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적당함을 찾아서
나는 어릴 때부터 잘 체하는 편이었다. 엄마는 내가 체할 때면 실과 바늘을 들고 방으로 들어오셨다. 먼저 온 몸을 주먹으로 팡팡 두드리고 (특히 등) 팔을 문질문질 하며 혈을 손 끝으로 모은다. 그다음에는 실로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둘둘 감은 후에 바늘로 따주었다. 심하게 체한 날에는 손가락을 뚫을 기세로 바늘을 깊게 찔러도 피가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그럴 때에는 동네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나서야 겨우 괜찮아졌다.
한의사 아저씨 말로는 내 갈비뼈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내려와 있다고 한다. 내려온 갈비뼈가 장기를 눌러 평소보다 많이 먹으면 쉽게 체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알려주셨다. 보통 사람들의 갈비뼈는 어느 정도에 위치하고 있는지, 평소 나의 적당한 위장량과 식사량의 크기는 얼마만큼인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결론은 과식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후로는 밥을 먹기 전이나 먹는 중에 평범한 나의 평범하지 않은 갈비뼈를 떠올렸다. 체한다는 것의 고통과 불편함을 너무나 잘 알기에 갈비뼈의 위치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과하게 먹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말 맛있는 식당이나 재미있는 모임에 참석했을 때 발생했다. 혀 끝과 코 끝으로 느껴지는 맛있는 행복감, 밥 먹을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재미있는 이야기 속 그 어디에도 갈비뼈가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내려온 갈비뼈는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잊혔고 나는 평소보다 과식을 하고야 말았다.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체해서 한참을 아픈 후에 누구와 어디서 무엇을 먹었는지를 떠올려보면 그 속에는 꽤나 아름다운 추억이 함께 있었다. 즐거운 모임과 만족스러운 식사 끝에 나에게 남겨진 것은 좋은 추억 그리고 소화불량이었다.
어제는 어쩌다 보니 하루 종일 몸과 머리가 모두 과식을 하고야 말았다. 맛있는 점심을 좋아하는 지인과 즐겁게 먹었고, 새로 맡게 된 업무를 파악하느라 난생처음 보는 단어들이 하루 종일 머릿속으로 입력되었다. 내 몸이 소화해 낼 수 있는 양보다 많이 먹게 되면 어김없이 탈이 나곤 했는데 어제가 바로 그런 날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과식, 과몰입의 끝에는 어김없이 소화불량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집중해서인지 시간이 평소보다 빠르게 흘러갔다. 4시간처럼 느껴지는 8시간을 보낸 후 멍한 상태로 사무실을 빠져나오며 선홍빛으로 물든 가을 하늘을 마주하니 잠깐 동안 생생한 꿈을 꾼 것만 같다. 기분 탓인지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길이 묘하게 자꾸 흔들려 보인다. 꿈에서 구름 위를 걷는 느낌이랄까-
나는 현관문을 열고 집 안에 들어가자마자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쉽게도 어지럼증은 기분 탓이 아니었다. 정말 어지러웠던 것이다. 속이 답답하고 하품이 나는 것을 보니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소화불량 이 녀석! 또 너구나!
소화에 도움이 된다며 엄마가 직접 담가준 매실청을 진하게 한 잔 탔다. 달콤한 맛이 별미인 매실청도 너무 많이 넣었더니 단맛을 넘어 자극적인 맛에 혀가 다 얼얼하다. 넘치는 의욕으로 시작한 나의 첫 출근은 그렇게 소화불량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우리는 모든 것이 풍족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무언가가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모자란 것처럼 느껴져 어떻게든 빈 부분을 꾹꾹 눌러 채우려고 한다. 그런데 모든 것이 넘칠 만큼 꽉 채워져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맛있는 점심과 새로운 일도 적당함을 넘어가니 오히려 불편함으로 돌아온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넘치게 하는 것보다 적당함을 유지하는 것이 더욱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잔에 물을 담을 때에도 적당량을 맞추기 위해서는 더 많은 집중력이 필요하다. 눈을 감고 물을 부어도 부족하거나 넘치게 채울 수 있다. 오히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을 딱 적당한만큼의 물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컵의 크기, 흘러 들어가는 물의 양, 컵에 남아있는 물과 물통에 남아있는 물의 양까지 모두 다 알고 있어야 한다. 나만의 적당함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 인생의 적당함이란 어느 정도일까?
이 정도면 괜찮고, 이 정도는 너무 과하다의 기준은 어떻게 만들어가는 것일까?
바쁜 일상 속에서 나는 또다시 적당함을 잊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언제나 나와 함께하는 갈비뼈, 첫 출근 날의 소화불량, 어제 마신 매실청인지 한약인지 알 수 없는 오묘한 맛은 종종 생각이 날 것 같다. 누구도 나에게 물어보거나 강요한 것은 아니지만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나만의 적당함을 찾아보려고 한다. 휘청거리고 헤매다 빙빙 돌아갈 수도 있고 어쩌면 정말 오래 걸릴지도 모르지만 걷다 보면 그 길 위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인생의 또 다른 묘미를 만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