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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Dec 22. 2023

수도원의 시간

<수도원> 사진 : 픽사베이


“댕~~ 댕~~” 은은한 종소리가 깊은 산골 마을로 울렸다. 747~1805년까지 문을 열었던 스위스의 장크트갈렌 수도원(생갈 수도원)의 종소리다. 종소리에 맞춰 사람들은 잠에서 깨어 아침을 시작한다. 수도원의 종소리는 사람들에게 해 뜰 때와 해질 때를 가늠하게 했다. 이곳의 수도사들은 시간을 측정하는 도구를 만드는 데 유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중세가 끝나고 중상주의가 시작되자 시간의 개념이 더욱 중요해졌다. 당시의 학자들은 고대 문명부터 점진적으로 발달해 온 시간, 분, 초의 개념을 제도적으로 정립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1시간 60분, 1분 60초가 이 시기에 활발하게 사용됐다. 시간의 분할은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왔다. 사람들은 시간에 맞춰 살게 되었고, 시간에 동기화해 생활하게 됐다. 더 이상 배꼽시계와 생물학적 직관으로 생활하지 않게 된 것이다. 


불교에는 겁(劫)이란 시간 단위가 있다. 하늘에서 선녀가 백 년에 한 번 내려온다. 선녀의 비단 치마가 사방 십 리의 돌산에 스치면 바위가 닳는다. 그렇게 해서 돌산이 다 닳아 없어지는 시간이 1겁(劫)이다. 천 년에 한 방울 떨어지는 물로 큰 바위에 구멍을 내는 시간을 1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겁(劫)은 수도원의 시간보다 크기의 차이가 엄청나다. 


겁(劫)은 세계가 만들어졌다가 파괴돼 무(無)로 돌아가는 기간을 뜻한다. 세상이 생겼다가 모두 사라지고, 다시 새로운 세상이 시작할 때까지의 시간이다. 불교에서의 겁은 단순히 시간의 길이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인식을 초월하는 우주적, 영적 차원의 시간을 상징한다. 1겁만 해도 이렇게 유장한 세월인데, 영겁(永劫)과 억겁(億劫)은 도대체 어느 정도로 긴 시간일까? 감히 상상조차 허락할 수 없다. 


수도원의 시간은 섬세하고 실천적이다. 동시에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다. 반면에, 불교의 시간은 포괄적이고 관념적이다. 동시에 추상적이고 깨달음이다. 수도원의 시계를 통해 영겁을 본다면 어떻게 될까? 찰나의 현실 속에서 불멸의 진리를 얻는 길이 될 것이다. 세상을 보는 서로 다른 시선이다.


올해도 열흘 채 남지 않았다. 억겁의 시간으로 보면 너무 짧은 찰나다. 2023년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10년 전에만 알았다면 참 좋았을 것이다. 오늘은 10년 전의 미래이면서, 동시에 10년 후의 과거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현재는 한때의 미래였고, 또 다른 시점의 과거인 셈이다. 그러니 과거와 미래가 함께하는 현재가 얼마나 소중한가. 그런 마음으로 수도원의 시간 속에서 억겁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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