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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Oct 24. 2022

결별의 미학,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할 것

결별을 준비하는 나무의 본색(本色)

목련도 한철이고 꽃 지고 나면 그뿐이다. 그렇다고 이별마저 아프지 않을까. 봄날 생가지 찢어 새순 잉태했던 나무는 한여름 짙은 초록의 잎들을 피웠다. 뜨거운 햇볕과 부드러운 햇살은 과일의 향기를 짙게 했다. 가을 해가 서쪽으로 멀어지면 햇살의 시간은 짧아진다. 찬바람에 화들짝 놀란 나뭇잎은 초록을 벗고, 화려한 색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봄과 여름내 꼭꼭 숨겨둔 가을의 본색을 드러낸다.


과일이 익고 열매가 튼실해지는 수확의 계절이다. 수확이 끝나면 곧 결별은 시작된다. 봄 햇살의 자애로운 보살핌을 받고, 불볕 여름 태양의 광폭한 고통을 참으며 잉태한 모든 결실과 헤어진다. 결별의 열병을 앓은 나무는 가슴에 동심원을 새긴다. 


바람이 차가워지면 나무는 겨울을 날 채비를 서두른다. 손바닥만큼 작아진 햇빛을 보듬고 살아야 한다. 더는 풍성한 잎들과 함께할 형편이 아니다. 줄어든 양양분으로는 제 몸통 하나 건사하기 힘들다. 나무는 겨울을 앞두고 깊은 시름에 잠긴다. 눈물을 머금고 잎자루에 코르크처럼 단단한 떨켜를 만든다. 떨켜는 잎으로 가는 수분과 영양 공급을 끊어버린다.


햇살이 더 멀어지면 초록 엽록소를 만들 수 없다. 마지막 남은 엽록소마저 햇빛에 분해되고 나면 녹색은 흔적조차 없어진다. 분해가 더딘 카로티노이드의 노란색, 안토시안의 붉은색, 타닌의 갈색이 청량한 가을 햇살에 민낯을 드러낸다. 느티나무, 복자기나무, 물오리나무, 참나무, 굴참나무, 은행나무, 단풍나무의 잎에 울긋불긋 화색이 돈다. 


"가을은 단지 바꿈만으로 빛나는 계절이다. 내가 당신의 노랑을 입고, 당신이 내 빨강으로 물들어 하나의 풍경이 되는 시간이다."라고 프랑스의 소설가 알프레드 카뮈(Albert Camus)가 멋있게 말했다. 그리고는 가을은 모든 잎이 꽃이 되는 두 번째 봄이라고 했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가을의 찬사인가. 가을이 떠나기 전 서로의 색깔로 물드는 것도 좋다.  


온힘을 다해 본색을 드러낸 탓일까. 화려한 색의 향연을 끝낸 나뭇잎은 나날이 야위어 간다. 너무 많은 무서리 내린 아침이면 화들짝 눈물처럼 떨어진다. 소슬바람 불면 나뭇잎은 가지를 잡은 여린 손을 놓아버린다. 가을비 내리는 날 나뭇잎들은 낙하한다. 그렇게 가을은 마지막 잎새마저 떠나보낸다.


신경림 시인은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라고 자신의 시 ‘갈대’에서 말했다. 바람 한 점 없는 밤, 낙엽이 우수수 지는 것도 그 때문일까. 컥컥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키느라 나무는 제 어깨가 들썩이는 것을 까맣게 몰랐나 보다.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이라

태어남도, 성숙함도, 헤어짐도 모두 제 안에 있었다. 봄날의 연두, 여름의 초록, 가을의 화려함도 나뭇잎 안에 있었다. 훈풍 부는 날의 새순을, 거센 비바람 부는 날의 녹색을, 하늬바람 부는 날의 단풍까지 모두 제 손으로 길렀다. 나무는 그 모든 것들을 또 제 손으로 떠나보낸다. 


나무가 죽음 같은 겨울을 견디는 건 봄날의 새순을 잉태하려는 간절함 때문이다. 보내지 않고 새순을 잉태할 수 없음을 잘 안다. 가슴이 찢어져도 보내야만 한다. 이별의 아픔은 만남의 기쁨으로 돌아온다. 그러니 결별을 서러워 말고 집착하지 말 일이다.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은 불교의 법화경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은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고, 헤어진 후에는 다시 만난다. 사람과의 만남과 헤어짐만이 아니다. 세상 모든 것과는 만남과 헤어짐이 있다. 헤어지지 않는 인연은 없고, 다시 만나지 못할 인연도 없다. 


이별 앞에 아프지 않을 사람은 없다.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고, 눈물이 앞을 가릴 것이다. 세상의 모든 만남에는 헤어짐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마음이 조금 덜 아프지 않을까. 나무도 밤새 울음 삼키며 낙엽을 떠나보냈다. 사람이라고 그리 못 할 일도 아니다.       


사람들은 만남이 영원할 것이라 믿는다. 아니 그렇다고 믿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건 우리의 바람일 뿐이다. 죽고 못 사는 사랑도 3년이면 충분하고, 삶이 팍팍해지면 뜨거운 우정도 식는다. 몇 날 밤 앓던 사랑의 열병도, 한때 모든 것을 다 줄 것 같은 우정도 흐르는 시간 앞에 빛이 바랜다. 다만 친구 같은 사랑으로, 동지 같은 우정으로 남는다면 오래도록 좋은 일이다.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무릇 종교는 다음 생을 이야기한다. 이번 생에서 못다 한 인연이 있다면 다음 생에는 이뤄질 것이다. 그러니 헤어짐을 너무 슬퍼하지 말고, 또 만남이 영원할 것이라 믿지 말자. 그러면 헤어질 때 너무 아프지 않을 것이고, 만남에 너무 들뜨지 않을 것이다. 신열이 펄펄 끓는 사랑이 끝난다고 그리 슬퍼할 일이 아니다.

     

다음이 없다는 절망감은 결별을 받아들이기 힘들게 만든다. 이 사람을 보내면, 이 시간이 지나면 이보다 좋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거라는 슬픈 생각이 든다. 사랑을 놓지 않으려고, 화려한 시절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다. 배려라는 이름의 족쇄를 채우고 관심의 감옥에 가둔다. 결별을 두려워하는 우울로 가득하고, 끝내 헤어짐을 인정하지 못해 자신을 옥죈다.

       

인연이 다해 떠나는 사람과 시간을 잡을 수 없다. 우격다짐으로 잡는다 한들 한 번 떠난 마음에 사랑이 남았을 리 없다. 인연을 강제로 붙들어 매는 일만큼 슬픈 일이 어디 있으랴. 결별을 되돌리지 못한다면 마음을 바꾸자.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그리고 돌아보자. 여전히 보듬을 소중한 시간과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은 시간은 침묵할 것”을 당부한 강은교 시인의 ‘사랑법’을 떠올리는 것도 좋겠다.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 했으니 떠나는 가을도, 떠나는 사람도 잡지 말자. 인연이 남았다면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승이 아니라 내세면 어떠랴. 그러니 사람이든, 청춘이든 떠나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떠나게 하자. 결별의 미학을 아는 사람에게는 한겨울의 깊은 침묵과 고독마저도 감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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