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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Oct 24. 2022

비범함의 슬픔, 평범함의 행복

비 내리는 산사의 풍경

8월 산사 여행 이튿날 비 오는 일요일을 맞았다. 현불사 본당 앞에는 작은 마루가 딸렸다. 외람스럽게도 부처님을 등 뒤에 두고 앉았다. 비를 맞으며 달려온 왕금산 끝자락이 절 마당을 포근히 감싼다. 거친 비바람이 불까 봐 산은 온몸으로 막아선다. 맞은편 산등성은 안개에 젖어 꾸벅꾸벅 졸고 있다. 깨완수토굴 앞 실개천에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돌돌 개울물이 흐른다.

     

취정선원 앞의 높다란 벽오동 나뭇잎도 얼굴을 씻는다. 금방이라도 초록 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다. 후드득 흩날리는 빗방울에 금계국과 벌개미취도 말끔하게 단장한다. 빗방울이 풀밭에 부딪혀 흩어진다. 꽃잎들은 제 세상 만난 것처럼 찧고 까분다. 풀숲의 벌레들도 빗물에 씻기 바쁜지 말이 없다. 이런 날은 풀잎 자라는 소리만 유난히 크게 들린다.

       

짙은 초록 잎들이 부는 바람과 장난하며 노느라 앞다투어 가볍게 웃는다. 곧게 자란 홍송(紅松)도 비에 젖은 머리를 흔든다. 살며시 손 내밀어 빗방울을 만져본다. 비 내리는 날 산사의 풍경은 너무 멋지다. 천의무봉(天衣無縫)이라 했든가. 하늘이 그린 풍경화에는 붓질 자국이 없다. 군더더기 없는 초록과 연두의 천국이다. 비에 젖어 예쁜 산사의 풍경은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다.           




솜씨 좋은 화가는 비 오는 풍경을 얼마나 예쁘게 잘 그릴까. 그뿐인가. 흐르는 강물, 잎새에 스치는 바람, 봄날의 꽃, 한여름의 거센 폭풍우, 불붙은 가을 산, 하얀 눈이 덮인 촌락, 그들 손이 닿으면 어디 하나 예쁘지 않은 구석이 없다. 눈에 밟히는 풍경을 캔버스에 옭기는 그들의 재주가 부럽다. 나도 한번 그려 볼 요량으로 붓을 잡아도 거친 붓질에 경치가 탁해진다.      


그림을 그리겠다는 욕심이 화근이다. 그 정도 깜냥이 아닌 솜씨로 자연을 화폭으로 옮기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노력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재주가 모자라는 것이 더 큰 이유다. 보는 건 쉽다. 화가들은 그림을 참 쉽게 그리는 것처럼 보인다. 막상 내가 그리려 하면 그게 무척 어렵다는 것을 안다. 얼마나 많이 붓질했으면 이리도 부드럽게 그릴까.

 

그림은 안 된다고 쳐도 글로 쓰자. 그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풍경을 앞에 놓고 보니 생각이 막힌다. 좌절의 순간이다. 힘이 빠지고 의욕이 떨어진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으면 늘 부럽다. 질투와 시샘이 발전을 불러오는 동력이라 하지만, 매 순간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건 슬프다. 하긴 고려시대의 대문장가인 김황원이 부벽루에서 통곡한 이야기를 들으면 평범함이 오히려 고맙기도 하다. 


고려의 대시인 김황원(金黃元, 1045년 ~ 1117년)은 해동 제일의 문장가라 칭송받았다. 그는 시에 관한 한 따를 사람이 없는 천하의 문장가였다. 어느 날 그는 대동강의 부벽루에 올라 절경에 넋을 잃었다. 그곳에 걸려 있는 시들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들을 모두 불태우고 자신이 직접 시를 쓰기 시작했다. 


'長城一面溶溶水, 大野東頭點點山(장성일면용용수 대야동두점점산)     

긴 성곽의 한쪽에는 강물이 넘치고, 너른 들 동쪽 끝으로 점점이 산이로구나.'    


시작은 좋았다. 문제는 여기서 붓이 멈추고는 한발도 더 나가지 못했다. 나머지 두 줄을 채워야 부벽루와 강변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데 그게 되지 않는다. 부벽루 난간 앞으로 나아가 강변을 몇 시간째 바라봤다. 안타깝게도 새하얀 여백 앞에서 붓을 잡은 그의 손은 떨기만 했다. 해는 지고 아름답던 풍경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더 이상 시상이 떠오르지 않자 김황원은 부벽루 기둥을 잡고 한참이나 통곡했다.


비범함의 슬픔

비 오는 풍경의 아름다움과 분위기에 취해서인지 탐미주의 소설이 떠오른다. 아름다움만을 추구하고 그것을 탐닉한다는 그 탐미주의(耽美主義)의 말이다. 대표적인 소설 가운데 하나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설국(雪國)'이다. 소설 '설국'은 1968년 일본인 최초로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노벨문학상을 받게 해 준 작품이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끝자락은 이미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췄다. 맞은편 좌석에서 처녀가 일어나더니 시마무리 앞의 유리창을 열었다. 차가운 냉기가 밀려들었다."


이렇게 소설은 시작한다. 도회를 떠난 주인공이 터널을 지나자 눈으로 덮인 전혀 낯선 세상으로 들어왔다. 많은 평론가가 이 문장을 소설의 시작을 알리면서 강렬한 색채를 떠올리게 하는 명문장으로 평가한다.


소설은 눈 때문에 고립된 설국의 서정을 세심하고도 아름답게 그렸다. 작품의 배경은 환상적인 아름다운 정경이다. 그 속에서 지순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여인을 감각적이며 섬세하게 그렸다. 황홀하게 타오르는 붉은 불빛과 하얀 눈, 그러고 은하수가 흐르는 밤을 그렸다.           


노벨상을 받은 후 4년이 지난 1972년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자살한다. 그가 1899년생이니 72세의 나이로 죽었다. 유서는 없었고 경찰은 수사 결과 '일산화탄소 중독이 원인이 된 자살'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룰 것 다 이룬 늦은 나이에 그는 왜 자살했을까? 일부에서는 자살한 것이 아니라 사고로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야스나리는 노벨상 수상 이후 창작 활동이 지지부진한 것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서 더 이상의 아름다운 작품을 쓸 수 없다는 절박감에 자살했다는 말이 나온다.    

    

또 하나 야스나리에게 극도의 허무감을 안겨준 사건이 애제자이자 동료였던 미시마 유키오(三島 由紀夫)의 죽음이다. 그는 ‘금각사(金閣寺)’라는 탐미주의 소설을 남긴 작가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미시마 유키오 두 사람은 일본적 미학을 극단적으로 추구했다는 점에서 닮은 점이 많았다. 미시마 유키오의 극단적 행동과 극우파적 자살에 충격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깊은 허무에 빠졌다.           


평범하지 않지 않는 그들은 비범함의 슬픔을 느낀 모양이다. 탐미주의의 비애라고 해야 할까.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더 이상 아름다운 작품이 쓸 수 없다는 절박감으로 자살했다는 소문에 무게를 두고 싶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죽음이라 그런 미학적 이유가 있지 않을까.      


세상의 수많은 대가도 마지막 순간까지 깨달음을 위해 고민했다. 비움과 깨달음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말해준다. 그것이 절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런데도 끝까지 공부한다는 생각에 마음만은 풍족하다. 공부는 기억 시스템을 바꾼다.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은 유연하게 사고한다. 사고가 유연해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남에게 보여주는 공부가 아니라 깨달음을 얻는 공부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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