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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Oct 24. 2022

무슨 꽃을 좋아하세요?

무슨 꽃을 좋아하세요?

"무슨 꽃을 좋아하세요" 누군가 내게 묻는다. 이 물음은 파동으로 고막을 통과한다. 고막을 통과한 미세한 떨림은 달팽이관 안의 발전기(유모세포)에서 전기적 신호로 바뀐다. "무슨 꽃을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이 전기 신호로 변환되어 뇌 신경세포의 가지에 도달한다. 뇌 신경세포의 가지(가지 돌기)는 이 전기 신호를 핵이 있는 신경세포의 몸통으로 보낸다. 뇌 신경세포의 몸통은 이것을 반대편의 끝점으로 보내 다음 뇌 신경세포로 전달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무슨 꽃을 종아하세요?"라는 물음의 전기 신호는 최종 목적지인 앞이마 전전두엽에 도착한다.


전전두엽은 "무슨 꽃을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의 답을 구하기 위해 과거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전전두엽은 여러 기억 저장소에 꽃과 관련된 기억, 추억, 좋아하는 것 등 다양한 정보를 보고하라고 명령한다. 이 보고 과정도 뉴런과 시냅스의 통로가 이용된다. 전전두엽의 명령을 전달받은 각 기억 저장소는 꽃과 관련된 색깔, 향기, 모양, 기억, 추억을 전전두엽으로 보고한다.


마이클 캐플런·엘렌 캐플런의 『뇌의 거짓말』에서 기억은 한 곳에 저장되지 않고 분산된다고 말한다. 기억의 시각적 구성 요소들은 시간 체계에 존재한다. 언어 기억들은 구어나 문어와 관련 있는 영역들을 활성화한다. 무언가를 기억하는 순간 흩어져 있던 감각적·추상적 정보들이 재조합된다. 우리 뇌는 다양한 장소에 흩어져 저장된 꽃의 색깔, 향기, 모양, 추억 등에 관한 추억을 불러 모은다. 


전전두엽은 이렇게 분산된 기억 장소에서 보내온 각각의 자료를 모두 모은다. 그리고 난 후 최종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꽃은 노란 해바라기'라는 판단을 내린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내가 좋아하는 꽃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과 마음이다. 전전두엽은 이 생각과 마음을 감각기관인 입으로 보내며 대답하라고 명령한다. 그러면 나는 입을 열고 말한다.


해바라기(수채화, 57X76cm, 2018)



"노란 해바라기를 좋아합니다"

전전두엽은 "무슨 꽃을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의 정보를 종합해 생각과 마음을 만들어 낸다. 이 과정에서 정보 전달 통로인 뇌 신경세포와 시냅스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막을 통과한 소리의 파동이 전기 신호로 변환되어 중간에 끊어지지 않고 곧장 전전두엽으로 전달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는 그 중간의 시냅스가 끊어져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소리가 뇌로 전달된 후 생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봤다. 실제 우리가 노란 해바라기를 보는 과정도 이와 유사하다. 이때는 소리의 파동이 아니라 노란 해바라기에 반사된 빛이 망막과 시신경 세포를 통해 뇌로 전달된다는 차이가 있다. 우리 뇌가 시각 정보를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대해서는 컬럼비아 대학교 교수인 에릭 캔델(Eric R. Kandel) 교수가 쓴『통찰의 시대』에 잘 나와 있다. 여기서도 뉴런과 시냅스의 역할을 충분히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한순간에 듣고 본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뇌는 순차적으로 쪼개서 듣고 보는 것이다. 그것도 0.1초도 채 안 걸리는 시간 안에 그리한다. 


사랑은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

좌우의 뇌 신경세포가 연결되는 시냅스는 안타깝게도 틈이 있다. 전기 신호는 아무리 미세한 틈이라도 끊어진 곳을 흐르지 못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신경전달물질이다. 여기에는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는 세로토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도파민이 있다. 신경 화학물질이라 불리는 신경전달물질에는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가바, 멜라토닌, 엔도르핀, 엔도카바노이드 등이 있다.


앞에서 본 <시냅스(synapse)> 사진에서 보이는 빨간색의 알갱이들이 신경전달물질이다. 이것들이 전기 신호를 대신해서 시냅스의 틈을 건넌다. 무사히 시냅스의 강을 건너간 신경전달물질은 전기 신호 전달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다. 이 과정이 매끄럽지 못하면 생각과 마음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은 복잡하고 미묘하다. 그만큼 신경전달물질의 종류도 많고, 이들이 이상을 일으키는 일이 많다. 신경전달물질의 분비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미움, 증오, 우울, 화, 짜증 등 부정적인 마음이 생긴다.


신경전달물질의 농도가 약하거나 아예 고갈되면 정보가 시냅스를 건너지 못한다. "무슨 꽃을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이 다음 뉴런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이 정보는 최종 목적지인 전전두엽까지 정보가 올라오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전전두엽이 기억 저장소에 내릴 명령도 없어진다. 올라온 정보가 없으니 질문 자체를 모른다. 질문을 집중해서 듣지 않고 딴생각했다. 이렇게 되면 질문의 대답을 못 하거나 엉뚱한 소리를 하는 일이 생긴다.


마음, 생각, 사유는 머릿속 뇌 신경세포와 시냅스의 연합 활동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마음은 머릿속에서 만들어진다. 전기 신호가 통과하는 뇌 신경세포와 신경전달물질이 전달되는 시냅스는 마음을 만드는 통로가 된다. 외부의 자극이나 정보는 뇌 신경회로를 통과하여 전전두엽에 도달한다. 전전두엽은 도달한 정보와 과거의 경험, 기억, 추억 등을 종합해서 최종적으로 생각을 만든다. 따라서 마음은 머릿속에서 만들어지고, 머리가 마음의 고향이다.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는 곳은 시냅스다. 시냅스의 신경전달물질에 이상이 없으면 마음도 이상이 없다. 그러나 신경전달물질의 분비가 줄어들면 그 물질과 관련된 감정에 문제가 생긴다. 우울, 슬픔, 좌절, 분노 등의 감정이 생겨나 머릿속을 휘젓는다. 마음의 문제는 머릿속 뇌 신경회로와 신경전달물질의 분비의 문제인 것이다.


문화인류학자 헬렌 피셔(Helen Fisher) 박사의 저서『왜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가』를 보면,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머리에는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이 마구 분비된다. 연인들은 혈기 왕성해지고, 식욕이 떨어지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호흡이 가빠진다. 연인의 뇌에는 세로토닌 수치가 줄어들어 잠 못 이룬다. 강박관념처럼 온통 연인 생각에 빠진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사랑, 우정, 낭만 같은 마음이 오로지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현상이라면 얼마나 쓸쓸한 일인가. 다행인 것은 뉴런의 신경망이 생각과 마음을 만들지만, 그 생각과 마음은 다시 신경전달물질의 농도를 조절한다는 사실이다. 몸과 마음이 서로 다름이 아니라는 말이다. 과학과 문학은 각기 다른 세상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산다. 그래서 세상은 여전히 살만한 가치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날 아름답다고들 하는데 그이만은 그걸 모른단 말이야. ----사랑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마음으로만 보기 때문에 큐피드도 장님으로 그려진 거란 말이야.'하고 짝사랑에 빠진 헬레나가 하소연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한여름 밤의 꿈」1막 1장에 나오는 데메트리오스를 향한 헬레나의 안타까운 마음이다.


아무리 사랑이 머릿속에서 만들어진다고 해도, 헬레나가 "사랑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머릿속 뇌 신경세포와 시냅스의 연결망으로 보는 것"이라고 말하면 느낌이 어떨까. 멋도 낭만도 간절함도 없다. 과학은 과학이고, 문학은 문학이다. 셰익스피어의 불멸의 명대사는 그대로 둬야 제맛이 난다. 그래야 우리의 삶도 낭만적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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