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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Nov 17. 2022

(D+38) 병원에서 맞이한 엄마의 생신

오늘은 엄마의 생신이다. 휠체어를 탈 때 구석진 곳에서 케이크에 초 하나 꼽고 생일 축하 노래라도 불러드리려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엄마가 우울해하는 것 같아 뭐라도 기분이 좋아질 만한 무언가를 해드리고 싶었는데 아빠의 생각은 나와는 많이 달랐다. 아직 거동도 안되고 먹지도 못하는 엄마에게 케이크를 가져가 노래를 불러주는 건 오히려 엄마의 마음이 꽤나 불편한 일일 거라며 아빠는 강력하게 반대했다. 아빠와 내가 케이크를 두고 강하게 충돌했는데 열심히 말싸움을 해보아도 강건한 아빠의 태도는 절대 바뀔 것 같지 않아 결국엔 내가 지고야 말았다. 나는 주말에만 오지만 아빠는 일주일 내내 병원을 오가는 주보호자니 당연히 져드려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냉장고에 케이크를 두고 병원에 가려니 속상한 마음이 쉽게 가시질 않았다. 오후에 서울로 출발하는 기차를 타야 하니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러 병원에 도착했다. 오늘은 주치의를 만나 엄마의 상태를 의료진은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들어보고 싶었다. 수두증에 대한 수술을 하지 않을 거라면 하루라도 빨리 재활의학과로 전과한 다음 엄마가 본격적으로 재활을 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은 어떨까 싶기도 했다.

엄마가 침대에만 누워 지낸 지가 벌써 한 달 하고도 한주가 지났다. 이제 의식도 있고 손도 조금 움직일 수 있는데 계속 이렇게 엄마를 누워만 있도록 침대에만 둔다면 우울감도 커질 테고 회복도 더뎌질 것 같았다. 발병일로부터 3개월이 재활의 황금기이고 6개월까지가 재활의 효과가 가장 좋다고들 하니 조금이라도 빨리 엄마가 재활을 시작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면담을 요청한 주치의는 소식이 없다. 언제 올지 모를 주치의를 기다리다간 엄마 휠체어를 태워드릴 시간도 부족할 듯싶어 간병인 여사님께 주치의가 오면 연락을 달라고 부탁드리곤 그냥 휠체어를 태우기로 했다.

간밤에 비가 와 제법 날씨가 쌀쌀한 듯하여 오늘은 병원 복도만 돌았다. 한참 휠체어를 밀고 여기저기 걸어 다니다 보니 엄마가 눈을 뜨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지만 엄마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감아서 의사표현을 해주긴 했지만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것도 같고 말을 별로 하고 싶지 않은 것도 같았다. 어쨌거나 손을 움직여 보라거나 고개를 돌려보라거나 하는 나의 지시에는 조금 반응을 보였고 하이파이브를 하자는 내 말에는 손을 들어 내 손에 엄마의 손을 가져다 대기도 했다.

엄마는 휠체어를 한동안 더 타고 싶은 것 같았는데 간병인 식사시간이기도 하고 엄마도 점심을 먹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병실로 올라와야만 했다. 그래도 시간을 보니 한 시간 반 가량을 휠체어를 탄 셈이었다. 이만하면 되었다 싶었다. 휠체어를 타고 함께 산책을 하고 엄마와 이런저런 소통을 했던 잠깐도 엄마는 꽤나 피곤했던 모양이다. 엄마를 다시 침대로 옮기고 기저귀를 갈고 콧줄 식사를 드리니 금세 잠이 드셔 선 코까지 고신다.


엄마에게 내가 필요한 시기인 것만 같아 엄마를 보고 올라가는 일요일은 늘 마음이 무겁다. 큰 차도가 있을 거라 기대했던 것과 달리 조금 더 안 좋아진 것도 같은 엄마 모습에 오늘은 특히나 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엄마와의 하이파이브는 유쾌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겠지. 조금이라도 감사할 일을 놀라운 기적을 찾고 축하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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