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와 살인, 그리고 그 후

by Henry
깊은 밤 차량.jpg 픽사베이


납치

큰돈을 날린 윤 사장은 분을 참을 수 없었다. 한동안 입씨름하던 그는 독이 오를 대로 올랐다. 도저히 말로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른 방법으로 본때를 보이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강 전무는 여러 코인의 판매를 대행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잘 아는 윤 사장은 강 전무의 코인을 받아내려고 했다. 그렇지만, 이 세계에서 산전수전뿐만 아니라 공중전까지 경험한 그가 순순히 코인을 내줄 리 만무하다. 이런 사실을 잘 아는 윤 사장은 은밀하게 작업을 진행했다.

윤 사장은 그는 평소 알고 지내는 각종 이권 다툼에서 해결사 노릇을 도맡아 하는 후배를 불렀다. 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강 전무를 납치해 코인을 받아 내라고 지시했다. 윤 사장은 일이 쉽게 끝날 거로 생각했다. 그래서 통 크게도 후배한테 1억 원을 먼저 지급했다.

윤 사장의 지시를 받은 후배는 덩치가 크고 한 주먹 하는 사람 둘을 고용했다. 과거에도 몇 차례 작업을 함께한 친구들이라 믿을 만하다. 이들은 강 전무를 납치한 후 적당히 구슬려 코인만 받는 건 식은 죽 먹기다. 한두 번 해 본 일이 아니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이들은 며칠 동안 강 전무의 동선을 세심하게 체크했다. 강 전무는 자정에 가까운 시간 아파트 관리사무실 쪽 입구로 귀가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때는 아파트 주민들이 거의 다 집에 돌아온 시간이라 사람의 왕래가 뜸했다. 더욱이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6시가 되면 불을 끄고 퇴근한다는 것까지 확인했다. 그들은 늦은 밤 관리소 사무소 쪽 입구로 들어서는 그를 납치하기로 계획했다.

3월 말의 어느 날, 이들은 아파트 입구 도로 어두운 곳에 차를 세웠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아파트로 들어가는 강 전무를 강제로 차에 태웠다. 강 전무도 만만치 않은 사람이라 강하게 반항하며 소리쳤다. 그렇지만, 밤늦은 시간이라 사람 그림자조차 없다. 눈 깜짝하는 사이 전광석화처럼 일을 마친 차는 어둠 속으로 떠났다.

강 전무를 태운 검은색 차는 쏜살같이 강원도로 달렸다. 자정을 넘긴 시간이라 도로는 한산했다. 차는 빠른 속도로 강원도로 접어들었다. 새벽이 되자 원주를 지나 홍천에 도달했다. 홍천을 지나면서 높은 산이 즐비하게 이어졌다. 홍천 휴게소를 지난 차는 고속도로를 벗어났다. 그리고 곧장 산길로 차의 방향을 틀었다.


살인

3월 말 산골은 날은 여전히 차다. 쌀쌀한 밤공기를 맞으며 그들은 한적한 산기슭에 차를 세웠다. 깊은 산속이라 사방이 적막하다. 일행 중 한 명이 차 트렁크를 열어 곡괭이를 꺼냈다. 그들은 강 전무를 에워싼다. 아무리 깡다구가 좋은 강 전무라도 살벌한 분위기에 기가 죽었다.

날이 완전히 풀리지 않아 아직 땅이 딱딱하다. 곡괭이를 주면서 아직 녹지 않은 땅을 파라고 했다. 곡괭이 질 몇 번에 강 전무는 금세 땀을 흘린다. 땅을 파던 그는 연신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강 전무님, 일을 쉽게 풀어가시죠? 윤 사장님이 당신 설계로 큰 손해를 본 거 다 압니다. 그걸 어떻게 배상할 겁니까?" 낮고 굵은 목소리가 짙은 어둠을 깨고, 밤공기를 흔들었다. "아니, 그건 제 책임이 아닙니다. 그건 윤 사장님이 투자에서 실패한 겁니다. 윤 사장님한테 물어보시면 잘 알 겁니다." 강 전무는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이런, 말로 해서는 안 되겠구먼. 얼른 땅을 파기나 하세요. "어둠 속의 목소리에 잔뜩 날이 섰다. 갑자기 골짜기에서 휑하고 싸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가뜩이나 살 떨리는 분위기가 음산해졌다. "아니, 그러지 말고 말로 합시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강 전무가 초조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러자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울린다. "서로 좋게 갑시다. 다른 코인을 윤 사장님한테 주세요. 거래소 상장을 앞둔 코인이면 좋지 않겠어요?" 그러자 강 전무는 자기도 코인이 없다고 강변한다. "저도 이제 코인이 없습니다. 코인 판매 대행을 당분간 하지 않을 생각이라 다 처분했습니다."

이들 사이에 한동안 실랑이가 이어졌지만, 시간만 흐르고 소득이 없었다. 날도 차고 밤은 더 깊어졌다. 어르고 달래도 강 전무는 요지부동이다. 급기야 일당 중 한 사람이 그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남은 두 사람도 합세해 코인을 내놓으라고 얼렀다.

한참이나 계속되던 폭행이 갑자기 멈췄다. 이들도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때는 이미 강 전무의 숨이 끊어진 후다. 당황한 그들은 파다 만 구덩이를 마저 팠다. 차갑게 식어가는 강 전무의 시신을 구덩이로 밀어 넣고 흙으로 덮었다.

이들은 처음에는 살해할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아무리 늦은 밤이라도 사람들이 오가는 아파트 입구에서 납치하지 않았다. 더 은밀하게 일을 진행했을 것이다. 이런 일은 변수가 생기고, 계획대로 잘 안되는 경우가 많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한 그들은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서울로 돌아온 그들은 당분간 연락하지 말고 잠적하기로 했다. 따로 흩어진 그들은 뿔뿔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후

여기까지가 엔비테크 코인을 설계한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의 전부다. 이제 엔비테크 토큰과 관련한 일어난 이 일의 후일담을 정리하자. 나와 후배는 무사히 법망을 빠져나왔다. 우리가 저지른 불법과 편법의 증거를 찾기는 어렵다. 이미 요소요소에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 둔 덕분이다. 그중에서도 코인 판매를 강 전무에 넘긴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납치를 지시한 윤 사장과 납치범들은 체포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윤 사장은 살인 교사 혐의는 받지 않았다. 실형 내용이야 여기서 밝힐 필요는 없다. 세상일이 그렇듯이 죽은 사람만 억울하게 된 셈이다. 그리고 엔비테크 코인의 상장과 관련해 로비 대상이 된 인사들도 벌을 받았다. 그들이 우리 코인뿐만 아니라 다른 코인에 손을 댄 것이 들통났기 때문이다.

나와 후배는 당분간 조용히 숨죽이고 지낼 생각이다. 회사를 계속 꾸려가고 있고, 계획했던 사업을 이어간다는 공지를 올렸다. 진짜 그렇게 할 것이냐고 물어보면 대답할 말이 궁하다. 그렇지만, 형편이 되면 그렇게 할 생각은 있다. 언제 그렇게 될는지는 누가 알겠는가. 금융과 코인 세상에는 별일이 다 일어난다.

지금 나는 해외 시장을 개척하려고 따뜻한 동남아에 와 있다. 사업 전망이 밝아지면 우리 코인에 다시 투자하겠다고? 이거 왜 이러실까. 내 이야기를 처음부터 제대로 듣지 않았구먼.

"소중한 재산, 잘 관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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