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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Oct 24. 2022

침묵할 것, 나이가 들며 아름다워 지는 나무처럼

나무는 나이가 들수록 아름다워진다.

나무(수채화, 57X76cm, 2019) 


"세상에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아름다워지는 것은 나무밖에 없다."라고 출판사를 운영하는 조상호 사장은 『나무 심는 마음』에서 말했다. 그는 나무처럼 아름답게 살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화이트 마운틴에 있는 브리슬콘(bristlecone) 소나무는 5000년 동안 살고 있다. 구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 사이쯤 씨앗을 뿌렸다는 이야기가 된다. 은행나무는 1000년 이상 살고, 어떤 은행나무는 3000년까지 살 수 있다. 모든 생명체에게 노화와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하지만, 브리슬콘 소나무와 은행나무는 늙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잊어버렸다. 


인간은 나이가 들면서 면역 체계가 약화한다. 세포는 노화하고 질병에 걸리기 쉽다. 근육은 소실되고 피부의 탄력이 줄어든다. 온몸에 주름이 생기면서 늙어간다. 윤기 나는 피부도 사라지고, 머리카락도 듬성듬성해진다. 젊은 시절의 탄력 있는 모습을 잃어버리고, 청춘의 빛나는 시절을 되돌릴 수 없다.


나무는 늘 변함없이 한결같이 한곳에 꼿꼿이 서 있다. 아무 말 없이 넉넉한 품으로 반겨준다. 고맙게도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을 피하게 해 준다. 내리는 소나기를 막아주는 커다란 우산이 되기도 한다. 요란스럽지 않게 자신의 깊은 속내를 보여준다.      


잎을 다 떨구고도 겨울 광야에서 의연한 모습을 잃지 않는다. 겨울나무는 세속의 속박을 잘라 버리고 앙상한 팔로 한겨울을 난다. 늘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눈보라를 맞으며 굳세게 버틴다. 말 없는 나무는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어떤 웅변가보다 더 진한 감동의 말을 전한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듣기가 어렵다.

사람은 나무와 달리 나이가 들수록 말을 많이 한다. 그런데도 오히려 소통은 더 어려워진다.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한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도 많고, 자기가 한 말을 잊어버리고 했던 말을 반복하는 사람도 많다. 


집을 손보지 않고 오래 방치하면 기둥과 전선이 삭는다. 종내에는 전선은 끊어지고 집은 무너진다. 사람의 두뇌도 돌보지 않으면 뇌 신경세포가 노화한다. 뇌 신경세포는 새로운 자극이 없고 호기심이 사라지면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다. 다른 뇌 신경세포와의 연결망을 끊고 끝내 소멸한다. 집의 전선이 삭아 없어지듯 관리하지 않는 뇌 신경세포는 죽어가고 연결망도 끊어진다.     


우리가 듣는 소리는 고막을 거쳐 전기신호로 변환되어 신경세포로 전달된다. 뇌신경세포가 사라져 연결이 끊어진 곳에서는 전기신호가 흐를 수 없다. 누군가 말한 내용이 중간에서 사라져 버린다. 이야기를 듣긴 들었는데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다. 소리가 전기신호로 변환되어 머릿속에서 전달되는 과정에서 흔적 없이 증발한 것이다. 그 결과 자기 이야기만 반복하고 타인의 이야기에는 관심 없는 인지적 난청 상태가 되는 것이다.      


기억, 판단력, 인지력 등 종합적 사유 능력을 관리하는 앞이마 부분의 뇌 신경세포는 나이가 들면서 가장 먼저 소멸한다. 이해하고 학습하고 판단하는 뇌 신경세포가 소멸하면 듣기와 이해 능력에 문제가 생긴다. 고집이 세지고 남의 말을 잘 못 알아듣게 된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단기 기억을 저장하는 해마가 빠른 속도로 노화한다는 점이다. 최근의 일들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사람들은 오래전에 있었던 일들을 잘 기억한다. 자신의 젊을 때 있었던 경험담을 또렷이 생각해서 되새김질한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각색한 기억을 무용담처럼 말한다. 이런 기억들은 두뇌의 장기 기억 저장소에 각인되어 화석처럼 단단해진다. 


나이가 들수록 아름다운 나무처럼 침묵하자.

남자(Man)는 자신이 잘 아는 사건이나 사물에 대해 잘난 체하며 길게 설명(Explain)하려 한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다른 사람에게 거들먹거리거나 잘난 체하며 설명하는 태도가 맨스플레인이다. 처음에는 주로 여성 앞에서 잘난 척 설명하려 드는 남자를 지칭했다. 최근에는 매사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며 가르치려 드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말이 많아지고 길게 가르치려 드는 사람이 있다. 오죽하면 ‘맨스플레인(mansplain)’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런 행동도 두뇌 노화의 일종이다. 사람은 남의 말을 듣기보다 자기가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이가 들수록 입을 닫고 지갑을 열라고 한다. 열 지갑이 없으면 입을 굳게 닫으면 된다.


시도 때도 없이 타인에게 충고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나이를 생각해야 한다. 혹시 내가 늙어가는 게 아닌가 하고 의심해야 한다. 남이 하는 일에 성이 차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뇌의 노화와 기억의 화석화가 시작됐는지 모른다. 그것을 지적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다고? 어쩌면 맨스플레인의 함정에 빠졌을 것이다.

   

나이 든 사람의 두뇌만 화석화하는 것은 아니다. 젊은 사람의 뇌도 돌보지 않으면 뇌 회로가 끊어지고 기억은 돌처럼 굳어진다.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는 두뇌는 쉽게 노화한다. 장기 기억만 단단해져 자기 말만 고집한다. 모든 걸 아는 양 가르치려 든다. 나이가 많든 적든 상관없이 꼰대이자 맨스플레인의 모습을 보인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 정신의학과 연구 교수 노먼 도이지(Norman Doidge)교수는 『기적을 부르는 뇌』에서 노년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얼마간의 뉴런이 생겨난다고 말한다. 뇌가 늙어감에 따라 뉴런이 죽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노화의 와중에서도 뇌는 마치 뇌의 손실을 조정하려는 듯이 대규모의 재조직을 수행한다. 정신적으로 활동적인 삶을 이끌어온 사람들은 뇌 기능이 더 낫다고 말한다. 교육을 더 많이 받을수록, 사회적으로 신체적으로 더 활동적일수록, 정신을 자극하는 활동에 더 많이 참여할수록 뇌의 노화를 멈출 수 있다. 


뇌의 노화는 신경회로의 이상을 일으켜 우울증을 유발할 수도 있다. 우울함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뇌를 젊게 만들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얼마든지 많다. 자신을 갈무리하고 공부에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나이가 들어도 노력하는 뇌는 진화한다. 그런 기억은 화석화되지 않는다. 말을 잘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말을 잘 듣기 위해 공부한다. 뇌 신경세포가 딱딱한 돌이 되지 않고, 유연하고 탄력이 있어야 잘 듣는다. 책을 읽고 현자를 만나 배우고 익히면 나도 나무처럼 나이가 들어도 아름다워질까. 그런 바람으로 공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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