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대와 멸시를 받은 노랑
노란색 하면 노란색 어린이 통학 버스, 유치원 아이들의 앙증맞은 노란 모자, 노란 개나리꽃과 프리지어가 떠오른다. 비 오는 날이면 노란 우산과 노란 레인 코트를 입은 빗속의 여인도 아른거린다. 미국 팝 뮤직 그룹 토니 올랜도 & 던(Tony Orlando & Dawn)의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의 경쾌하면서도 애절한 가사는 연인을 기다리는 마음을 담은 떡갈나무에 걸린 수많은 노란색 손수건을 생각나게 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가수 이무진의 노래 '신호등'의 노란색과 오래전 가수 한명숙 씨가 불렀던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는 또 어떤가.
일상 속 노란색 이미지는 쌔고 쌨다. 대개 노란색은 밝고 경쾌한 느낌을 준다. 기분이 처질 때 밝은 노란색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노란색이 지금처럼 밝은 이미지를 갖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오히려 긴 세월 동안 노란색은 사람들로부터 천대받고 멸시받았다. 버림받고 외면받았던 노란색이 오늘날 환골탈태한 셈이다.
색의 역사를 살펴보면, 어떤 색이든 어둠의 시기를 겪다가 밝음의 시기를 맞는다. 죽음의 색으로 푸대접받다가 성모 마리아의 색으로 존중받는 파랑, 잔인한 피의 색에서 열정의 색으로 인정받는 빨강 등 모든 색은 두 가지 상징을 지닌다. 그중에서도 노란색은 다른 어떤 색보다 고통스럽고 참혹한 시간을 보냈다. 특히 유럽의 중세 천 년은 노란색에 처절한 오욕의 세월이자 고통의 흑역사라 할 수 있다.
에바 헬러 『색의 유혹』(예담, 2002)과 빅토리아 핀레이의 『컬러 여행』(아트북스, 2005)에서는 노랑을 유쾌하고 친절하고 낙관적이나 분노와 거짓, 시기와 질투, 노여움과 지옥 불의 색으로 묘사한다. 동시에 깨달음과 이성의 색이면서 멸시받는 배신자의 색이며 분열과 쇠퇴의 색이다.
안느 바리숑의 『The Color』(이종, 2013)를 보면, 많은 문화권에서 태양을 그릴 때, 그 빛과 열을 연상시키는 노랑으로 그린다. 노랑은 풍요로움을 뜻한다. 빛나는 노랑은 봄에 다시 피어나는 꽃의 색이자 가을 추수의 색이면 황금의 색이다. 동시에 그는 노랑은 가장 모순적인 색이라고 말한다. 노란색은 조금만 빛바래도 사막의 건조함, 가을의 흉작, 악마의 유황, 쓰디쓴 담즙을 상징한다.
개빈 에번스의 『컬러 인문학』(김영사, 2018)에 따르면, 중세 시대에 들어와 노랑은 몇 세기 동안 쇠락의 길을 걸었다. 달갑지 않고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지저분한 흰색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유럽 회화는 유다에게 노란색을 입혀 배신자의 색이 됐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반역자와 범죄자의 집 문을 노랗게 칠했다.
지금까지 살펴본 노랑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장 극적으로 묘사한 내용은 미셸 파스투로의 『색의 인문학』(미술문화, 2020)에 나온다. 미셀 파수투로의 중세의 노랑 이야기를 읽어보자. 노란색은 온갖 오명을 다 뒤집어쓴 색이다. 중세 시대의 노랑은 광기를 상징하는 색으로 여겨졌다. 많은 그림 속에서 광대나 미치광이들이 노란색 옷을 입은 모습으로 묘사됐다.
노란색을 좋아하는 동양인들과 달리, 유럽인들은 빛바랜 사진, 쓸쓸히 쓰러지는 낙엽, 배신자의 이미지로 노란색을 떠올린다. 그들에게 노랑은 유다의 옷 색깔, 화폐 위조범의 집 문에 칠해지던 색깔, 강제 수용소행 유대인들이 달아야 했던 ‘별’의 색깔이었다. 노란색은 빛바래고 누렇게 뜬 얼굴을 뜻하고, 속 쓰릴 때 올라오는 위액의 더러움을 상징했다. 노랑의 관점에서 본다면, 너무한 억울하다고 항변할 정도다.
왜 노란색은 이렇게 천대받았을까? 다시 미셀 파수투로의 설명을 들어보자. 그의 말에 따르면, 노란색은 항상 나쁜 이미지만은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서 노란색은 높이 평가받았다. 로마인들은 종교의식이나 결혼식 등에서 흔쾌히 노란색 옷을 입었다. 아시아나 남미에서는 노랑은 항상 훌륭한 대접을 받았다. 중국에서는 오로지 황제만이 노란색 옷을 입을 수 있었고, 중국인들에게 노랑은 권력과 부와 지혜를 상징하는 언제나 좋은 색이다.
미셸 파수투로는 중세 시대의 유럽인들이 노란색에 대한 관심이나 호감을 잃은 데는 금색과의 경쟁에서 패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금(gold)의 색이 노랑의 긍정적인 상징을 모두 가져가 버렸다는 것이다. 태양, 빛, 열기, 생명, 에너지, 환희, 권력 등 좋은 이미지는 금색으로 쏠렸다. 반면에 노란색은 식어 가는 색, 흐릿하고 슬픈 색의 이미지만 가지게 됐다. 가을, 쇠퇴, 질병을 상기시키면서 동시에 배반과 협잡, 거짓을 상징하는 색으로 남았다는 것이다.
노랑에도 쨍하고 해 뜰 날이 왔다.
인상파 화가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1850~1880년대에 이르면 노랑에도 볕이 들기 시작한다. 화가들이 실내에서 작업하다가 야외로 나가기 시작했다. 미술의 흐름도 구상미술에서 반추상 또는 추상미술로 흐름이 바뀌면서, 파랑, 빨강, 노랑의 원색으로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또 이 시기의 과학 발명품인 전기(電氣)의 발달로 밝은 노랑의 가치를 재평가했다. 그러면서 노랑의 가치가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빈센트 반 고흐를 '노란색의 화가'라고 한다. 고흐가 자신이 원하는 노란색을 내고자 노란색 물감을 먹기도 했다. 그는 지독하게 노란색을 사랑했다. 덕분에 그가 그림에서 보여준 노란색은 독보적이며 다른 사람이 쉽게 재현하기 어렵다. 그는 자신만의 노란색을 사용해 많은 그림을 남겼다.
고흐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27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37살까지 십 년 남짓 그림을 그렸다. 그는 불꽃 같은 삶을 살다 갔다. 파리의 몽마르트르 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 고흐의 그림들은 우울하고 어두운 색조였다. 그 후 프랑스 남부의 아를로 이사한 후 본격적으로 노란색을 사용했다. 아를에서 그린 <해바라기>, <노란 집>. <아를의 침실>, <밀밭>, <오베르 교회> 등에서 노란색을 마음껏 사용했다.
오방색五方色)의 중심, 노랑
한국과 중국은 예로부터 빨강, 파랑, 노랑, 주황, 까만색의 5가지 색을 동서와 남북, 그리고 중앙의 다섯 가지 방향을 나타낸다고 해서 오방색(五方色)이라 불렀다. 오방색은 오행사상(五行思想)에서 유래되었다. 세상을 크게 음과 양으로 나누고, 음과 양의 상호작용을 나무(木), 쇠(金), 흙(土), 불(火), 물(水의) 다섯 가지 재료와의 관계로 구분한다. 이들 다섯은 이로운 상생 관계와 해로운 상극 관계가 작용한다. 이 관계를 보고 길흉을 조절하는 것이 오방색과 오행사상의 철학이다.
오방색의 가운데 방향은 땅의 중심으로 해와 가장 가까운 곳이다. 따라서 빛과 광명을 상징하는 노란색이 한가운데 떡 버티고 있다. 노란색은 밝은색으로 중앙에서 만물을 관장하며 황금 들판의 곡식처럼 풍요와 부귀영화를 뜻한다. 이런 까닭에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노란색이 귀한 대접을 받았다.
오방색에서 동쪽은 태양이 떠오른 곳으로 나무가 많고 생명의 푸름이 무성하다. 초록이 많아 계절적으로는 봄을 뜻한다. 서쪽은 흰색으로 가을을 의미하고 음기를 나타낸다고 보았다. 남쪽은 붉은 태양을 담은 적색으로 생명의 근원인 양기를 나타내며 한여름의 뜨거움으로 기억한다. 북쪽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물로 보고 계절적으로는 겨울을 의미한다.
이처럼 동양에서는 노란색이 천지의 가운데 자리를 차지한다. 당시 세상의 중심이라는 중국 황제의 색이 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부위와 영화, 사물의 번창을 뜻하기 때문에 중국의 황제만이 노란색의 곤룡포를 입을 수 있었다. 개빈 에번스는 황제와 그의 아들들만이 노란색을 입을 수 있다는 법령은 당나라에서 청나라까지 무려 1,400년 동안이나 계속됐다고 말한다.
이슬람 세계에서도 노란색은 귀한 대접을 받았다. 사람들은 샤프란(saffron, 페르시아어)의 노란 꽃으로부터 천연의 노란색을 구했다. 샤프란은 한 뿌리에서 한두 송이의 꽃만 피고 색소는 꽃가루에만 들어 있다. 꽃송이의 노란 수술을 빼내는 일도 무척 까다롭다. 그래서 노란색 구하기가 무척 어렵다. 값비싼 샤파란의 노란색으로 물들인 옷을 입을 수 있는 사람은 이슬람 세계의 왕족이나 귀족밖에 없었다.
마음속 스마일 버튼을 누르자.
시간이 흐르면서 노란색의 지위도 조금씩 올라갔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그래픽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밥 햄블리(Bob Hambly)는 『컬러愛에 물들다』(리드리드출판, 2022)에서 노란색을 두드러지게 상징화한 것은 스마일 버튼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1963년 출시되자마자 행복과 기쁨의 상징이 되었다. 노랑은 미소와 흐뭇함을 전하는 즐거움의 색으로 지위가 격상했다. 희망과 깨달음은 상징인 노란색은 60년대에 가장 빛을 발한 색으로 60년대를 규정하는 색이 되었다고 말한다.
빨간색만큼 격정적이지는 않지만 노란색은 따뜻하고 온화한 미소를 짓게 한다. 최근 심리학적으로 노란색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헤준다고 알려졌다. 노란색은 뇌와 정신을 맑게 하고 지혜와 학문적 능력을 향상한다.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을 떠오르게 하며 의사결정 과정에서 논리적이고 분석 능력을 향상한다.
노랑은 눈부시며 명쾌하고, 밝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색이다. 밝은 노랑은 젊고 선명하며 외향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햇볕이 잘 드는, 따뜻한, 쾌활한, 좋은 기분, 절은, 사교적이라는 단어를 연상케 한다. 명도가 높은 노란색은 쉽게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때문에 어린이들의 비옷과 통학 버스의 색으로 흔히 사용된다. 이제 노랑은 밝은 기분을 주는 치유의 색으로까지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이처럼 색도 사회와 문화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과학과 기술의 변화를 따르기도 한다. 미셸 파스투로는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가 조금씩 가치를 회복하기 시작한 노랑은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말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참고 견디고 인내하다 보면 좋은 세상을 만난다. 버틸 때는 버티는 수밖에 없다. 어려우면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라고 외치자.
‘코로나19’와 우울감을 뜻하는 '블루(blue)’의 합성어인 코로나 블루가 몇 년째 계속된다. 물러가나 싶으면 또 난리를 피우는 코로나 19가 사람을 지치게 한다. 이럴 때 우리는 마음속에 노란색의 스마일 버튼을 달아야 한다. 그런 다음에 마음이 처지거나 울적할 때면 노란 버튼을 누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