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욱’하면 왜 아무 생각도 안 날까?
왜 ‘욱’ 할까? 남이 나를 비판하는 소리가 그리 듣기 싫다. 그걸 이해하려면 우리 두뇌의 역할을 알아야 한다. 최근 뇌 과학이 발달하면서 예정에 심리학에서 설명하던 것들이 두뇌의 작용으로 설명되기 시작했다. 마음은 두뇌에서 만들어진다. 생각, 사유, 판단 등의 고급스러운 마음이 만들어지는 것이 우리의 대뇌다. 인간의 대뇌가 다들 어떤 생명체보다 뛰어난 까닭은 바로 마음을 만드는 정교함 때문이다. 가능하면 ‘욱’하는 감정을 유발하는 핵심 메커니즘만 소개한다.
대뇌 생리학자는 폴 맥클린(Paul D. MacLean)는 인간의 뇌는 3층 구조라고 주장했다. 인류는 원시 생명체에서 어류, 파충류, 포유류를 거쳐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는 긴 여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인간의 두뇌에는 그 진화 과정의 중요한 단계가 화석처럼 남았다. 살아있는 생물학적 화석이 우리의 두뇌라는 뜻이다. 폴 맥클린의 두뇌 3층 구조설이 완전히 증명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비판도 많다. 그렇지만 우리의 행동이나 사고 작용을 잘 설명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그의 이야기를 인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맥클린의 말에 따르면, 제일 안쪽에는 파충류 시절의 뇌가 자리한다. 흔히 뇌간이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지금의 파충류처럼 숨 쉬고 호흡하고 먹고 하는 기본적인 생명 유지 기능을 담당한다. 여기서는 ‘도망과 공격(fight of flight)’ 반응을 관장한다. 사람이 길을 걷는데 뒤에서 누가 머리를 때리면, 반사적으로 공격을 한다. 또 무서운 동물이나 큰 사건을 마주하면 순식간에 도망치는 것도 이때 습득한 파충류의 본능이다. 포식한 후 잠만 자는 악어를 생각해보자. 인간의 과식 본능과 혼자 있을 때의 게으름도 파충류의 뇌 덕분이다.
파충류의 뇌 위에 자리한 것은 구 포유류의 뇌다. 과거 인간으로 진화하기 전에 보냈던 그때의 뇌를 말한다. 이 부분은 특별히 변연계(limbic system)라 이름한다. 여기서 성욕과 식욕이 생기고, 욱하는 마음과 공포감, 사랑과 애정이 만들어진다. 짧은 기억을 저장하고 관리하는 것도 변연계의 각 기관들이 하는 역할이다. 물론 이것 말고도 중요한 기관들이 있지만, 너무 의학적인 개념이라 여기까지만 소개한다.
변연계(邊緣系)라는 말은 라틴어로 경계를 뜻한다. 이것을 한자어인 변연계로 변환했다. 경계를 뜻하는 변(邊)과 연결을 뜻하는 연(緣)이 이어진 말이 변연(邊緣)이다. 여기에 조직 혹은 체계를 뜻하는 계(系)가 이어져 최종 변연계라는 말이 생겼다. 따라서 변연계라는 두 개의 서로 다른 기관을 연결하는 두뇌의 기관이라는 말이 된다.
무엇과 무엇을 연결한단 말인가? 2층이 있어야 1층과 3층이 연결된다. 바로 그거다. 파충류의 뇌와 이성과 판단의 뇌인 대뇌피질을 연결하는 것이 변연계다. 변연계의 중심에 자리한 시상은 모든 감정 정보가 모이는 장소다. 말하자면, 감정 정보가 도착하는 터미널이다. 시상 밑에 있다 해서 시상하부로 붙여진 곳은 식욕과 성욕, 그리고 호르몬 분비를 조절하는 장소다. 이곳이 과민하면 욕망을 통제하기 힘들어진다. 다음으로 편도(편도체)가 있다. 편도는 사람의 감정을 통제하고 두려움을 조절한다. 해마는 기억을 조절하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새삼 따로 말할 필요가 없다.
이처럼 변연계는 사람의 감정과 관련된 중요한 기관들이 모여 있다. 이곳은 감정을 처리하고 기억을 저장하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공포, 분노, 애착, 기쁨, 슬픔, 사랑, 성욕 등 온갖 감정이 여기서 생성된다. 그렇게 생성된 감정들은 두뇌의 종합작전사령부에 해당하는 전전두엽으로 전달된다. 전전두엽은 이런 정보를 분석하고 판단해서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결정한다. 이 중에서도 ‘욱’하는 감정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장소가 편도다.
보통 때는 뇌의 세 개 층이 유기적으로 협조하면 잘 돌아간다. 각자 자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파충류의 뇌는 숨 쉬고 호흡하고 잘 먹고 잘 잔다. 변연계도 감정을 적절히 조절하며 먹을 양만큼 먹고 성욕도 잘 통제한다. 이런 정보를 제때 전전두엽으로 전달한다. 전전두엽은 정보를 제대로 입수해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린다. 인격과 덕망을 갖춘 사람은 전전두엽이 발달했다. 인내와 절제, 사유와 판단은 인간의 고차원적 행동이다. 전전두엽이 발달한 사람은 성공할 확률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