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적인 그녀, 사만다
우울한 얼굴, 척 늘어진 어깨, 생기 없는 목소리. 창가에 기대어 도시의 화려한 불빛을 쳐다보는 무표정한 얼굴, 아내와 별거 중인 중년의 남자는 고개를 외로 꼬고 터덜터덜 걷는다. 세상 살맛이 없다는 표정이 뚝뚝 떨어진다. 그의 발길엔 외로움이 가득하고 고독이 흘러넘친다. 그의 표정은 삶에 찌든 중년 남자의 표상일지도 모른다.
외로움에 몸서리치는 이 남자는 2014년 개봉한 영화 <허(her)>의 주인공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다. 세상천지에 어디 한 곳 마음 기댈 데 없는 이 남자의 직업은 대필 작가다. 그것도 다른 사람의 정서를 풍부하게 그려내는 연애편지를 대필한다. 타인의 감정에 지나치게 몰입한 그는 오히려 자기감정에 허무와 공허를 느끼게 되었다. 남의 소통을 대신해 주는 그는 정작 자기 아내와 소통하지 못하고 이혼을 고민한다.
아마 이 시대의 중년 남성들은 테오도르에게 공감할 것이다. 대개의 남성은 온 힘을 다해 가족을 부양하고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여유롭게 뒤를 돌아보고 옆을 챙길 겨를이 없었다. 자칫하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지 모르는 절박한 직장생활을 버텼다. 그랬더니 어느새 중년이 되었고, 자기도 모르게 가족 사이에 왕따가 되었다.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지만, 그들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비애를 느낀다.
어느 날, 테오도르는 사만다라는 여인을 만난다. 처음에는 시큰둥하게 대하던 테오도르는 점차 그녀의 매력에 빠져든다. 사만다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한결같이 그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늘 공감해 주고, 유머 가득한 대화를 나누는 그녀에게 테오도르는 점차 위안을 느끼고 허전함을 잊게 된다. 단 한 번도 그의 감정을 거슬리지 않고 다독이는 그녀에게 어찌 빠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외로움에 빠진 중년 남자가 꿈꾸는 여인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놀랍게도 그녀는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인공지능 운영체제다. 쉽게 말해 그녀는 AI, 즉 인공지능이다. 목소리는 할리우드의 매혹적인 배우 스칼렛 요한슨의 것이다. 그녀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인간의 감정과 남자의 마음을 다루는 방법을 학습한 인공지능이다. 말하자면, 테오도르는 컴퓨터 화면을 통해서만 존재하는 사만다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테오도르의 외로움은 단순히 아내와의 이혼을 앞둔 별거로 인한 것이 아니다. 그의 외로움은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정서적 고립을 뜻한다. 직장 생활에 감정을 쏟아부은 후의 번아웃으로 인해 자신의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사람들과의 소통에서도 어색함을 느낀다. 비약해서 말하면,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가는 직장인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외로움과 우울함이다.
이때 그의 마음을 뚫고 들어온 것이 인공지능 운영체제인 사만다이다. 그녀는 외로움에 지친 중년 남자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그의 감정을 이해하며, 그와 깊은 대화를 나눈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 간의 소통은 점점 더 표면적이고 단편화되었다. 그 결과, 대화에서 만족감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만다를 찾게 된다. 테오도르가 그랬듯이, 앞으로 사람들이 사만다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사만다와의 관계를 통해 테오도르는 잠시 외로움으로부터 도피한다. 그녀와 감정적으로 연결됨으로써 일시적인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인공지능인 사만다가 스스로 진화해 다른 남자를 따라 떠나면서, 사만다와의 이별은 테오도르에게 더 큰 외로움을 안겨준다. 테오도르는 기술과의 만남이 진정한 인간관계를 대체할 수 없다는 한계를 깨닫는다. 결국 그는 외로움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인간관계가 중요함을 알아챈다. 영화 <허(her>가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외로움의 세대 차이
그렇다면 우리가 느끼는 외로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고, 친구들과 만나고, 관심이 맞는 그룹에 참가한다. 자원봉사도 하고, 규칙적으로 운동도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그런 노력도 도움이 되고 필요하긴 하다.
우리는 늘 한결같이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만다를 찾는다. 하지만 아쉽게도 사만다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그런 그녀도 결국 새로운 사람을 찾아 떠나버린다. 그렇다면 결국 자신에게서 답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타인과 많은 대화를 나누지만, 정작 자기 자신과는 거의 대화하지 않는다. 가장 자주 만나고, 가장 말을 많이 걸어야 할 상대를 외면하고 산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자기 내면이 외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어떤 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면과의 대화이다. 끊임없이 자신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도록 해야 한다. 독서, 영화 감상, 명상 등 혼자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그렇다고 남들과 담을 쌓고 살라는 것은 아니다. 타인과의 만남 속에서도 자신과의 만남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뜻이다. 혼자 깊은 산속에 들어가 평생을 사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 사람으로서는 굳이 그렇게 할 것까지는 없다.
사람은 가끔 혼자 있어야 한다. 그 시간만큼은 진정한 자유를 경험하고 내면을 충만하게 한다. 내면이 충만한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더욱 깊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강조한 어느 철학자의 이름을 굳이 인용할 필요도 없다. 사회적 의무나 타인의 기대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내면의 자유를 느끼게 해 준다. 이러한 자유는 삶에 대한 만족도와 행복감을 높이는 데 중요한 요소이다.
살면서 우리는 왜 외로움을 느낄까? 그런 궁금증에서 시리즈를 쓰고 있다. "인간은 원래 외롭게 태어났다"는 것에서부터 "우리가 살고 있는 체제가 우리를 외롭게 만든다"는 주장까지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글을 쓰면서 외로움에도 세대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중년의 외로움은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것이지만, 청년, 특히 MZ세대의 외로움은 살아갈 기회조차 버겁다는 느낌에서 나오는 것 같다.
다음 내용은 BTN불교TV에서 유명한 어느 스님에게 털어놓은 한 청년의 고민이다.
"나는 세상을 잘못 만나 태어난 것 같다. 예전에는 단칸방에서 시작해서 방을 한 칸 한 칸 늘려가는 게 가능했고, 취업의 가능성도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높았는데 요즘은 사는 게 너무 힘들다."
"좋은 직장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인 것 같은데, 정치인들은 자기 이익만 위해 매일 싸우기만 하고 서민을 위해 어떤 획기적인 도움도 못 주는 것 같다. 30년만 일찍 태어났다면 제 능력을 마음껏 펼치면서 집도 사고 투자에도 성공해 큰소리치면서 살았을 것 같은데 어려운 시기에 청년기를 보내니 매일이 억울하고 우울하다"
다음 글에서 이 청년의 고민을 살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