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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Oct 24. 2022

시간이 흐르지 않고, 우리는 늙는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찰나(刹那)의 순간

“땡~~ 땡~”하고 수도원의 철제 종이 울리자 마을 사람들은 잠에서 깼다. 스위스 장크트갈렌(독일어: Sankt Gallen) 마을에는 747~1805년까지 문을 열었던 장크트갈렌 수도원(생갈 수도원)이 있다. 수도원의 종이 울리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자연과 신체의 생물학적 리듬에 맞춰 생활했다.    


규칙적으로 울리는 수도원의 종소리는 인간의 뇌에서 시간이 연속적이라는 개념을 없앴다. 종소리에 맞춰 이 일을 하다 저 일을 해야 했다. 마을 사람에게 시간은 더 이상 연속적인 현상으로 경험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인간이 만든 시간을 맞춰 생활하게 됐다. 심지어는 인간의 생물학적 일주기의 선천적인 리듬조차 거기에 예속시켜버렸다.      


듀크 대학교 신경생물학 교수 니겔 니코렐리스(Miguel Nicolelis)의 저서 『뇌와 세계』에 나오는 시간 개면의 시작을 그린 내용이다. 니코렐리스에 따르면, 1354년이 되어서 1시간을 60분, 1분을 60초로 만들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런 시간 나누기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살아가는 방식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말하자면, 인간의 행동을 동기화시키기 위해 인위적인 시간 나누기가 시작된 것이다.


시간은 실체가 없다. 본 적도 없고 만져본 적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흐른다는 말인가? 그러니 시간이라는 것은 우리가 만든 관념이고 개념이다. 시간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물리적 의미를 갖는 어떠한 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시간이 나이 듦 같은 사건을 측정하기 위해 만든 단위라고 보는 게 좋겠다.


지구가 자전하고 공전하는 동안 우리 몸과 자연에도 변화가 있다. 그것이 누적되면 우리 몸의 세포도 늙고 노화현상이 일어난다. 얼굴에는 주름이 생기고 피부의 탄력이 준다. 세월이 흐른다는 것은 지구의 공전과 자전이 반복되는 동안 모든 것이 변한다는 뜻이다.


불교에는 겁파(劫波)의 준말인 겁(劫)이란 시간 단위가 있다. 한 세계가 만들어졌다가 파괴돼 무(無)로 돌아가는 기간을 뜻한다. 사방 십 리에 쌓은 돌산이 있다.  선녀가 하늘에서 백 년에 한 번씩 내려온다. 그 녀의 비단 치마로 스쳐 그 바위산이 다 닳아 없어지면 1겁이 흐른다. 1겁의 시간 동안 지구는 태양 주위를 얼마나 많이 공전할까?


한계시속체증(限界時速遞增)의 법칙

"우리는 항상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신학자 칼뱅의 말이 떠오른다. 모든 사람은 하루하루 죽음이라는 목적지에 가까이 다가간다. 살날이 많이 남은 사람은 목적지까지 거리가 멀다. 그런 사람에게 시간은 더디 간다. 나이가 들면 목적지가 가까워지고, 남은 시간이 점차 줄어든다. 그런 사람의 시간은 빨라진다.


2020년 한국인의 기대 수명은 83.5세다. 나이가 어리면 남은 시간이 많아 시간이 더디게 흐른다. 기대 수명까지 남은 시간이 적으면 시간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르다. 이것을 한계시속체증(限界時速遞增)이라고 하자. 나이가 84세에 점점 다가갈수록 시간의 한계속도는 가속적으로 빨라진다.


사람들은 50대의 시간은 시속 50km이고, 60대와 70대의 시간은 각각 시속 60km와 70km라고 말한다. 이 말은 틀렸다. 남은 시간이 짧을수록 한계시속은 가속적으로 흐른다. 인생의 반환점을 돌고 난 후부터는 시간이 10km씩 일정하게 빨라지는 게 아니다. 50대가 시속 50km이면, 60대는 시속 100km로, 70대는 시속 200km의 속도로 빨라진다고 봐야 한다.


사이언스온이라는 사이트에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빠르게 흐를까?'라는 글이 실렸다. 한계시속체증과 유사한 내용이라 재밌게 읽었다. 심리학자 피터 멩건 박사(Peter A. Mangan)가 20대 젊은 사람들과 60대 나이 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3분의 시간을 맞추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20대 참가자들은 3분이라는 3분 3초라 느꼈다. 반대로 60대 참가자들은 3분 40초가 지나서야 3분이라고 말했다.   


헛갈리기 좋은 이야기라 생활 속의 이야기로 다시 정리해 보았다. 12시에 점심을 먹고 3시간 후에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물론 시계를 보지 않고 느낌만으로 약속 시간에 와야 한다. 20대 참가자들은 3시 3분에 도착했지만, 60대 참가자들은 3시 40분에 나타났다. 그러면서 그들은 당황해서 이렇게 말했다.


"아니 이제 오후 3시인 줄 알았는데 벌써 오후 3시 40분이라고?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지났지?"


60대 참가자들은 실제 시각 3시 40분을 3시로 착각했다. 3시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빨리 지나는 줄 몰랐다. 맹건 박사는 이런 착각이 나이에 비례해 더욱 심해진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면서 나이가 들면 우리 뇌 안에서 도파민 흐름이 변화를 일으켜 시간 감각이 빨라진다고 말한다. 남은 시간이 얼마가 되더라도 아직 여우가 있다고 생각하자. 생각이 도파민 흐름을 바꾼다. 


"매일매일 마지막 날로 생각하라. 그러면 기대하지 않았던 시간으로 충만해짐을 느낄 것이다"라고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멋진 시를 남겼다.


오늘은 어제의 생각에서 비롯되었고 현재의 생각은 내일의 삶을 만들어간다

“오늘은 어제의 생각에서 비롯되었고 현재의 생각은 내일의 삶을 만들어간다. 삶은 이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이니 순수하지 못한 마음으로 말고 행동을 하게 되면, 고통은 그대를 따른다. 수레의 바퀴가 소를 따르듯…”이라고 불교 경전 법구경(法句經)이 일러준다. 그러면서 "어제의 쌓인 마음이 오늘의 마음을 만들었다. 오늘 어떤 마음을 갖느냐는 내일의 삶을 결정한다."라는 말을 덧붙인다.


오늘 내 모습은 어제의 욕심이 쌓인 것이다. 오늘 쌓는 욕심은 내일의 내 삶이 될 것이다. 이렇게 마음이 마음으로 이어지는 것이 시간이고 세월이다. 마음이 청정하고 한결같다면 시간의 흐름이 무의미하다. 그런 사람의 시간은 늘 같은 속도로 흐른다.


맹건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나이에 따라 시간의 길이를 다르게 느끼는 것은 신경전달물질의 변화 탓이다. 욕심을 낮추고 기대를 낮추면 신경전달물질은 안정적으로 흐른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한결같은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 욕심 없는 순수한 마음이라면 오늘과 내일이 같다. 늘 평정하고 편안한 마음이면 시간이 멈춘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시인 호라티우스의 말처럼 매일매일 마지막 날로 생각하고 즐겁게 살면, 기대하지 않았던 시간으로 행복해진다. 한계시속체증의 법칙을 한계시속체감의 법칙으로 바꾸는 것도 내 마음이다. 마음이 바뀌면 뇌의 신경전달물질이 안정화된다.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으면 그것이 잘사는 것이다. 찰나의 생이라도 억겁의 생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살자. 그러면 신경전달물질이 만드는 화학적 행복과 마음이 만드는 심리적 행복이 넘쳐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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