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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May 03. 2024

시간의 화살(time's arrow)


커피에 우유를 넣으면 검은색의 커피 우유가 된다. 혼합 과정에서 커피와 우유의 분자가 섞이면서 원래보다 무질서한 상태로 변한다. 커피와 우유가 따로따로 존재할 때는 각각의 분자 구조가 더 조직적이고 규칙적이었지만, 두 물질이 섞임으로써 원래보다 무질서의 정도가 높아진다. 방 안에 히터를 켜면 히터에서 나온 열이 방 안 공기에 전달되어 방 전체의 온도가 올라간다. 이때 열은 고온에서 저온으로 자연스럽게 퍼지며, 이 과정에서 방 안의 열에너지는 무질서하게 분산된다. 


모든 사물이나 물질은 시간이 흐르면 무질서의 정도(엔트로피)가 높아지지 절대 낮아지지 않는다. 이것은 물리학의 열역학 제2 법칙이다. 우주의 역사를 보면 초기 상태는 상대적으로 질서가 있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별과 각종 천체의 형성, 별의 폭발 등으로 우주는 더 무질서한 상태로 변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의 상태는 시간이 흐르면서 질서에서 무질서로 변할 수밖에 없다. 


뜬금없이 무슨 열역학을 말하느냐고? 좋은 질문이다. 시간의 화살(time's arrow)이라는 말이 있다. 시간은 화살처럼 시위를 벗어나면 오직 앞으로, 즉 과거에서 미래로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는 말이다. 이 말은 열역학의 제2 법칙에서 시간이 흐르면 필연적으로 무질서의 정도가 높아지고, 거꾸로 가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 무질서의 정도(엔트로피)는 증가하지만, 결코 낮아지는 법이 없다는 사실은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로만 흐른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잣대이다. 


시간의 화살은 우리를 나이 들게 한다. 그것은 우리 몸을 상대적으로 정돈된 질서에서 무질서한 상태로 만든다. 결국 시간이 거꾸로 흐르지 않듯이 우리 몸도 열역학 제2 법칙인 무질서도의 증가 법칙을 따른다. 구체적인 예를 살펴보자. 


우리 몸의 세포들은 시간이 지남에 DNA 복제 오류, 산화 스트레스, 단백질 변형 등으로 손상된다. 이러한 손상은 세포의 기능을 저하시키고, 심지어 세포의 죽음을 초래한다. 이는 세포 내부의 균질한 상태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질서해지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사람의 몸은 나이가 들면서 차츰 무질서하게 변한다. 젊었을 때는 스트레스와 손상에도 몸의 회복 속도가 빠르지만, 나이가 들면서 회복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이 또한 인체의 시스템이 더 무질서해짐에 따라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나이가 들면 피부의 탄력성이 감소하고, 주름이 생긴다. 피부를 구성하는 중요 단백질인 콜라겐과 엘라스틴 섬유는 피부의 탄력과 탄력성을 유지하는 버팀목이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시간의 화살은 이들 단백질의 생산을 줄이고, 피부를 지지하는 단백질층을 무너뜨리는 무질서의 정도를 높인다. 이와 동시에 피부의 수분과 지방층이 감소하면 피부는 더욱 건조해지고, 그 결과 주름과 쭈글쭈글함이 심해진다. 


피부의 색소 침착 또한 불규칙해져 각종 반점, 기미가 생기는 것도 시간의 화살이 만드는 무질서의 정도가 높아지는 현상이다. 머리카락은 멜라닌 색소의 생산 감소로 인해 점차 회색이나 백색으로 변한다. 머리카락의 두께도 얇아지고 탈모가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 눈 주변에는 미세한 선들이나 깊은 주름이 형성되기 쉽고, 눈 밑 부위에는 다크서클이나 부기가 생긴다. 한마디로, 동안의 피부 조직이 무질서한 상태로 변해 어느덧 노안으로 변한다. 


세월이 주는 변화는 몸매를 엉망으로 만든다. 나이가 들면서 근육량이 감소하고 체지방 분포가 변화한다. 그 결과는? 근육의 부피가 줄어들고 탄력성이 감소함에 따라 팔, 다리, 복부의 피부가 늘어지고 처진다. 특히 체지방이 상체와 복부에 더 많이 축적됨으로써 몸매는 원형에 가깝게 변한다. 젊은 시절 날렵한 몸매는 어디로 사라지고 둥글둥글한 몸매로 변한다. 아뿔싸, 언제부터인가 몸의 내부 조직이 무질서해진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겪게 되는 심리적 변화는 또 어떤가? 신체적 능력은 감소하고 기억력이 떨어진다. 건강도 예전 같지 않아 삶의 두려움이 찾아온다. 막연한 두려움과 자신감의 하락은 종종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진다. 밖에 나가기가 점차 싫어지면서 혼자 집 주위를 방황하는 일이 잦아진다. 그렇게 죽고 못 살 것 같은 친구들도 내 마음 같다. 자주 마음이 심란해지거나 남들과 어울리지 않고 우울해하는 횟수가 늘어난다. 젊을 때 그렇게 단단했던 마음의 상태가 무질서하게 변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까 나이가 드는 것이 너무 바람직하지 않은 일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나이를 안 먹을 수는 없는 법이니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 사실 나이가 들면서 좋은 점도 많다. 우선 나이가 들면서 많은 사람은 젊은 시절 겪었던 시행착오를 통해 터득한 지혜로 새로운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다. 삶의 많은 문제들을 보다 폭넓은 시각에서 이해하고 해결하는 것도 나이 듦의 지혜이다. 


삶의 소란을 뒤로하고 자기 내면에 집중함으로써 깊은 내적 평화를 경험하는 것은 나이 듦의 좋은 현상이다. 외부 스트레스 요인들에 대해 덜 반응하게 만들고 자신의 감정과 욕구에 더 집중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서 진정한 우정과 사랑을 깊이 이해하고 가치를 두면, 더 깊고 만족스러운 인간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일상의 작은 일에도 감사하게 여기고, 이는 삶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 것이다. 


시간의 화살은 몸과 마음의 엔트로피를 증가시키고, 상태를 무질서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노력에 따라 무질서해지는 속도를 늦추고 질서를 더 오래 유지할 수도 있다. 시간의 화살이 가진 속도를 줄이는 것은 가능하다는 말이다. 어차피 그렇게 될 것이지만, 더 질서 있게 사는 것은 자기 노력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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