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과 다를 바 없는 평일 아침 9시. 휴대폰 벨이 울렸다. 아빠였다. 평일 아침은 늘 회사에 있으니 아주 급한 일이 아니고 서는 부모님이 내게 전화하는 일은 없다. 다음 연휴에 보라카이로 가족 여행을 떠나기로 한 것 때문에 어제 밤늦게까지 엄마와 전화통화를 했었는데 그것 때문일 까. 아닐 것이다. 그 짧은 순간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다 지나갔다.
불길한 예감은 왜 틀린 법이 없을 까. 담담한 목소리와는 달리 아빠는 응급실이었다. 엄마가 아침에 쓰러졌고 뇌출혈이라는데 곧 수술을 해야 하니 먹고 있던 약을 알려달라고 했다. 간호사에게 전화를 바꾸어 메모해 둔 약 이름을 전해주고 나니 아빠는 내게 너무 걱정 말고 일을 하고 있으라고 말했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멍하게 컴퓨터 앞에 앉아 초록창에다 ‘뇌출혈'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시작하니 “강수연 심정지 부른 뇌출혈… 평소 멀쩡, 발병 때 관건은 이것”과 같이 자극적인 타이틀을 단 뉴스 기사가 많이 보였다.
잠시 후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는 아빠였지만 전화기 넘어 들려온 목소리는 아빠가 아니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본인을 담당의라고 소개했다. 옆에서 괜한 소리 말라며 말리는 듯한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 사람은 내게 당장 병원으로 와 달라고 했다. 병원에 오기까지의 시간을 고려해 최대한 빨리 출발해 달라고. 뇌출혈인데 동맥류가 터졌고 살아서 병원까지 온 것만도 다행인 일이지만 수술을 한다고 해도 꼭 산다는 보장이 없으며 현재 엄마의 의식 수준과 상태 또한 좋지 않다고 차분히 설명하는 그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느낌이었지만 일단 바빠 병원으로 가야 할 것 같았다.
예정에도 없던 휴가를 올리고 집으로 오니 남편은 이미 집에 도착해 있었다. 우리는 바로 엄마가 있는 병원으로 출발했지만 평일 낮이었음에도 고속도로에는 꽤나 차가 많았다. 그래도 크게 늦지는 않았던 모양인지 중앙수술실 앞에 아빠가 서있었다. 아빠는 생각보다 의연했다. 그런 아빠 앞에서 나도 최대한 의연한 척을 하며 오늘 아침의 사정에 대해 물었다.
갑자기 엄마가 화장실에서 힘이 없다 말하며 쓰러지기에 아빠가 얼른 가서 엄마를 받아 안았다고 했다. 조금 뒤 구토가 있어 119를 불렀고 곧장 이 병원 응급실로 왔다고 했다. 바로 몇 가지 검사가 이루어졌고 엄마가 뇌출혈이며 출혈이 있는 위치와 상태가 좋지 않아 개두술(머리를 열어서 하는)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며 한참 전에 시작한 수술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뒤이어 아빠는 엄마가 쓰러지고 병원까지 오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데다가 오늘은 공휴일이 아닌 평일이었고 딱 아침 출근시간이라 의사들도 모두 병원에 있는 상태라 조치가 빨랐으니 결과가 좋을 것이라며 여러 가지 면에서 운이 참 좋았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초조한 마음으로 수술방 앞에서 여러 시간을 보내던 어느 순간, 보호자를 찾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술이 끝나고 CT를 찍으러 가는 찰나의 순간, 엄마가 누워 있는 침상 옆에 찰싹 달라붙어 엄마의 상태를 살피려 눈동자를 굴렸다. 붕대가 감겨 있는 엄마의 머리만이 아니라 얼굴 여기저기에도 피가 굳은 흔적이 많았다. 몸은 땡땡 붇고 쇄골뼈 쪽엔 관(호수)도 꼽혀 있었다. 뭔지 모를 기계가 달려 있는데 인공호흡기 같았다.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지만 꾹 눌러 앉히고 엄마에게 고생 많이 했다고 잘 버텼다고 여러 번 말해주었다. 그때 엄마가 손을 살짝 드는 게 보여 마음이 놓였다. 엄마는 내 목소리를 들었던 걸 까.
CT촬영이 끝나자 엄마는 곧장 집중치료실로 들어갔고 우리는 그 앞에서 수술 집도의와 주치의를 기다렸다. 집도의는 우리에게 수술은 잘되었지만 엄마의 머릿속을 열어보니 생각보다 혈관 상태가 심각해 여전히 위험한 상황이라고 했다. 우선 머릿속에서 터져버린 동맥류는 클립으로 찍었지만 다른 혈관도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재출혈이 생길 가능성이 높고 그럴 경우는 최악의 상태, 사망까지도 갈 수 있다며 일단 수술은 최선을 다했으니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한 주치의는 잠시 집도의를 따라 어딘가로 사라졌다간 곧 다시 돌아왔다. 주치의는 집중치료실에서 엄마의 수술 전후 CT 촬영 영상을 보여주며 수술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 보다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뒤이어 엄마에게 추가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몇 가지 위험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해 주었는데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수술 직후부터 하루 이틀은 재출혈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과 만약 재출혈이 일어나면 그땐 바로 수술에 들어가야 한다는 점, 그리고 그 상황은 굉장히 위험하다는 점과 그 밖에도 한두 주 이내에 혈관이 좁아지는 뇌혈관 연축, 한 달 이내에 머리에 물이 차는 수두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경과 관찰이 필요하다고 것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외에도 심장과 폐, 위장 기능의 저하가 추가적으로 생길 수 있고 다른 합병증 또한 생길 수 있다는 그의 말에 어지러움증이 생기는 듯 머리가 하얘졌지만 지금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재출혈도 뇌혈관 연축도 수두증도 없이 무사히 엄마가 회복해 나가길 비는 것 밖에는.
코로나19 때문에 집중치료실은 2019년부터 계속 면회가 되지 않는다며, 필요물품이 있으면 그것만 사서 초인종을 눌러달라는 간호사의 안내에 한 마디도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는 내게 주치의는 주말에 내려오시면 한 번씩 면회가 가능하도록 해보겠다며 병원에 오면 자신과의 면담을 요청해 달라는 이야기에 정신을 차렸다.
그렇게 길고 긴 하루는 끝이 나고 있었다. 친정집으로 들어와 보니 아침의 급박했던 순간이 그대로 보였다. 화장실엔 널브러진 휴지와 수건들이, 주방엔 아빠가 먹다 만 아침상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뭔가 냄새가 이상해 나가 보니 주방 베란다 쪽엔 가스불까지 켜져 있었다. 엄마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옥수수와 고구마로 유추되는 무언가를 삶으려고 가스불을 약하게 켜놓은 모양인데 이게 하루 종일 켜져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오랜 시간 불이 다른 곳으로 옮겨 붙지 않고 그대로 냄비만 까맣게 태운 게 신기할 정도였다. 아빠 말대로 오늘은 정말 운이 정말 좋은 날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