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사랑이 기술인가?”하고 독일 출신의 사회철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이 묻는다. 그가 1956년에 출간한 『사랑의 기술』에 나오는 첫 문장이다. “사랑이 기술이라면 사랑에는 지식과 노력이 요구된다”면서 말을 잇는다.
프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현대인은 사랑을 '하는' 일이 능력의 문제라는 것을 잘 모른다. 오히려 사람들은 사랑을 '받는' 문제로 생각한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능력보다는 사랑하는 대상에 더 신경을 쓴다. 또 사람들은 사랑을 '하게 되는' 최초의 경험과 사랑하고 '있는' 지속적인 상태를 혼동한다. 그래서 제대로 된 사랑을 하거나 사랑을 오래 유지하는 데 실패한다.
사랑을 하거나 다른 어떤 일을 하더라도 방법과 기술이 중요하다. 올바른 방법으로 제대로 해야 일이 잘 진행된다. 잘하는 방법을 알아야 하고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사랑하는 일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사랑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그래서 사랑의 기술을 익힐 필요가 있다.
사랑을 받는 것과 사랑을 하는 것은 다르다. 사랑이 받는 것이라면 받을까 말까의 선택 문제다. 어떻게 받을까 하는 모양새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생색내면서 사랑을 받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누군가 사랑을 고백해도 싫다고 거절하면 그만이다. 이처럼 받는 것은 선택의 문제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하긴 요즘은 하도 세상이 험해서 상대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사랑을 거절하는 기술도 필요하겠다.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힌다. 직장에서 일을 잘하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공부한다. 자 기계발을 위해 투자하고 신기술을 터득하기 위해 발품을 아끼지 않는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살고 있다. 이렇게 열심히 뭔가를 배우고 익히는 우리는 정작 사랑을 배우는 일에는 소홀하다. 사랑은 쉽게 변하고, 그것을 오래 유지하는 일은 참 어렵다. 사랑을 시작할 때보다 사랑을 유지하는 데 더 큰 공을 들여야 한다.
프롬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자. 사람은 분리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랑한다. 외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은 지식, 존경, 책임, 보호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무작정 사랑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상대가 무얼 원하는지 알고 그에 맞춰야 한다. 그래야 받는 사람도 기분 좋게 받는다. 더구나 그 사랑을 오래 유지하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가. 이렇게 따져보니 사랑할 때도 기술이 필요하다.
훈련, 집중, 인내, 최고의 관심
현대사회의 개인은 그 어느 때보다 독립적인 존재다. 혼자이기 때문에 외로울 수밖에 없다. 더욱 서로를 진심으로 대해야 하기 때문에 사랑의 기술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진심으로 대하는 것인지, 어떻게 하면 사랑을 지속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는 '훈련', '집중', '인내', '최고의 관심'을 주문한다. 그의 말을 요약하자.
1. 사랑의 기술을 익히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훈련’ 해야 한다.
2. 정신을 ‘집중’해서 사랑의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
3. 사랑의 기술을 제대로 익히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4. 사랑의 기술을 완벽하게 습득하려면 '최고의 관심’이 필요하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줄 줄도 안다. 지금이라도 고기를 먹어보고 맛을 배우면 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을 배우지 못했더라도 당장이라도 배우고 익히면 된다. '훈련'하고 '집중'하고, '인내'하고, '최고의 관심'을 기울여 사랑하는 기술을 배우자. 그렇게 하면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
우리는 누굴 만나고 첫 느낌이 어떤가에 관심을 집중한다. 처음의 그 짜릿함과 황홀한 경험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사랑의 생물학적 유통기한이 2년에서 3년 사이라는 말이 있다. 사랑이 영원할 거라는 것은 바람에 불과하다. 제대로 사랑하고, 사랑을 오래도록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 60년도 더 전에 에리히 프롬이 한 말이다. 요즘처럼 사랑의 감정이 어지러울 때는 제대로 사랑의 기술을 익힐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