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날과 다름없는 평일. 엄마 휠체어를 태워 산책을 시키고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손과 발을 씻겨드리고는 운동치료 선생님까지 다녀가셨지만 오자마자 간호사 선생님께 신청한 주치의 면담은 아직이다.
아빠랑 함께 식사한 지도 벌써 한 주나 지났고 전원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아빠에게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드릴 시점인 것 같아 바로 KTX역으로 향하지 않고 친정집 방향으로 지하철을 탔다. 의지할 곳도 이야기를 할 사람도 나 밖에 없는 아빠는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해 내가 집으로 가고 있다고 하자 바로 집 앞 전철역으로 나오시겠다고 했다. 먹고 싶은 걸 사주시겠다면서.
아빠를 만나 삼겹살집으로 향했다. 삼겹살 3인분과 맥주 한 병을 시켜놓고는 맛있게 구워 아빠도 좀 드리고 나도 먹고 그렇게 든든하게 배부터 채웠다. 꽤 어렸을 적부터 나는 가끔 아빠와 술을 마시곤 했는데 아빠도 술을 좋아하시고 그런 아빠 딸인 나도 그랬으니 우리에게 반주는 빠질 수 없는 인기 아이템이었다. 가볍게 아빠와 맥주 한 병을 나눠마시고는 그래도 썩 유쾌한 기분으로 아파트 놀이터 벤치를 찾았다.
지금 상황에서 칠곡경북대병원으로의 전원이 불가하다면 다른 방도가 있어야 하니 나는 아빠에게 지금 우리의 상황에 대해 천천히 설명드린 뒤 다른 한 대학병원으로 전원이 안 될 경우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두 가지 방안에 대해 말씀드렸다. 하나는 친정집이 위치한 도시의 한 재활병원으로 VRE균 환자들만 모여 있는 병실을 사용해야 하지만 상당히 많은 시간 동안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병원으로의 이동과 서울의 내 회사 근처에 위치한 시설과 평이 나쁘지 않고 1인실 사용이 가능한, 그러나 침상재활 2번이 전부인 한 요양병원으로의 이동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빠는 이제는 엄마를 돌보는 것은 조금 내려놓고 내 삶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과 동시에 내가 없이 혼자서 엄마를 감당하는 것이 가능할까 싶어 불안한 마음을 동시에 느끼고 계시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내 삶을 사는 것에 엄마를 배제할 수는 없음을, 지금 이대로도 나는 충분히 괜찮게 지내고 있음을 말씀드리는 것으로 우리의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그 대학병원으로의 전원을 기다려보되 불발된다면 서울로 전원 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의료진, 간병인과의 소통도 물품 구매도 중요한 결정도 내 몫이니 내가 조금이라도 자주 병원에 들여다볼 수 있는 서울이 나을 듯싶었다. 다만 그렇게 될 경우 친정집에 자주 내려와 볼 수 없으니 친정집에 머무실 아빠와 식사며 집안 살림 등이 걱정스러웠다.
아직 그 무엇도 결정된 것이 없으니 복잡해지지 말자며 스스로를 다독이고는 평소보단 늦었지만 KTX역에 도착해 기차를 기다리는데 주치의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대학병원으로의 전원에 대해 물어보는 내게 주치의는 죄송하다고 말했다. 현재 대기가 너무 길어 한 두 주 이내에는 전원이 어려우며 입원장을 받으려면 외래진료를 봐야 할 것 같다고 말이다. 주치의가 전혀 죄송할 것이 없는 이야기였기에 진료의뢰서를 부탁드리고 함께 전원 할 병원을 찾아보는 것으로 통화를 마무리했지만 그런 내 겉모습과는 다르게 나는 전화를 끊고는 기차에서 소리 없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펑펑 울고야 말았다. 이제는 나도 많이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얼마나 더 시간이 필요한 걸까.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한 순간이 이렇게나 자주 찾아오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