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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Jun 16. 2024

지금은 격려와 믿음이 필요하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이고 싶다. 

만월산(滿月山)에 올랐다. 말이 좋아 산이지 높이가 채 190미터도 안 된다. “산이 높지 않아도 신선이 있으면 유명한 산이다. 물이 깊지 않아도, 용이 있으면 신령한 물이다"라고 말한 당나라 시인 유우석(劉禹錫)의 말을 믿어 본다. 만월산에 신선이 사는지 모르지만, 그런 마음으로 산을 올랐다. 오늘은 특히 일행과 함께 산을 찾았다.


만월산에는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자리가 있다. 등을 기대고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넓은 바위가 있다. 원래 그 자리는 바람의 것이다. 그곳에 앉으면 늘 바람이 반긴다.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만이 그의 존재를 말해준다. 초여름, 초록의 바다에 이는 잔물결은 그의 숨결이다. 우리는 그곳에 앉아 두런두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눴다.


때마침 바람이 설핏 불어왔다가 소리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아무 흔적도, 미련도 남기지 않고 바람은 사라진다. 만월산의 바람은 "성긴 대숲을 지나도 소리를 남기지 않는" 채근담의 바람이고, "그물에 걸리지 않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불교 <숫타니파타> 경전의 바람이다. 바람은 어떤 욕망도 품지 않고, 애착을 남기지 않는다. 만월산의 바람도 이내 미련 없이 제 갈 길을 간다.


나도 그러고 싶다. 욕망을 싹 버리고 내려놓고 싶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같은 마음을 갖고 싶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잘 안된다. 마음을 꺼내 세탁기에 넣고, 한번 돌리고 싶다. 유기농 표백제로 제대로 세탁하면 덕지덕지 붙은 온갖 잡생각이 떨어져 나갈 것이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비운다는 건 참 힘든 일이다. 비우는 척이라도 하면 조금 나아지려나. 


지금은 격려와 믿음이 필요하다. 

일행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세상에 어느 부모이든 자식들이 꽃길 걷기를 희망한다. 자식들이 험한 일 겪지 않고 순탄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것은 모든 부모의 마음이다. 사는 일은 곳곳에 숨겨진 지뢰밭을 피하는 길이다. 나만 잘한다고 다 해결되지 않는 것이 삶이다. 이미 그 길을 걸어본 부모는 그 사실을 안다. 그렇다고 그걸 구구절절 말해봤자 자식들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자칫하면 꼰대라는 소리 듣기 십상이다.


부모는 늘 자식들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고, 버팀목으로 살고자 한다. 자녀가 어릴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아이가 자라고 어느덧 성인이 되면 부모는 나이를 먹는다. 어느 날 문득 부모가 영원히 자녀의 방패막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느낀다. 마음이 초조해지고 자녀가 빨리 자리 잡기를 원한다. 노파심과 안타까움에 조언하고,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머리 굵은 자녀의 반응은 어떨까? 부모의 초조한 마음을 전혀 알아주지 않는다. 그저 잔소리가 늘었다고 핀잔주기 일쑤다. 아니면 알았다고 단호하게 말문을 막아버린다. 속이 답답하고 실망감이 밀려온다. 이럴 때면 “자식이나 아내에 대한 애착은 마치 가지가 무성한 대나무가 서로 엉켜있는 것과 같다. 죽순이 다른 것에 달라붙지 않도록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고 말한 <숫타니파타> 경전이 생각난다.


자식이나 아내에 대한 애착을 끊는 것이 가능할까? 보통 사람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그렇다고 진짜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을 무 베듯 끊으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기대치를 낮추고, 아니 기대치를 그대로 두고 기다려주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충분히 잘했고, 앞으로 그럴 것이라는 믿음을 간직하면 된다. 우리 자신이 초조해하는 것은 아닐지 곰곰이 따져 볼 일이다. 아이들도 분명 자기 나름의 계획이 있다. 언제 가는 그렇게 말할 날이 올 것이다.


"너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하고 안도의 말을 되뇔 것이다. 아직 실망할 일은 없다. 지금은 따뜻한 격려와 믿음이 필요하다. 걱정은 나중에 실컷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때면 너무 늦지 않느냐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테니, 미리 당겨서 머리 아플 필요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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