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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May 24. 2024

알마티(Almaty)의 이방인

젠코프 성당(Zenkov's Cathedral)



지난주 내내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에 있었다. 일곱 시간 약간 못 미치는 비행시간과 4시간의 시차가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곳이다. 늘 그렇지만, 낯선 도시의 첫날밤은 설레는 마음에 잠을 설친다. 이른 아침 숙소 밖으로 산책을 나선다. 비 개인 거리는 어디서든 맑고 깨끗하다. 주택과 사무실이 구분되지 않는 곳이다. 거리는 한산하고 드문드문 사람이 지난다. 내처 걷다 보니 한적한 주택가 골목이다. 큰 나무들이 작은 숲을 이룬다. 이국의 풍경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공식 일정을 모두 마치고, 귀국하기 전 이틀을 오롯이 알마티 탐색으로 보냈다. 도시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익숙지 않은 것이 주는 신선함에 빠졌다. 와이파이가 되는 지역에서만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번역기도 없는 탓에 임기응변으로 버텼다. 가기 전에 익혀둔 러시아어 알파벳과 몇 마디 단어, 그보다 조금 나은 영어로 도시를 탐험했다. 생각보다 알마티의 치안은 좋았고, 거리는 안전하다. 사람들도 친절하고 순수했다. 선뜻 먼저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도 여행자에게 도움을 주려 애쓴다.


띄엄띄엄 읽는 수준의 러시아어라 아주 가끔 아는 단어가 나오면 반갑다. 아뿔싸, 카자흐스탄 알파벳이 러시아어 알파벳보다 9개나 많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42개의 카자흐스탄 알파벳을 외우고 올 걸 살짝 후회도 했다. 단어 사이에 낀 낯선 알파벳에 당황했다. 외국어 배우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 단어 몇 개 안다고 대수일까, 그 또한 요긴할 때가 있다. 길을 걷다 영어로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소통하는 데 한결 도움이 되긴 했다.


"사과의 아버지"라는 이름을 가진 알마티는 사과의 원산지 중 하나로 알려졌다. 카자흐스탄의 남동부에 위치한 이곳은 과거에는 카자흐스탄의 수도였다. 지금도 카자흐스탄의 경제, 문화, 교육의 중심지답게 알마티에는 큰 빌딩이 즐비하다. 이 도시는 금융, 무역, 관광, 교육, 그리고 제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의 주요 은행과 기업들이 알마티에 본사를 두고 있고, 우리나라 기업도 많이 진출했다. 저 멀리 현대라는 이름을 붙인 고층 빌딩이 눈에 보인다.


눈이 덮인 하얀 봉우리가 병풍처럼 도시를 둘러싸고 있다. 오래전 실크로드의 중요한 경유지였던 이곳은 이슬람 문화를 포함한 다양한 문화와 유산이 공존한다. 최근 빠르게 발전하는 도시의 현대미가 옛것들과 어우러져 한껏 이국의 풍경을 뽐낸다. 고려인들을 포함한 다양한 민족이 더불어 사는 곳답게 시내 곳곳은 마치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어떤 이는 행복한 얼굴로, 또 어떤 이는 침묵하며 거리를 지난다.


오롯이 혼자서 낯선 도시의 구석구석을 돌아본다. 간혹 마주치는 낯선 사람과 대화도 즐겁다. 우연히 만난 친절한 카자흐스탄의 세일즈맨이, 이제 갓 40이 된 그는 한국에 관심이 많다. 카자흐스탄 국립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는 그는 꽤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한다. 한국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경제 성장을 이루었느냐는  그의 질문에 당황했다. 이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이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한참이나 걷다 헤어졌다. 언제 다시 만나자는 약속도 없는 그것이 여행지의 만남일 것이다.


구글 맵조차 사용하지 않고 걷고 또 걸었다. 인구 약 116만 명인 알마티는 도시가 너무 크지 않아 탐험하기 좋다. 전통시장과 유적지가 가까운 곳에 있어 찾아가기가 어렵지 않다. 1시간 안쪽에 있는 곳은 걸어서 가고, 그보다 더 먼 곳은 얀덱스라는 카자흐스탄의 우버 택시를 이용했다. 택시 요금이 우리나라의 1/3 수준이라 가끔 이용할 때는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이틀 만에 감히 알마티를 볼 수 있다면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저 몇 군데 중요한 곳을 방문했다는 뜻에 지나지 않는다.


혼자 하는 여행은 고독하면서 자유롭다. 그 묘한 역설을 탐닉하러 혼자 여행하는지도  모르겠다. 거리의 소음과 자동차 매연 냄새도 싫지 않다. 먼지가 날리는 거리의 카페에서 마시는 짙은 아메리카노도 좋다. 지나는 사람과 거리 풍경을 바라보며 몇 자 끄적이며 짐짓 에뜨랑제의 흉내를 내본다. 기대하는 것보다 현실이 못할 때 실망하지만, 알마티 여행은 기대보다 좋았다. 어쩌면 처음부터 크게 기대하지 않고 떠났다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이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출장과 함께한 여행인지도 모른다.


아직 여독이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다. 며칠 간의 강행군으로 쌓였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며칠은 취생몽생(醉生夢生)한 시간을 보냈다. 뭔가에 취한 듯하고, 꿈꾸는 듯한 그런 시간 말이다. 시간이 나면 차차 그곳의 이야기를 풀어갈 생각이다. 아직은 알마티의 여운이 진하게 남았다. 그 느낌만으로 당분간은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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