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봐야 잘 보인다는 거야.
“안녕, 잘 있어." 어린 왕자가 말했다.
“안녕, 잘 가---. 참, 내 비밀을 하나 말해 줄게. 아주 간단한 건데---
그건 마음으로 봐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프랑스의 비행기 조종사이자 소설가인 생텍쥐페리가 쓴 『어린 왕자』에 나오는 구절이다. 어린 왕자와 여우가 작별하면서 나눈 대화다. 여우는 중요한 것을 보는 것은 눈이 아니라 마음이라 일러준다. 소중한 일을 대할 때는 겉으로 드러난 상황에 집착하지 않고 영혼으로 생각하라는 뜻이다. 어찌 이리 옳은 말을 할까. 어린 왕자의 시건이 보통이 아니다. 맞아! 세상은 눈으로 보는 게 다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사람들은 살면서 기쁘고 슬픈 일을 겪는다. 기쁜 일이 생기면 마음은 행복해진다. 슬픈 일이 생기면 마음이 아프다. 마음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어떻게 생긴 것일까? 우리 몸 안 어디에 자리하고 있을까? 심장 아니면 머리? 두개골 안에 자리한 뇌? 어디에서도 마음을 찾을 수 없다. 찾을 수 없기에 당연히 모양도 없다. 그렇다면 모양도 없고, 찾을 수 없는 마음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옛날 사람들은 심장을 마음이라 여겼다. 심장 안에 사랑, 미움, 그리움의 마음이 자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연인과 이별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최근 의학의 발전으로 심장은 우리 몸의 피를 순환시키는 근육 기관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곳은 불멸의 사랑과 애절한 이별의 감정이 머무는 장소가 아니다. 철학적 관점에서 의식이 뇌와 관련 있다는 견해가 오래전부터 있었다.
미국의 신경과학자 조지프 르두(Jodeph LeDoux)의『시냅스와 자아』에서 뇌가 마음을 만든다고 말한다. 그는 심지어 '당신은 당신의 시냅스라'라고 주장했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시냅스가 우리가 생각하고 사고하는 의식과 무의식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처럼 현대 신경과학은 마음은 뇌가 만든다는 것이다. 이처럼 현대 과학은 심장에서 사랑이 꽃핀다는 낭만적인 환상을 무참히 깨부수셨다. 뇌 과학은 감정, 의지, 생각, 사랑은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현상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마음이라 일컫는 감정들은 뇌 신경세포 다발의 활동으로 만들어지고, 그것이 밖으로 표출된 것이다. 뇌 신경세포가 촘촘히 연결된 그물망이 서로 연합해서 마음과 생각을 만든다. 인정하기 싫지만 마음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두뇌에서 만들어진다.
섬세한 너무나 섬세한 머릿속
우리 머릿속에는 뉴런(neuron)이라 불리는 뇌 신경세포가 약 천억 개가 있다. 이렇게 많은 뇌 신경세포가 좁은 머릿속에 오밀조밀하게 붙어 있다. 한 개의 뇌 신경세포는 양쪽으로 잔가지가 많이 달고 있다. 마치 식물의 뿌리에 잔뿌리가 수없이 달린 것과 같다. 잔가지를 모두 합하면 우리 머릿속에는 약 150조 개 이상의 연결망이 있다. 이 복잡한 연결망이 사랑, 예술, 문학, 과학 등 모든 위대한 업적을 만든다. 우리의 마음이 물질적 실체를 바탕으로 한다니 흥미롭지 않은가.
위의 <뇌 신경세포(뉴런)>와 가지> 사진은 우리 뇌 신경세포의 연결망을 시각화한 것이다. 둥글게 보이는 것이 핵이 들어 있는 뇌 신경세포의 몸통이다. 좌우로 뻗어있는 잔가지들은 옆쪽 뉴런으로부터 정보를 받아 다음 뉴런으로 넘기는 통로 역할을 한다. 핵이 든 둥근 세포체와 좌우의 수많은 잔가지가 뇌 신경세포 하나의 구조다. 이것들이 눈, 코, 입, 손, 발 같은 감각기관이 받아들인 정보를 앞이마에 위치한 전전두엽으로 보내서 분석하고 판단한다. 외부의 정보는 전기 신호로 변환되어 뇌 신경세포로 전달한다. 이제 우리는 마음의 실체를 파악하는 문을 열었다.
뉴런과 뉴런이 연결되는 접점을 <시냅스(synapse)>라 한다. 시냅스 앞두의 뇌 신경세포는 붙어 있지 않고 떨어져 있다. 사진처럼 이들 사이에는 약 3.5 나노미터의 아주 미세한 틈이 있다. 전기 신호인 정보가 이 틈을 을 건널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가바, 멜라토닌, 엔도르핀, 엔도카바노이드 등의 신경전달물질이다. 즐거움, 기쁨, 흥분, 의욕 등 사람의 감정을 조절하는 이들 물질이 제대로 강을 건너야 정상적이고 편안한 감정이 만들어진다.
이처럼 외부의 정보가 뇌 신경세포로 전달되면 전기 신호로 변환된다. 변환된 전기 신호의 세기와 여러 가지 신경전달물질의 농도가 마음의 상태를 결정한다. 상심하거나 정신적인 충격을 받으면 시냅스를 건너는 신경전달물질의 종류와 농도의 균형이 깨진다. 마음이 편하지 않고 화가 나거나 우울해진다.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마음은 깊은 우울함에 빠질 수 있다. 드디어 우리는 두뇌가 만든 마음과 만났다.
화학적 행복과 화학적 사랑
유발 하라리 교수의 명저 『사피엔스』를 보면 화학적 행복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의 정신세계와 감정세계는 수백만 년의 진화에 의해 만들어진 생화학적 체제의 지배를 받는다. 우리의 행복은 신경, 뉴런, 시냅스, 세로토니,도파민, 옥시토신 등의 다양한 생화학 물질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가 복권에 당첨되거나 새로운 여인을 찾아서 기뻐 날뛰는 것은 혈관 속을 요동치며 흐르는 다양한 호르몬과 뇌의 여러 부위에서 오가는 전기 신호와 신경전달물질의 폭풍에 반응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컴퓨터 과학자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Raymond "Ray" Kurzweil)은『마음의 탄생』에서 사랑에 빠지면 도파민이 분비되어 행복과 기쁨이라는 감정을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노르에피네프린의 농도가 상승하여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희열이라는 감정에 휩싸인다. 이들 화학물질로 인해 들뜬 기분, 치솟는 기력, 높은 집중력, 식욕상실 등 사랑에 푹 빠진다. 사랑에 빠지는 것도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세로토닌 등의 뇌 신경전달물질이 요동친 결과라고 말한다. 문학적 상상력과 거리가 멀지만, 사랑의 민낯은 머릿속 화학물질의 범벅이라 할 수 있다.
첫눈에 빠지는 사랑도 두뇌 신경전달물질이 만드는 조화다. 행복과 사랑, 그 모두가 뇌 신경회로의 화학적 작용으로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행복감과 사랑은 다시 뇌 신경세포의 전기 신호와 신경전달물질의 강도를 조화롭게 한다. 뇌 신경회로가 마음을 만들지만, 마음은 뇌 신경회로를 활성화한다. 사랑과 미움의 본 모습이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고,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비록 그들이 화학적인 실체라 해도 말이다.
과학은 사랑이 생기는 과정을 설명하고, 문학은 사랑이 만드는 세상을 노래한다. 마음으로 봐야 잘 보인다는 어린 왕자가 말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 마음과 뇌 신경회로는 연리지(連理枝)와 같다. 그래서 과학과 인문학의 만남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절이다. 과학은 상처 난 마음을 치유하고, 인문학은 치유한 마음을 사랑으로 꽃피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