드리고 기차를 타야겠다 다짐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D+28) 집중치료실에서 일반 병실로 이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