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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Oct 24. 2022

비었다와 비워야 한다. 둘 사이가 너무 멀다.

세상은 도대체 어떻게 생긴 걸까?

도대체 세상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그림 같은 아름다운 풍경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하늘은 신묘한 재주로 천의무봉의 세상을 그려냈다. 그런데 이 세상은 도대체 무엇인가?


‘마트료시카’라는 러시아 인형이 있다. 인형 안을 열면 인형이 나오고 또 인형이 나온다. 인형이 인형을 품고, 다음 인형이 그 인형을 품는다. 이렇게 열다 보면 많게는 수십 개의 인형이 있다. 마지막 인형의 크기는 인형을 더 품을 수 없을 만큼 작다.       


러시아의 마트료시카 인형


우리가 사는 세상도 이 러시아 인형을 닮았다. 세상은 물질로 이루어졌다. 모든 물질의 근원을 찾아가면 원자를 만난다. 물질의 고유한 성질을 지닌 가장 작은 것이 원자다. 원자 안에는 핵과 전자가 있고, 핵 안에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있다. 양성자는 쿼크를 품고 있다. 마치 러시아 인형이 더 작은 인형을 품고 있는 것과 같다.



사진 출처 https://v.daum.net/v/20161020135306987



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크기는 러시아 인형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다. 원자핵을 지름 22cm인 축구공이라 하면 이것을 중심으로 40km 떨어진 곳에 0.02cm 크기의 전자가 돌고 있다. 반경 40km의 크기를 가진 것이 원자의 기본 모형이다. 이 데이터는 위의 사진이 실린 기사 내용을 참고로 했다.


말하자면, 원자는 서울시청 앞의 축구공을 중심으로 약 40km 떨어진 수원 시청에 전자가 먼지처럼 돌고 있다. 축구공인 원자핵 안에는 양성자가 있고, 양성자 안에는 0.02cm 크기의 쿼크가 있다. 쿼크를 중심으로 해서 40km 떨어진 곳에 전자가 돌고 있는 것이 물질을 이루는 원자다.      


실제 원자의 크기는 10의 마이너스 8승 cm이다. 이 크기가 너무 작아 상상이 잘 안된다. 원자핵에 전자 하나가 돌고 있는 가장 단순하고 작은 수소 원자의 크기는 4조분의 1cm에 불과하다. 상상이 안 되는 작은 크기다. 원자 내부에 있는 원자핵의 크기는 4,000조분의 1cm이고 전자와 쿼크의 이보다 1만분의 1 크기다.    


비었다는 것

이렇게 숫자를 굳이 정리해 본 것은 원자의 크기가 얼마나 작은 가를 알아보기 위함이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자의 크기는 작아도 너무 작다. 우리가 아는 물질의 근본을 쪼개고 또 쪼개고서 안을 들여다보니, 그곳에는 있으나 마나 한 크기의 쿼크만 존재한다. 문제는 원자의 공간이 쿼크를 빼고 나면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물질의 내부는 99.9999%가 비었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지금부터가 머리 아픈 이야기다. 쿼크는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 현대 물리학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해답을 찾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학설 가운데 가장 그럴듯한 것이 파동, 즉 끈으로 설명하는 초끈이론이다. 쿼크 내부에는 오직 끈의 파동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질의 근원에는 실체가 없고, 오직 변화무쌍한 파동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고정 불변한 실체가 없고, 오직 변하고 생성하고 소멸한다는 것이 불교의 진공묘유다. 초끈이론과 유사하지 않은가? 실체가 없고 변화무쌍한 파동이 어떤 조건에서 뭉치면 쿼크라는 실체를 만든다. 쿼크라는 실체는 양성자를 만들고 그것이 모여 원자를 만든다. 이렇게 세상은 만들어지고 우리가 세상에 존재한다. 파동은 원인이고 어떤 조건은 연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인과 연이 만나 물질이 생기고 마음이 생기는 인연생기(因緣生起)가 아닌가?      


정말 이해하고 해석하기 힘들다. 양자물리학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골치가 찌근거린다. 한마디로 수박을 겉만 핥은 습자지 지식이다. 나의 얕은 지식이 가져올 오류의 가능성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한다.


비워야 한다는 것

반야심경에서 말한 색즉시공의 공(空)이 이걸 뜻하는가? 단지 물리적 공간이 비었다는 것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생각과 사유를 포함한 모든 것이 허상이라는 뜻이다. 그건 계속해서 알아볼 것이다. 참 어렵고 힘든 공부다. 그렇지만 세상의 본질이 무언지 알려면 이 정도 고통은 감내할 수밖에 없다.


질투와 번뇌를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번뇌의 뿌리는 욕망이요, 욕망이 원인이다. 물질이 영원할 거라는 믿음, 사는 동안 돈과 재물은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욕망을 부른다. 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것도,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것도 욕망이다. 욕망이 미혹(迷惑)을 깨치지 못하게 한다. 비우면 편해질 마음을 비우지 못하게 만든다. 물질은 비었고 억겁의 세월이 지나면 사라지고 말 허상이다. 그러니 마음을 비워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다.


더 가지려고 남보다 더 앞서려는 욕망은 끊임없는 번뇌를 불러온다. 찰나처럼 살다 갈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가. 모두 일시적이고 소멸할 것이고 허상일 따름이다. 지혜롭게 살기 위해서는 욕망을 끊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욕망을 다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생존과 인간다움을 위한 최소한의 욕망을 남기고 나머지 것들을 줄인다면 사는 일이 한결 편해질 것이다.      


이런 면에서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교수의 이야기를 인용해도 좋겠다. 그는 사람들이 번뇌에서 벗어난 길은 이런저런 즐거움을 느낀느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감정이 영원하지 않다는 속성을 이해하고 이에 대한 갈망을 멈추는 데있다고 말한다. 즐거움, 분노, 권태, 정욕 등 모든 종류의 감정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사라진다. 일단 특정한 감정에 대한 추구를 멈추면 어떤 감정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이렇듯 세상은 공하고 늘 변화하고 소멸한다는 걸 깨치면 나아질 것이다. 현상인 색에 덜 집착하면 마음의 공을 유지하기 쉽다. 욕망과 욕심을 줄이면 행복의 신경전달물질이 시냅스의 강을 잘 건넌다. 비워야 행복하다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깨달음이다. 깨닫고 행동으로 옮기면 우리의 뇌도 행복해한다.  


깨달음은 깊은 산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생활 속에서 얼마든지 깨칠 수 있다. 세상에는 깨달음을 얻고도 겸손하게 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그들은 사랑을 실천하면 살아간다. 잘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행동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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