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의 생각 차이
남녀의 생각 차이를 진화심리학적으로 몇 번 글로 썼다. 글을 읽은 지인이 메시지를 보냈다.
"누군가 그러던데요, 하루 한 번은 아내에게 한소리 들어야 마음 편하다며, 그날도 전화해서 한소리 듣고 좋아서 웃던 분을 봤어요."
또 다른 지인이 들려준 이야기다.
"아내는 30년이나 살았지만 지금도 감당하기 쉽지 않다. 어떨 때는 말을 안 한다고 성질내고, 어떨 때는 말을 한다고 성낸다. 이러다 아직 숨 쉬고 있다고 짜증 낼지도 모를 일이다."
두 경우 모두 웃픈 현실을 말한다. 물론 웃자고 한 농담일 것이다. 갑자기 세렝게티 초원의 늙은 수사자가 떠오른다. 젊은 시절 멋진 갈기를 휘날리며 초원을 누비던 라이온 킹도 세월 앞에서는 초라해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40대 후반, 변화의 시작
한 부부가 저녁 식탁에 앉아 있다. 아이가 올해 대학에 입학해 기숙사에서 지낸다. 결혼 20년 차인 두 사람은 딱히 할 말도 없어 묵묵히 밥을 먹는다.
남편은 최근 계속되는 피로와 무기력감을 "나이 들어서 그런가 보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오후만 되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예전 같으면 거뜬했을 야근도 버거워진다.
아내는 불규칙해진 생리와 안면홍조로 병원을 찾았다가 "갱년기 시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충격을 받긴 했지만, 널리 알려진 증상이라 서둘러 대비책을 마련하기로 결심한다.
50대 후반, 역전의 시작
결혼 30년 차 부부의 저녁 식탁. 식탁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된장찌개가 놓여 있다. 찌개의 김이 증발하듯 대화도 금세 사라진다.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만이 울린다.
남편은 숟가락을 들다 말고 잠시 손목을 주무른다. 요즘 들어 밤이 되면 어깨가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예전 같으면 회식 자리에서도 누구보다 먼저 건배를 외쳤을 텐데, 이제는 모임 초대 문자마저 읽고만 지운다. 속으로는 "나이 들어서 그렇지 뭐"하고 넘긴다.
아내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휴대전화 화면을 본다. 동호회 모임 날짜를 확인하며 미소를 짓는다. 폐경의 파고를 건넌 그녀는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아이들이 떠난 집에서 이제 그녀는 마음껏 숨을 쉰다. 사회 모임, 자원봉사. 그녀의 하루는 점점 바깥세상으로 뻗는다.
60대 중반, 간극이 커졌다.
결혼 35년 차 부부의 아침. 몇 년 전 퇴직한 남편은 여느 때처럼 안방 창가에 놓인 의자에 앉는다. 커튼 틈으로 스며든 햇살에 흰 머리칼이 선명하다. ‘오늘은 어디로 가야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집에서 또 하루를 보낸다.
거실 문이 열리며 아내가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나선다. 등산 모임에 가는 길이다. 모자를 쓰고, 스카프를 매고, 현관에서 운동화를 신는 발걸음이 경쾌하다. 그 순간 남편은 한마디 던진다.
“오늘은 또 어디 가?”
아내의 짧은 대답
“또라니? 뭐가 그렇게 궁금해?.”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그 시작은, 눈에 보이지 않는 몸속의 시계, 생체 리듬의 변화에서부터다.
남성의 테스토스테론은 40세를 기점으로, 모래시계의 고운 모래처럼 조용히 흘러내린다. 매년 1~2%씩, 알아차리기 힘들 만큼 은밀하게. 그래서 70세가 되면 젊은 날의 3분의 2밖에 남지 않는다. 멀리서 보면 여전히 불빛이 켜져 있는 등대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등잔 심지가 조금씩 짧아져 가는 모습이다.
여성에게 변화는 훨씬 드라마틱하다. 폐경이 찾아오면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젠이 절벽에서 떨어지듯 한순간에 사라진다.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멈춘 듯, 몸과 마음에 정적이 스민다. 사라진 에스트로젠의 자리를, 아직 남아 있는 테스토스테론이 조금씩 채워나간다. 균형추는 ‘남성적 에너지’ 쪽으로 기울고, 여성은 생각보다 빠르게 새로운 몸에 적응한다.
여성은 뚜렷한 변화의 신호를 받기에 대비할 시간을 가진다. 약을 먹고, 운동하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회복의 경로를 만든다. 반면 남성의 변화는 너무 천천히 다가와서, 본인조차 ‘그냥 나이 탓이겠지’ 하고 넘긴다. 그러다 어느 날, 계단을 오르며 숨이 차고, 회의 도중 집중이 흐트러지고, 거울 속에서 예전과 다른 어깨선을 발견하며 비로소 깨닫는다.
젊은 날, 남성들은 사회라는 무대에서 ‘성공’이라는 조명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 빛이 꺼지면, 무대는 갑자기 낯설고 공허하다. 반면 여성들은 그동안 무대 뒤에서 조용히 기다렸다. 자녀가 자라고, 집안의 의무가 줄어들고, 매달 찾아오던 생리마저 사라지면 비로소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무대에 오른다.
그래서 젊은 시절 "바깥일은 남편, 집안일은 아내"였다면, 이제는 "바깥일도 아내, 집안일도 아내"가 된다. 주도권이 옮겨가면서, 부부 사이의 힘의 추도 서서히 방향을 바꾼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남자이니라!
저녁, 부부는 다시 식탁에 마주 앉는다. 남편은 드라마를 보며 밥을 먹는다. 문득 드라마에서 어린 자녀가 부모와 헤어지는 장면에서 눈시울이 붉어진다. 남편의 눈물은 사라진 기운 대신 더 많아진 마음의 무게가 흘러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말없이 밥을 먹던 아내가 묻는다.
"아니, 그걸 보고 울어?"
젊은 시절 그는 이런 장면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나이가 들면서 마음의 결이 더 섬세해졌고, 억눌렀던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표면으로 떠오른다. 테스토스테론이 줄어들면서 공격성은 약해지고, 대신 공감 능력과 감수성이 깊어진다.
세익스피어는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니라"라고 했지만, 인생의 후반부에서는 오히려 남성이 더 감정적이고 의존적으로 변해간다. 이제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남자이니라"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남자의 눈물은 약함이 아니라 변화를 뜻한다. 한때 사회에서 요구했던 강인함의 가면을 벗고, 진짜 자신과 마주하는 과정이다.
"하루에 한 번은 아내에게 한소리 들어야 마음 편하다"는 말은 단순한 농담이 아닐지도 모른다. 세월의 무게 앞에서 변해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담은, 조용한 관찰이다.
오후 2시 지하철 2호선 안의 그녀들이 왜 그렇게 활달한지 이유를 알 것 같다. 중년에서 노년으로 접어드는 남성들의 표정이 어두운 이유도 알 것 같다. 그것이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