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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Oct 21. 2022

에르메스와 버킨백, 운인가? 실력인가?

버킨 백에는 악어의 피눈물이 배어있다. 

운도 실력일까?

에르메스가 명품이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안다. 가격이야 하늘 높은 줄 모른다. 명품 백을 얼마나 찔끔 생산하는지 여인들의 애간장을 녹인다. 프로모션이라곤 저 멀리 달나라로 보낸 지 한참이나 됐다. 유명 백화점에서 입점해달라고 요청해도 들은 척을 안 한다. 자신들의 전용 매장이나 까다로운 입맛을 충족시키는 백화점에만 입점한다. 아무리 갑질을 해도 못 사서 안달이니 뭐 어쩌겠나. 혀를 내두를 상술이다.


에르메스는 고가 명품 마케팅의 결정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전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약하고 3년에서 6년을 기다리는 수많은 여인, 그런 충성스러운 고객을 가진 에르메스의 콧대가 하늘을 찌른다. 샤넬도 올라갈 수 없는 아득한 곳에 에르메스가 있다. 사람 마음을 뒤흔드는 에르메스에 굳이 4P(Product, Price, Promotion, Place) 전략이니 STP(Segmentation, Targeting, Positioning) 전략을 떠들어 본들 무슨 의미가 있나. 그저 귀신 씻나락 까먹는 생뚱맞은 소리로 들릴 뿐이다.


에르메스도 자신들의 인기가 이렇게 폭발할 줄 알았을까. 처음에야 그걸 알 리 없었을 것이다. 에르메스의 대표 브랜드로 켈리 백과 버킨 백을 든다. 둘 다 고가의 명품이고, 매년 생산하는 숫자가 한정적이다. 갖지 못해 안달이 났다. 이 두 브랜드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참 우연이다. 유명한 두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와 제인 버킨의 일화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계획한 적도 없고, 생각해 본 적도 없는 행운이 찾아온 것이다. 복도 복도 어찌 그리 많은지 부럽다. 그 우연은 켈리 백과 버킨 백을 여성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시켰다. 에르메스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기회를 기가 막히게 잘 활용했다. 행운을 발판 삼아 켈리 백과 버킨 백을 최고의 브랜드로 키웠다. 진짜 운도 실력일까?


“에르메스 백은 주머니가 없어서 불편해요!!”     

며칠 전 브런치에서 '그레이스 켈리와 켈리 백의 경제학'이라는 제목으로 켈리 백의 탄생 배경을 이야기했다. 켈리 백 탄생의 기막힌 우연을 말했다. 오늘은 에르메스의 또 다른 명품 브랜드인 버킨 백 이야기를 해보자.


어느 날, 파리에서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영국 출신의 유명 영화배우이자 가수 제인 버킨이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다가 소지품을 쏟았다. 마친 그때 버킨의 옆자리에는 에르메스의 회장 장 루이 뒤마가 앉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이런 대화가 오갔다고 전해진다. 정확한 대화의 내용은 알 수 없다. 어쨌든 이 일을 계기로 버킨 백이 탄생한 것은 사실로 알려졌다.


"아니 유명 여배우께서 칠칠찮게 이게 뭔 일인가요?"

“회장님!! 에르메스 백에는 주머니가 없어요. 물건을 안심하고 넣어둘 수 없어 무척 불편해요!!”


대충 이런 말이 오갔을 것이다. 버킨의 말을 듣고 에르메스 회장 뒤마는 멈칫 놀랐다. 놀린 것을 사과하며 가방을 자기한테 줄 수 있느냐고 했다. 버킨이 말한 문제를 개선해 보겠다고 말했다. 나중에 새로 만든 가방을 보내겠다는 약속도 빼먹지 않았다.


뒤마 회장은 가방을 확 뜯어고쳤다. 주머니가 있는 블랙 가죽 백을 완전히 새로 만들었다. 약속대로 그걸 버킨에게 보냈다. 당시 제인 버킨은 멋스러운 편안함과 자유분방한 패션 스타일로 유럽 여성들의 패션 아이콘이었다. 그런 그녀가 멋있고 세련된 가방을 들고 다니니 여인들의 이목이 쏠리는 건 너무 당연했다. 에르메스는 손 안 대고 코 풀었다. 따로 홍보하지 않고도 버킨이 들고 다닌 가방으로 대박이 났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름을 아예 버킨 백이라 붙였다.


사진 출처 : https://art.chosun.com/m/article.html?contid=2012032000295


이렇게 해서 에르메스의 또 다른 명품 브랜드 버킨 백(Birkin Bag)이 탄생했다. 돈이 있어도 버킨 백을 쉽게 살 수 없다. 원단의 종류에 따라서 짧게는 몇 년을 기다려야 손에 넣을 수 있다. 가격은 몇천만 원에서 몇억까지 한다. 웬만한 월급쟁이의 수년 치 연봉을 한 번에 틀어넣어야 한다. 남자들이 고급 자동차 때문에 몸살을 앓듯, 여성들도 버킨 백 때문에 가슴앓이한다.


에르메스는 해마다 많은 양의 악어가죽을 구해야 한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열악한 악어 농장에서 대량으로 사육한 악어의 가죽을 벗겨 낸다. 악어가 요동치는 것을 막기 위해 잔인한 방법으로 악어를 살해한다. 이렇게 구해진 악어가죽은 전량 에르메스로 납품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버킨은 에르메스가 국제 기준에 맞도록 악어가죽 생산 방식을 개선할 것을 요구했다. 그렇게 하기 전까지 악어가죽을 사용해 만든 버킨백에서 자기 이름을 빼 달라고 요청했다. 안타깝게도 1997년 에르메스는 버킨 백을 상표 등록했다. 버킨의 요구는 아무런 강제성이 없다. 에르메스의 명품 가방에는 악어의 피눈물이 배어있다. 


켈리와 버킨이 없었다면

에르메스가 켈리와 버킨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오늘날처럼 이렇게 전 세계 여성의 로망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에르메스는 억세게 운이 좋다. 그걸 잽싸게 마케팅으로 활용한 것은 에르메스의 능력이다.


에르메스는 원래 말과 마차에 필요한 가죽 제품을 만드는 회사였다. 솜씨 좋기로 소문난 에르메스 제품은 유럽 왕실에 납품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회사 설립되기 얼마 전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회사가 나름의 자리를 잡아갈 때쯤 기차와 자동차가 등장했다. 말이 아무리 빨리 달려도 이들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말의 눈에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나타난 것이다.


기차와 자동차는 산업혁명의 상징이다. 이들은 더 멀리, 더 빨리, 더 많은 사람을 태워 나른다. 여행의 봇물이 터졌다. 사람들은 더 멀리 여행하기 시작했다. 여행객은 옷이나 귀중품을 담을 백이 필요했다. 먼 길 떠나는 여행자는 튼튼하고 솜씨 좋은 가죽 가방과 가죽 지갑이 필요하다. 에르메스가 매의 눈으로 보고 그 시장을 낚아챘다.


"그래!!! 바로 이거다. 여행객을 위한 가방과 지갑을 우리의 가죽 원단과 장인의 기술로 만드는 거야!!"


마차가 퇴장하고 기차와 자동차가 등장한 격변의 시기였다. 자칫하면 혁신의 타이밍을 놓친다. 혹은 되지도 않게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저 그런 가죽 제품을 만드는 오래된 기업으로 남았을 것이다. 아니면 자동차 만든다고 깝죽대다가 훅 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마구 용품을 생산하는 에르메스는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위기를 멋지게 기회로 바꿨다.


그렇다고 해도 에르메스가 여인들의 마음을 뒤흔들기는 2% 부족했다. 그때 혜성같이 나타나 도움을 준 두 사람이 그레이스 켈리와 제인 버킨이다. 이 두 사람이 없었다면 켈리 백과 버킨 백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힘들었다.


켈리 백은 만들어진 지 20년이 지나 빛을 봤다. 그레이스 켈리가 들고 다니는 것이 우연히 LIFE 지에 실리면서 세계적인 브랜드로 명성을 얻었다. 비행기 안의 작은 소동이 없고, 에르메스 회장이 버킨의 옆자리에 앉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버킨 백은 세상에 나오지도 않았다.


우리 인생에도 이런 행운이 있을까? 에르메스처럼 극적인 행운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생활 속의 작은 운이라도 오면 좋겠다. 혹시 찾아온 운을 놓친 건 아닌가? 그걸 알아보는 눈이 없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어떤 사람은 운이 무척 좋은 가 하면, 어떤 사람은 지지리도 복이 없다. 그것이 인생이고, 삶은 때론 잔인하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요동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언제 끝날 줄 모르고, 세계 금융시장은 불안하다. 아파트 가격은 내려가고, 주가도 곤두박질친다. 내 월급만 빼고 모든 것이 다락같이 오른다. 켈리 백이면 어떻고, 버킨 백이 다 뭐란 말인가? 살기가 이리 팍팍한데 배부른 소리 한다고 욕먹기에 십상이다.


세상이 어떻게 바뀔까? 날카로운 매의 눈이 필요하다. 앞을 보는 사람은 격변기가 지나면 승자가 될 것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심사는 복잡하다. 깊어 가는 가을만큼이나 수심도 깊어 간다. 너무 시린 계절이 시작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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