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초적 본능, 빨강

생존과 신성, 그리고 욕망의 색

by Henry

태초의 지구를 처음 마주한 이가 있었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땅이 불타고 있어!”


붉은빛으로 물든 대지. 그것은 불이 아니라, 지표에 널리 분포한 산화철이 공기와 만나 만들어낸 자연의 색이었다. 빨강은 지구의 오래된 기억 속에 각인된 색이다. 광활한 사막, 침식된 절벽, 고대의 암석들 위에 새겨진 이 붉은색은, 지구의 숨결이자 시간이 남긴 흔적이었다.


피, 불, 익은 열매처럼 생존과 직결된 것들은 대부분 붉은색이었다. 그래서일까. 인류의 언어와 기억 속에서 가장 오래 등장하는 색은 바로 이 빨강이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빨강은 색의 시작이었다’고. 강렬하고도 지워지지 않는 색, 빨강. 그것은 대지의 피와도 같고, 생명의 신호와도 같다. 아득한 시간 저편에서부터 오늘날까지, 우리는 여전히 그 붉은빛 앞에서 본능처럼 반응한다.


아득한 옛날, 인간은 오늘의 양식을 위해 사냥터로 나섰다. 광활한 들판에서 짐승들과 생사를 건 싸움을 벌였다. 창끝이 우람한 들소의 가슴을 꿰뚫는 순간,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아올라 대지를 적셨다. 사냥꾼은 피범벅이 된 고깃덩이를 메고, 굶주림 속에서 자신을 기다릴 가족의 얼굴을 떠올리며 조용히 웃었다.



그날 밤, 사람들은 동굴에 모여 축제를 벌였다. 들소의 피는 제물이 되어 불가에 바쳐졌다. 사람들은 숯검정을 얼굴에 칠하며 풍요로운 사냥과 무사함을 기원했다. 피는 단순한 자국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명의 흔적이자, 신의 목소리였다. 그들은 붉은 피의 흐름 속에서 신의 뜻을 읽으려 했다.


알타미라 동굴벽화.jpg 알타미라 동굴 벽화


우리 조상이 남긴 벽화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기원전 15,500년에서 13,500년 사이,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 천장에는 붉은 들소들이 생생히 그려져 있다. 거칠고 억센 숨소리마저 들려오는 듯한 그 벽화 속에는, 사냥과 생존의 기록이 담겨 있다.


동굴 속 사람들은 거대한 들소를 쓰러뜨리고, 피로 물든 고기를 나누며 가족과 축제를 즐겼을 것이다. 그들에게 들소의 붉은 피는 풍요와 수확의 상징이었다. 그렇게 빨강은 생존의 색에서 감각의 색으로, 제사의 색에서 미각을 자극하는 색으로 발전했다. 수천 년이 흐른 지금도, 빨강은 여전히 우리의 의식과 입맛을 가장 먼저 깨우는 색이다.


빨강은 인간의 생존과 함께해 온 색이다. 생명을 주고, 에너지를 불어넣으며, 의지를 일으켜 세운다. 피의 색은 빨강이다. 그것은 ‘살아 있음’의 가장 분명한 증거다. 빨강은 원초적이며, 극단적인 색이다. 죽음과 삶, 공포와 희망이 교차하는 그 경계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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