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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Mar 17. 2023

(D+155) 다시 살아난 뇌파 그리고 기관절개

"엄마, 나왔어!"로 밝게 시작한 인사가 무색하게 누워있는 엄마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이 된다. 주치의가 다가와 마음의 결정을 하셨느냐고 묻자, 나는 가족들과의 상의 끝에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으나 마지막으로 뇌파 검사를 한 번만 더 해주시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드렸다.

미세한 움직임 하나 없이 인공호흡기를 끼고 깊은 잠에 빠져든 것과 같은 지난 한 주와는 달리 어제는 내가 말을 걸었을 때 엄마의 얼굴에서 미세한 떨림과 눈꺼풀 아래로 엄마의 눈동자가 또르르르 굴러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해 보아야만 할 것 같았다. 매일 엄마를 보는 것도 나이고 엄마를 가장 걱정하는 것도 나이니, 엄마의 상태변화를 제일 빠르게 눈치챌 수 있는 것도 나 일 것 같았다.

그날은 집으로 돌아와 암막커튼까지 쳐두고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데 중환자실 신경과 교수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중환자실 교수님 전화는 처음이라 정신이 번쩍 들었는데, 교수님은 검사 결과, 놀라울 만큼 엄마의 뇌파가, 특히 우뇌 쪽 뇌파가 많이 좋아졌으며 좌뇌는 미세하게 경련파가 나오고 있으나 이 정도로 호전된 것은 좋은 신호이니 결정을 미루고 엄마의 의식이 깨어나기를 좀 더 지켜보아도 좋겠다고 말했다.

신이시여, 감사하나이다.

그 이후, 엄마는 빠르게 안정되어 가고 있었다. 승압제도 끊었고 좌뇌에서 나오던 뇌파도 이제는 꽤나 호전되어 경련파를 찾아볼 수 없었다. 모두 좋은 싸인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엄마의 의식은 여전히 돌아오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중환자실 교수님께서는 엄마가 깨어나지 않을 이유보다 깨어날 이유가 더 많으나 연세가 있으셔서 오래 걸리시는 것 같다며 아주 서서히 좋아지는 듯하다며 기관절개를 신중하게 고려해 보아야 할 때라고 말씀하셨다. 기관절개 역시 연명치료이지만 지금은 호전 추세이니 보다 폐렴과 같은 합병증을 예방하고 안정적으로 엄마가 깨어나길 지켜보기 위해서는 기관절개를 하는 게 좋다고 말씀하셨다. 다만 의식이 깨어나는 문제에 대해 장담할 수는 없으니 신중하게 생각해 보고 가족들과 상의한 다음 결정하라고 하셨다.

이미 응급실에 들어선 순간부터 연명치료는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 어쩔 줄 몰라했던 순간에, 다시 돌이킨다 해도 내가 다른 선택을 할 확률은 제로였다. 호전되고 있는 추세라면 더 고민할 필요가 없었으나, 아빠는 나와는 달리 많이 고민스러우신 듯했다. 약간의 말다툼과 감정싸움 뒤 아빠의 허락이 떨어졌다.

엄마가 의식이 돌아와 주기를,
그래서 다시 일어나 주기를,
또한 다시 한번 제대로 살아주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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