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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Jun 09. 2023

기차에서 펑펑 울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평일. 엄마 휠체어를 태워 산책을 시키고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손과 발을 씻겨드리고는 운동치료 선생님까지 다녀가셨지만 오자마자 간호사 선생님께 신청한 주치의 면담은 아직이다.

아빠랑 함께 식사한 지도 벌써 한 주나 지났고 전원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아빠에게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드릴 시점인 것 같아 바로 KTX역으로 향하지 않고 친정집 방향으로 지하철을 탔다. 의지할 곳도 이야기를 할 사람도 나 밖에 없는 아빠는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해 내가 집으로 가고 있다고 하자 바로 집 앞 전철역으로 나오시겠다고 했다. 먹고 싶은 걸 사주시겠다면서.

아빠를 만나 삼겹살집으로 향했다. 삼겹살 3인분과 맥주 한 병을 시켜놓고는 맛있게 구워 아빠도 좀 드리고 나도 먹고 그렇게 든든하게 배부터 채웠다. 꽤 어렸을 적부터 나는 가끔 아빠와 술을 마시곤 했는데 아빠도 술을 좋아하시고 그런 아빠 딸인 나도 그랬으니 우리에게 반주는 빠질 수 없는 인기 아이템이었다. 가볍게 아빠와 맥주 한 병을 나눠마시고는 그래도 썩 유쾌한 기분으로 아파트 놀이터 벤치를 찾았다.

지금 상황에서 칠곡경북대병원으로의 전원이 불가하다면 다른 방도가 있어야 하니 나는 아빠에게 지금 우리의 상황에 대해 천천히 설명드린 뒤 다른 한 대학병원으로 전원이 안 될 경우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두 가지 방안에 대해 말씀드렸다. 하나는 친정집이 위치한 도시의 한 재활병원으로 VRE균 환자들만 모여 있는 병실을 사용해야 하지만 상당히 많은 시간 동안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병원으로의 이동과 서울의 내 회사 근처에 위치한 시설과 평이 나쁘지 않고 1인실 사용이 가능한, 그러나 침상재활 2번이 전부인 한 요양병원으로의 이동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빠는 이제는 엄마를 돌보는 것은 조금 내려놓고 내 삶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과 동시에 내가 없이 혼자서 엄마를 감당하는 것이 가능할까 싶어 불안한 마음을 동시에 느끼고 계시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내 삶을 사는 것에 엄마를 배제할 수는 없음을, 지금 이대로도 나는 충분히 괜찮게 지내고 있음을 말씀드리는 것으로 우리의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그 대학병원으로의 전원을 기다려보되 불발된다면 서울로 전원 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의료진, 간병인과의 소통도 물품 구매도 중요한 결정도 내 몫이니 내가 조금이라도 자주 병원에 들여다볼 수 있는 서울이 나을 듯싶었다. 다만 그렇게 될 경우 친정집에 자주 내려와 볼 수 없으니 친정집에 머무실 아빠와 식사며 집안 살림 등이 걱정스러웠다.


아직 그 무엇도 결정된 것이 없으니 복잡해지지 말자며 스스로를 다독이고는 평소보단 늦었지만 KTX역에 도착해 기차를 기다리는데 주치의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대학병원으로의 전원에 대해 물어보는 내게 주치의는 죄송하다고 말했다. 현재 대기가 너무 길어 한 두 주 이내에는 전원이 어려우며 입원장을 받으려면 외래진료를 봐야 할 것 같다고 말이다. 주치의가 전혀 죄송할 것이 없는 이야기였기에 진료의뢰서를 부탁드리고 함께 전원 할 병원을 찾아보는 것으로 통화를 마무리했지만 그런 내 겉모습과는 다르게 나는 전화를 끊고는 기차에서 소리 없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펑펑 울고야 말았다. 이제는 나도 많이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얼마나 더 시간이 필요한 걸까.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한 순간이 이렇게나 자주 찾아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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