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과 함께 사는 법

by Henry
영화 주인공 캐롤


이 글은 독서 동아리 '오후의 글방' 토론 원고다. 격주로 수요일마다 열리는 동아리의 이번 주 토론 주제는 영화 '그리움과 함께 사는 법' 감상평이다.


화실에서 2시간 동안 연필로 그린 주인공 캐롤의 스케치이다. 영화 속 그녀의 모습을 완전히 담아내지는 못했지만, 직접 그린 그림으로 내가 쓴 글을 시작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노년을 위한 자리는 없다.

'그리움과 함께 사는 법'의 주인공 캐롤은 70대 여성이다. 20년 전 남편을 잃고 반려견 헤이즐과 함께 살아간다. 그녀의 하루는 시계처럼 정확하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루트로 산책하고, 같은 자리에서 저녁을 먹는다.


이 완벽한 루틴은 안전하다. 하지만 동시에 깊은 고립감을 만든다. 반려견 헤이즐이 죽자, 캐롤은 절망에 빠진다. 헤이즐은 그녀에게 남은 마지막 정서적 연결고리였기 때문이다. 조건 없는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캐롤에게는 딸이 있다. 하지만 딸은 뉴욕에 산다. 현대 사회에서 성인 자녀와 부모가 함께 사는 것은 쉽지 않다. 각자의 삶을 중시하는 개인주의 문화에서 다세대 동거는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 캐롤의 외로움은 개인적 불운이 아니다. 현대 사회의 구조적 문제다.


산업화 이전 농촌 사회를 생각해 보자. 노인은 지혜의 전수자였다. 대가족에서 그들은 여전히 공동체의 중심에 있었다. 축적된 경험은 존중받는 자산이었다. 그때는 노년이 되어도 해야 할 일이 있고, 돌볼 손주들이 있었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외롭지 않은 시절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공동체가 해체되고 핵가족 중심 사회가 형성됐다. 개인들은 생계를 위해 노동력을 판매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젊을 때는 직장이라는 사회적 관계망이 있다. 하지만 은퇴하면 이 관계들이 대부분 사라진다.


은퇴 후 노인들이 경험하는 사회적 접촉은 주로 의료, 생활, 돌봄 서비스 등이다. 이는 상품화된 관계다. 인간적 교감보다는 서비스 제공이 목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할 능력이 없고, 경제력이 따르지 않는 노인들은 구조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다.


기술이 만든 새로운 고독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이런 고립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온라인은 수많은 연결을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깊은 감정적 교감은 오히려 어려워졌다. 정보는 연결되지만, 마음은 분리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AI 알고리즘은 개인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한다. 편리하지만 부작용도 있다. 각자 자신만의 정보 버블에 갇히게 된다. 타인과 공통 경험을 나눌 기회가 줄어든다.


물론 기술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의 기술 발달 양상은 면대면 소통 기회를 줄이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는 특히 디지털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층에게 더 큰 소외감을 안겨준다. 디지털 네트워크는 사람들이 직접 만나서 대화 나누는 아날로그 감성의 기회마저 박탈한다.


캐롤은 그래도 친구들과 정기적으로 만난다. 카드놀이를 하고 수다를 떤다. 완전히 고립된 것은 아니다.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관계 중심적 사회화를 받아왔다. 그래서 은퇴 후에도 친구 네트워크를 어느 정도 유지하는 편이다. 이는 사회적 관계가 대부분 끊어지는 남성보다 나은 상황이다.


캐롤은 우연히 수영장 청소부 로이드와 대화를 나눈다. 나이 차이가 많은 두 사람은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가 된다. 처음에는 서비스 제공자와 고객이라는 경제적 관계였다. 하지만 점차 진정한 인간적 교감으로 발전한다. 현대 사회에서 많은 인간관계가 경제적 거래를 바탕으로 한다. 순수한 인간적 교감을 경험할 기회는 줄어든다. 캐롤과 로이드의 관계가 특별한 이유는 이런 제약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늦깎이 사랑, 다시 뛰는 심장

카드놀이 클럽에서 캐롤은 멋진 노신사 빌을 만난다. 빌은 캐롤이 잊고 있었던 감정을 일깨운다. 데이트 전날 밤, 캐롤은 옷장 앞에서 한참 고민한다. 어떤 옷을 입을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20년 만에 다시 느끼는 설렘이다.


첫 데이트에서 캐롤은 어색해한다. 남편 외에는 오랫동안 남자와 둘이 있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빌의 자연스러운 유머와 배려심이 점차 마음을 열어준다. 요트를 타고 바다에 나가 함께 웃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이 여전히 한 사람의 여성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캐롤에게는 두려움도 있다. 오랫동안 상실의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왔기 때문이다. 빌에게 마음을 열수록 또 다른 상실의 가능성도 커진다. 나이 든 연인들에게는 이별이 영원한 이별일 수도 있다는 현실적 불안이 따른다.


안타깝게도 몇 번 만나지 않아 빌이 갑작스레 심장병으로 사망한다. 캐롤은 다시 상실의 아픔을 겪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를 통해 자신 안에 여전히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희망을

현대인의 외로움에는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공동체의 해체, 개인주의 문화의 확산, 기술 발달로 인한 소통 방식의 변화가 모두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 성별이나 경제적 지위 같은 개인적 조건이 더해져 고독의 양상은 더욱 복잡해진다.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사회 전체의 변화가 필요하다. 경제적 가치 중심에서 인간적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개인의 생산성이 아닌 존재 자체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문화적 변화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거대한 변화는 쉽지 않다.


생계를 위해 타인과 경쟁해야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현대 사회는 종교나 시민사회 조직 같은 전통적 공동체마저 약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디지털 네트워크 기술이 사람들을 촘촘히 연결하지만, 정작 온라인 공간 밖에서 만날 기회는 차단한다.


이제 개인이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캐롤이 로이드와 빌을 만나면서 변화하는 모습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나이 듦이 단순히 쇠퇴의 시기가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의 시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70대에도 여전히 배우고, 변하고, 성장할 수 있다.


누구나 노년이 된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실감하지는 못한다. 막상 노년이 되면 예상치 못한 외로움에 힘들어한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런 노력마저 포기하면 더 외로워질 것이다. 작은 실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이웃과 인사하기, 지역 모임에 참여하기, 새로운 취미 시작하기 같은 일들이다. 캐롤처럼 부지런히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다.


영화는 완전한 해답을 내놓지 않는다. 다만 작은 불빛처럼 꺼지지 않는 희망을 보여준다. 희망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 거대한 벽 사이로 스며드는 작은 빛과 같다. 그 빛은 우리가 서로에게 내미는 인사, 작은 친절, 늦게 피어나는 사랑과 같은 연결에서 비롯된다.


현대인의 삶에서 외로움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외로움과 함께 살아낼 수 있다면, 그것은 짐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또 다른 힘이 된다. 우리는 고립의 외로움과 만남의 연결 사이를 오가며 조금씩 더 인간다운 길을 배워간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디지털 세상 속에서도 아날로그 감성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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