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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Jun 24. 2023

재활병원으로 전원

예정된 전원의 날이다. 엄마의 컨디션 난조 이후 뱃줄식사를 끊고 수액이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엄마는 점차 안정되어 갔다. 원인을 찾기 위해 이런저런 검사들을 받았지만 딱히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하루 휴가를 내고 전날 퇴근 후 친정집으로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주치의의 전화를 받았고 엄마의 현 상태에 대한 설명을 전해 들은 다음 퇴원하는 길에 교수님을 한번 뵙는 것으로 했다.

간병인 교대시간에 맞추어 아침 일찍 병원으로 향했다. 전원 날이라 여사님이 이것저것 꼭 필요한 것만 두고 이미 정리를 어느 정도 마쳐두신 것 같았다. 두 손 꼭 잡고 감사인사를 드린 뒤, 비교적 오랜만에 엄마 간병을 하며 이런저런 서류를 챙기고 퇴원 수속을 밟았다. 아침에 오신 교수님께 이것저것 그동안 궁금했던 사항들을 문의하고 감사인사를 끝으로 새로운 재활병원으로 이동했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혼자서 기저귀를 갈고 휠체어를 태우는 것이 너무 많이 수월해 져 엄마의 호전을 몸으로 느끼니 기분이 참 묘했다. 내가 조금 더 엄마를 돌보았으면 싶어 아빠에게 휴직을 조금만 연장할 걸 그랬다고 했다가 아빠의 역정에 더는 말도 못꺼냈지만.

주치의를 만나 한참 설명을 듣고 간호사에게 약을 전달드린 뒤, 식사와 물의 종류와 양, 특이점(전해질 불균형 문제, 간헐적 구토증상과 그에 따른 폐렴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병원생활에 대한 간단한 안내를 받았다. 우리는 4인실에 배정받았는데 병실에는 엄마 말고 다른 분은 계시지 않았다. 수간호사 선생님이 엄마의 상태, 기침과 가래로 인한 소음 등을 감안해 보다 빨리 병원에 적응할 수 있도록 다른 환자분들의 병실을 조정해 혼자 쓸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했다. (감사해요) 그 덕분인지 엄마는 꽤 편안해 보였다. 엄마에게 옮긴 병원이 마음에 드시냐고 여쭤보니 고개를 끄덕끄덕하시니 그래도 복잡한 내 마음에 조금 안도감이 밀려왔다.

나는 병원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면회가 자유롭고 넓은 방을 혼자 쓰고 있다는 점은 좋았지만 간호사실이 다른 층이라는 점과 물품의 대부분을 보호자가 구매해야 한다는 것이 조금 번거롭게 느껴졌다. 흡인용 카테터(가래 뽑는)와 피딩줄, 메디폼 등을 따로 의료기상사에서 구매해 와야 했으니까. 일단은 친정집에 모아 둔 카테터와 피딩줄, 메디폼이 있어 급한 불은 껐지만, 피딩줄과 메디폼은 몰라도 카테터는 미리 대량으로 구해둘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의료기상사에도 카테터는 없는 곳이 많았다.

새로 오시기로 한 간병인 여사님은 저녁이 다 되어 오셨다. 금액과 입금날짜, 유급휴가일 등을 포함해 비용 협의를 하고는 소모품은 직접 구매해서 전달하도록 하고 목욕은 주말에 나와 함께 하며 매일 손과 발, 세수, 양치를 부탁드렸다. 아빠는 평일, 나는 주말에 면회를 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간병인 여사님은 그럼 재활시간에 월요일과 목요일 2-3시간 정도 외출을 하고 싶다고 하셨다. 어차피 재활시간 중이라 특별히 보호자가 할 것은 없으니 아빠가 그 시간에 면회를 와 주시면 집으로 가서 빨래도 하고 급한 볼일도 해결하고 오시겠다는 거였다. 나는 조금 언짷은 마음이 들었지만 이 분이 오랫동안 엄마 간병을 맡아주셨으면 해서 아빠와 상의해 그러자고 했다. 내가 원해서 직접 엄마의 간병을 하며 병원 생활을 해 보았으니 그 정도의 유연성은 상식적으로 필요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싶기도 했다. 24시간 환자 옆에 꼭 붙어서 움직이지 못한 다는 것이 쉬운 일은 결코 아니지 않은가. 너무도 큰 간병비를 생각하면 속상하기도 해서 여우같아 보이는 이번 여사님이 살짝 미우면서도 다른 분들과 다르게 말이 없는 엄마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는 것하며 그 분 특유의 밝은 에너지 같은 것이 느껴져 엄마에게는 좋은 분이 되어 주실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찌 되었건 이제 우리는 한 배를 탔고, 엄마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려면 간병인의 복지(?)와 체력, 마음 챙김도 꼭 필요한 일이니까. 간병인 여사님은 내가 여러달 직접 엄마의 간병을 했단 사실을 알고는 조금 부담을 느끼셨는지 본인이 하시는 게 마음에 안드실까봐 걱정이라고 하시기에 편하게 본인 스타일대로 해 보시라고 말씀드렸다.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면 내가 맞추는 게 맞을 듯 싶었다.

아빠는 근래에 엄마가 많이 쳐져있었는데 오늘이 가장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고 하셨다. 본인에겐 별 반응이 없었는데 내가 오니 눈도 오래 뜨고 있고 움직임도 커졌다며 좋아하셨다. 그걸 나도 너무 잘 아니 내 마음이 무거운 것은 별개로 치고 나도 무사히 전원을 한 안도감과 엄마의 굿 컨디션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곳으로 오기까지 약 3주 정도를 어렵게 보내었다. 그간 여러 번 병원을 옮겨다녔기에 전원 자체가 힘든 일이라는 걸 너무 잘 알아도 나는 자주 가라앉았다. 이제 특별한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당분간은 그럴 걱정은 없다. 다행이다. 엄마가 이곳에서 계시는 동안 편안하게 머무셨으면 하고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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