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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Oct 04. 2023

내가 브런치에 계속 간병 일기를 쓰는 이유

요즘의 내게 브런치는 계륵 같은 존재가 되었다. 처음 브런치를 시작할 때에는 브런치에 글을 올릴 수 있는 작가가 되기 위해 꽤나 고심했다. 앞으로 쓰고 싶은 글의 목차를 구성하고 그런 글을 써 나갈 나를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하지만 지난가을 엄마가 갑작스럽게 쓰러지시면서 나는 무슨 정신에서였는지 브런치에다 간병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기존에 쓰려고 했던 '달리기'에 대한 글은 더 이상 이어 쓰지 못했다. 본능적으로 내가 겪고 있는 일, 엄마의 뇌출혈로 갑작스레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버린 일이 희소성이 높은 일이라는 것을 알았던 걸까. 아니, 결코 그렇지 않다.


처음에는 그저 내 정신줄을 붙잡기 위해 썼다. 내 차량번호도 전화번호도 현관 비밀번호도 가끔 떠올리지 못하는 외우는 것만큼은 어릴 때부터 쥐약이었던 나였기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든 붙잡아 놓고 싶었다. 그러지 않으면 아주 중요한 무엇인가를 놓칠 것만 같았다.


엄마가 쓰러진 직후, 나는 엄마와 비슷한 사례를 찾아 인터넷 공간을 헤매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블로그에다 또 어떤 이는 관련 질환 카페에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는데 꽤 잘 정리된 글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글도 많았다. 그렇지만 글을 잘 쓰고 못쓰고의 유무를 떠나 모든 글들이 내게는 의미 있게 다가왔다. 대부분의 글들을 정독하며 참 많이도 울었지만 그들의 글들을 통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엄마와 나의 미래에 대해 그려볼 수 있었다. 마냥 캄캄한 어둠보다는 그게 더 낫다고 나는 생각했다. 생각 해 볼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늘어나는 거였으니까. 그래서 나도 그냥 썼다. 쓰기에 대한 부담감은 고스란히 내팽개친 채 일기처럼 우연처럼 몰아닥치는 사건에 대해, 그리고 그 사건을 맞이하는 나의 기쁨과 슬픔, 버거움에 대해. 결코 잘 쓰인 글이 아님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지만 내가 그랬듯 어딘가에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에게 나의 글이 닿는다면 그에게는 나의 이야기 또한 위로가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브런치에 그렇게 간병 일기를 지속해 오는 동안 내게는 몇 번의 위기가 찾아왔다. 나는 브런치에서 나의 글을 읽는 몇 안 되는 독자들이 나를 그저 어딘가에서 엄마를 돌보는 딸로서 보호자로써 바라보아 주길 원했다. 구독자 또한 많지 않았기에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느 기자로부터 인터뷰 제안을 받았을 때만 해도 '어느 누군가는 내 글을 읽어주고 공감해 주는구나' 싶어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다. 인터뷰이를 구하기 위해서였겠지만 우리나라의 사회문제로써 간병 문제를 다루고자 하며, 나의 그 일기 같은 글이 많은 생각과 고민을 일으켰다는 기자의 성의 있는 이메일은 너무도 과분해 몸둘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물론 그 당시 너무도 정신없는 와중이었기에 그의 제안은 정중히 거절했지만.


하지만 얼마 뒤 날아온 한 통의 이메일에 나는 꽤나 큰 타격을 받았다. 그 이메일의 발신자는 자신을 친정집, 그러니까 우리 엄마와 같은 아파트 다른 층에 사시는 할머니의 아들이라고 밝혔는데 내가 특별히 내 신상에 대한 많은 정보를 그 글에 담은 것이 아님에도 그가 나의 글을 읽고 나를 특정했다는 사실 때문에 계속 브런치에 글을 써 나가는 것이 조금 불편해졌다. 대한민국 인구가 약 5천만 명이라고는 해도 브런치 플랫폼을 이용하는 내 친정집 근처의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그 글 속에서 나를 특정할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도 했거니와 아빠를 포함한 엄마의 주변분들에게까지 그런 세세한 소식이 모두 전해지는 것이 저어 되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부족한 글에 대한 수치심이었겠지만. 물론 그의 이메일은 내가 느낀 감정과는 전혀 다르게 무척이나 다정하고도 감사한 내용이었다. 엄마가 빌려준 돈을 갚고 싶은 분이 계신데 나와 연락이 닿지 않아 실례를 무릅쓰고 이메일을 드린다는 것이었으며 실제로 나는 그분의 이메일을 계기로 엄마의 친구분을 만나 엄마가 빌려준 돈을 돌려받았다. (이웃사촌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용기 내어 이렇게 제 생각을 정리한 글을 쓸 수 있었어요)


그렇지만 그날 이후 나는 여러 날을 고민했다. 마음은 이제 그만 불편해진 그 브런치 계정은 내버려 두고 다른 플랫폼으로 옮겨가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계속 브런치에 간병 일기를 쓰는 것을 지속하기로 결심했다. 약 1년 가까이 지속해온 글에 마침표를 맺지도 않고 멈춰 두고 싶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다른 중요한 두 가지의 이유가 더 있었다.


첫 번째는 친한 친구에게도 내 가족에게도 온전히 내 비칠 수 없는 날 것 그대로의 내 감정, 내 생각을 이 공간에서는 자유롭게 쏟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격의 없이 지내고 속 이야기를 모두 내 비칠 수 있는 친한 친구이고 남편이고 딸이라 하더라도 그들에게 늘 나의 힘든 이야기만 꺼낼 수는 없다. 그들도 나름대로 자신의 삶의 무게를 견뎌내는 중일 텐데 나의 힘듦까지 감당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특히 남편과 아이들의 경우, 내가 지방에 있는 친정에 내려가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신들의 생활에서 내 몫까지 함께 감당해야 해 버거워진 것이 많았다. 이미 많은 짐을 나눠지고 있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내가 감당해 내야 하는 것까지 조금 더 나눠 지자고 하고 싶지 않았다. 친구의 경우 또한 직접 겪어보지 않은 나의 이 현재진행형 경험을 그들이 오롯이 공감하기란 힘들 것 같았다. 그런 내게 브런치라는 공간은 좋은 해우소가 되어주었다. 그곳에는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 사람들이 찾아온다. 몇 되진 않지만 그들의 짧은 댓글과 공감이 내게는 큰 위로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미래의 나를 위해서다. 사실 엄마가 쓰러지시고 난 뒤 나는 대부분 고통스럽고 힘에 부치는 날을 보냈다. 특히 첫 6개월은 너무 슬프고 아프고 힘겨웠다. 그래서 그런 내용들만 빼곡히 적혀있지만 그럼에도 언젠가는 엄마가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를 그 어떤 날에는 이렇게 아프고 힘겹게만 느껴지는 오늘조차 몹시도 그리운 시간과 순간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리되지 않은 엉망진창의 글이라도 꾸준히 기록만 해 놓는다면 나는 언제든 지금의 이 순간들을 촘촘히 기억해 낼 수 있을 테고, 그렇다면 나는 그 기록을 통해 언제든 엄마와 함께한 그리운 오늘의 순간들을 다시금 느낄 수 있겠지. 그러니 나의 그 글은 말할 것도 없이 미래의 내게는 아주 소중하고 특별한 선물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지껏 써 왔고 앞으로도 써 나갈 나 자신을 스스로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계속 브런치에 간병일기를 올렸다. 


그리고 이제 곧 엄마가 쓰러지신 만1년. 결혼을 하고 아이를 셋이나 낳도록 나는 여전히 어느 노부부의 귀한 외동딸로만 지냈다. 그런 내가 갑작스럽게 엄마를 돌보는 보호자가 되었다. 이제는 너무 약해져 언제 꺼질지 모를 촛불을 보듯 아슬아슬해 보이는 엄마를 돌보며 보이지 않는 미로 속 출구를 찾으려 방황하며 보낸 시간이 자그마치 1년이나 된 것이다. 어떤 이는 무척 짧다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지난 시간 속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조금 더 정리해서 털어놓아 볼 수 있을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씩 써 나가 보려한다. 보호자라는 나의 새로운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의 글이 누군가에겐 용기가, 위로가, 필요가 되어 닿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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