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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Jun 07. 2023

다가온 전원의 시기

주치의와의 전화 면담

지난 금요일 주치의와의 전화 면담을 요청했었는데, 주말이 지나고 오늘에야 전화가 왔다. 면담을 요청했던 당일 저녁까지도 주치의의 전화가 없었지만 나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약 8개월간의 주보호자 생활을 하며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주치의가 전화 면담에 응하는 경우는 대게 2가지, 엄마의 상태가 매우 심각하게 나빠졌거나 혹은 전원시기가 다가왔다는 뜻이니까. 그 무엇도 기분 좋은 소식은 아니기에 빠르게 전화 통화를 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내가 주치의에게 전화면담을 요청한 것은 엄마의 전원 문제에 약간의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어렵다는 3차 병원에서 3차 병원으로의 전원을 해냈지만 그간 VRE균이 해제되지 않았으니 엄마에겐 남은 선택지는 거의 없었다. 전원 날짜는 이제 1주 앞으로 다가왔고 이제는 정말 요양병원으로 모시는 것 밖엔 수가 없는 것 같아 지난 한 주간 머릿속이 복잡했다.

게다가지난 주 초 갑작스러운 구토 증세가 곧장 흡인성 폐렴으로 이어지며 계속해서 항생제를 쓰고 있는 와중이었기에 더욱 걱정스러웠다. 나는 한번 더 3차 병원으로의 전원, 그러니까 다른 대학병원

으로의 전원을 주치의에게 간곡히 부탁드려 볼 요량이었다. 폐렴으로 인해 아직은 내과적 안정이라고 보기엔 불안한 요소가 있으며 무엇보다 호전세가 크니 요양병원으로 전원 하기보다는 큰 병원에서 조금 더 치료를 받았으면 한다고 말이라도 붙여 보고자 했다.

그런 내 요구를 어느 정도 예상이라도 한 듯 주치의는 당초 약속했던 전원의 시기가 임박했다는 사실을 내게 다시 한번 강조한 뒤, 엄마의 폐렴은 어느 정도 잡혔기 때문에 퇴원 시점에서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재활적 측면에서 인지적으로 크게 호전세를 보여 목관을 하고 있기에 목소리가 나오진 않지만 본인의 이름을 말할 수 있게 된 것(입모양으로)과 묵찌빠 등의 간단한 지시사항을 이행하려고 한다는 점, 질문에 대한 답변이 가능해진 점(도리도리와 끄덕끄덕으로), 전혀 움직임이 없던 오른쪽 손이 미세하게 움직여지기 시작한 점, 연하 테스트에 비록 실패하긴 했으나 폐렴으로 무리하게 테스트를 진행하지 않았을 뿐 호전 가능성이 다분했던 점 등을 들어 호전세가 커 보인다는 내 의견에 동의했으며 칠곡쪽 대학병원 교수님께 전원 가능성을 타진해 보겠다고 했다. 물론 그쪽에서 받아줄 지의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고 덧붙였지만 말이다.

엄마의 전원 시기만 되면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기어코 예민해 지고야 만다. 만약 칠곡의 대학병원에서 받아주지 않는다면 요양병원 밖에는 답이 없고 그럴 경우 친정집이 있는 지방에서 다시 서울로 모시고 오는 것도 고려를 하고 있어 더 머릿속이 복잡했다. 물론 지난번 중환자실에서의 전원 요구에 비하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기에 그때만큼 요양병원이 꺼려지는 상황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일단은 칠곡의 대학병원으로의 전원이 성사되는 것을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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