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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Dec 05. 2022

하양, 웨딩드레스는 흰색이 아니었다. 그럼 언제부터?

산토리니의 카사비앙카(Casa Bianca, 하얀 집)

'산토리니' 사진 출처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716459#home


그리스 본토와 소아시아, 크레타섬을 둘러싼 곳에 에게해가 있다. 지중해와 더불어 아름다운 경관만큼이나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바다다. 이곳에 있는 산토리니섬은 언덕 위의 하얀 집으로 유명하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차곡차곡 쌓은 하얀색 집들이 코발트색 바다와 너무 잘 어울린다.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고, 짙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한 CF 장면이 빠지지 않는다. 

    

산토리니는 눈이 시린 코발트블루의 바다 위에 동그마니 자리한 작은 섬이다. 언덕을 따라 파란 지붕의 하얀 집들에 눈이 부신다. 에게해의 낭만과 서정이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무척 인기가 높은 여행지로 손꼽힌다. 지중해와 에게해 바닷가 마을이 다 그렇지만, 산토리는 그중에서도 특히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지녔다. 

 

산토리니는 원래 초승달 모양의 섬이었다. 아주 오랜 옛날에 엄청난 화산 폭발로 섬의 한 귀퉁이가 뭉텅 떨어져 나가 버렸다. 사람들은 깎아지른 절벽을 따라 집을 짓기 시작했다. 섬 전체에 쌓인 하얀 화산재를 파고 들어가 그 안에 집을 지었다. 언덕 위의 하얀 동굴 집은 에게해의 강렬한 빛을 반사했다. 뜨거운 햇살과 강풍을 피하기에도 좋았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마을 사람들은 파란 지붕을 가진 하얀 집 짓기를 이어왔다. 


1968년 이탈리아 출신의 가수 마리사 산니아(Marisa Sannia)가 '산레모 페스티벌'에서 불러 2위에 입상했던 노래 'Casa Bianca'를 들어보는 것도 좋다. 그리스 출신의 가수 비키 레안드로스(Vicky Leandros)가 'White House'로 리메이크한 노래가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했다. 산토리니는 너무 유명해진 관광지가 되어 살짝 아쉽긴 하다. 그렇지만, 푸른 바다와 어우러진 인공의 흰색도 무척 아름답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순백의 하얀 웨딩드레스

결혼하는 신부는 눈처럼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는다. 순결과 청순, 행복과 우아함을 뜻하는 흰색의 웨딩드레스는 결혼을 준비하는 여성들의 가장 중요한 품목이다. 누구나 당연히 그런 줄 아는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는 전통이 생긴 건 기껏해야 백 년 남짓 전이다.


『컬러 인문학』(김영사, 2018)을 쓴 개빈 에번스에 따르면 중세 유럽의 경우, 웨딩드레스가 흰색인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때 타기가 쉬워 관리가 어려웠던 까닭에서다. 부자와 귀족들은 빨간색과 화려한 색을 선호했다. 그들은 금실과 은실을 섞어 짠 비단에 수를 놓은 웨딩드레스를 입기도 했다.

      

표백 기술이 부족하던 당시에는 하얀색 옷은 관리가 힘들고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일반 가정의 여성은 새 드레스를 장만할 여유가 없었다. 더욱이 화려한 색상의 웨딩드레스는 꿈도 꾸지 못할 형편이라 웨딩드레스 색깔에 신경 쓰지 않았다. 가진 옷 중에서 결혼식에 가장 잘 어울리는 드레스를 입었다. 평소에도 입을 수 있는 파란색, 회색, 진주색, 갈색, 심지어 검은색을 웨딩드레스로 많이 선택했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과 알버트 왕자의 결혼식 장면https://www.joongang.co.kr/article/21951916#home



그러다가 1840년에 독일계 외사촌 알버트 경과 결혼한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은 대담하게 흰색 웨딩드레스를 선택했다. 빅토리아 여왕은 자신이 손수 짠 레이스를 자랑하려 흰색 웨딩드레스를 선택한 것이다. 그녀의 이런 결정은 화려한 색깔의 웨딩드레스가 대세였던 영국과 유럽의 결혼 문화에서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그 뒤부터 귀족의 딸들이 너도나도 흰색 드레스를 입기 시작했다. 그 후로도 한참 시간이 지나 1920년경 이후에야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는 것은 초혼인 신부에게는 필수로 자리 잡았다.   


흰색의 빛이 산란하면 색이 되고, 색을 모으면 다시 흰색의 빛이 된다.


뉴턴은 프리즘으로 빛을 분리해 색을 만들었다. 프리즘을 통과하는 빛은 서로 다른 파장을 가졌다. 파장의 길이에 따라 서로 다른 굴절률을 가진 빛이 여러 색으로 분산한다. 굴절률은 파장이 짧으면 짧을수록 크게 굴절한다. 파장이 가장 짧은 보라색이 가장 크게 굴절하고, 파장이 제일 긴 빨강이 가장 작게 굴절한다. 그림의 왼쪽에서 백색광이 들어와 프리즘을 통과한 빛이 일곱 색깔로 나뉜다.       


이렇게 산란한 일곱 가지 색을 다시 프리즘의 한 점으로 모으면 원래의 백색의 빛으로 돌아간다. 그림 오른쪽은 빛을 모으는 과정을 보여준다. 프리즘을 거꾸로 세워진 것은 분산된 빛을 한곳으로 모으기 위해서다. 이 실험을 통해 뉴턴은 ”흰색은 일반적인 빛의 색이다"라고 말했다. 모든 파장의 빛을 반사하면 색이 산란하지 않은 상태이니 그 자체가 흰색이다.


빛의 흰색은 모든 색이다. 색이 산란하기 전의 색, 색의 부재를 뜻한다. 안느 바리숑에서 러시아의 화가이자 예술 이론가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의 흰색에 관한 말이 나온다. 칸딘스키는 ”흰색은 침묵이다. 그러나 죽음의 침묵이 아닌, 가능성으로 가득한 침묵이다"라고 말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흰색을 근원적인 색이며 빛을 대표하는 색이라 했다. 흰색은 밝고 어두움의 명도만 있고 세상의 모든 빛을 합하면 흰색이 된다. 흰색은 빛이 산란하기 전의 색이고, 산란한 모든 색의 빛이 모이면 다시 흰색이 된다. 이처럼 흰색의 빛은 어떤 색이든 될 수 있고 다시 아무것도 아닌 흰색으로 돌아올 수 있다.      

존경과 애도의 흰색

파스투로는 자연에 있는 그 어떤 색깔에도 흰색처럼 세상을 통일하는 힘이 없다고 말한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흰색은 완벽하게 단색인 경우가 드물다. 화가들은 미묘하게 차이를 만들거나, 디테일의 변화를 주거나, 눈에 띄지 않게 얼룩을 남기고 싶은 유혹을 강하게 느낀다. 그는 순진무구한 흰색은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주는 듯하다고 진단한다.      


에바 헬러에 따르면 흰색은 색이 없는 색으로서 슬픔의 색이다. 죽은 사람에게 하얀 옷을 입히는 것은 슬픔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과 함께 희고 깨끗한 옷을 입고 부활을 기원하기 위함이다. 흰색은 순결함, 청순함, 그리고 성스러움을 상징하는 긍정적인 색깔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때론 흰색은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병색이 완연하고 나병에 걸려도 피부가 하얗게 변한다. 흰색은 이미 생명의 불이 꺼진 신체의 색이기도 하다. 나라마다 귀신이나 유령은 흰색이나 흰옷을 입고 나타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흰색의 순수성은 고인에 대한 존경을 나타내는 애도의 색이다. 과거에는 오랫동안 상복으로 흰색 옷을 입었다. 오늘날 서구에서는 검정이 주로 상복으로 사용되지만, 고인을 감쌀 때는 흰색 천을 사용한다. 조문객들은 엄숙함의 검은 상복을 입고 고인에게 존경을 표한다. 고인은 흰색을 입고 다음 세계로 갈 채비를 마친다.      

종종 흰색은 검정과의 대비를 통해 존재감을 확연히 드러낸다. 하양과 검정의 명도 차이가 강한 긴장감을 불러온다. 자유의 하양과 억압의 검정이 격렬하게 충돌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삶도 그렇다. 자유와 억압, 빛과 어둠, 하양과 검정, 행복과 절망 속에서 팽팽하게 긴장하며 살아간다.      


하얀 얼굴 미녀의 죽음

오래전 고대 이집트와 로마 시대부터 여성들은 납으로 만들어진 백색의 화장 파우더로 얼굴의 흠집이나 잡티를 가렸다. 그 이후엔 피부 미백에 강한 효과를 보이는 수은이 포함된 화장품을 사용했다. 아름다운 눈동자를 표현하기 위해 눈동자가 또렷해 보이는 독 성분의 안약을 눈에 넣기도 하였다.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고대 여성들 역시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것이다. 고대부터 시작된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끝없는 욕구는 철의 여인 엘리자베스 1세(1533~1603) 때 최악의 상황을 초래했다. 그녀는 얼굴의 마맛자국을 가리기 위해 하얗게 분칠했다.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녀의 하얀 얼굴이 고운 피부라 착각해 따라했다.      


여성들은 물론 심지어 남성들도 하얀 얼굴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이 초록색으로 변했고, 심지어 몸져눕는 사람도 많았다. 당연히 엘리자베스 1세의 건강도 나빠졌다. 하얀 피부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던 화장품의 납 성분이 문제였다. 많은 사람이 화장품 납 중독으로 죽거나 심한 부작용을 겪었다.


마리아 거닝,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그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소식은 당대 최고 자연 미인 마리아 거닝(Maria Gunning)의 죽음이다. 그녀는 패셔너블한 당시의 백랍 화장법에 매료됐다. 그녀는 두꺼운 백랍 크림과 붉은 납 립스틱을 사용했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망가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은 갈라지고 썩어 들어갔다. 27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한 그녀에게 남은 것은 부패한 얼굴과 몽땅 빠진 치아와 머리카락이었다.      


파란 마음 하얀 마음

마리아 거닝이 살던 시절에는 성형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화장품의 부작용이 심했으나, 성형 기술이 분부시게 발달한 현대에는 부작용이 거의 사라졌다. 몸은 부모님이 물려주셨지만, 얼굴은 ‘의느님’께서 선사했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다. 여기서 '의느님'은 '의사'와 '하느님'의 합성어다.


성형수술 자체를 반대하거나 나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예쁘고 잘생긴 얼굴을 일방적으로 높이 평가하는 사회 분위기다. 예쁜 외모가 주는 삶의 혜택이 많다. 잘생긴 사람이 일을 더 잘한다고 셍각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취업이나 승진에 불이익을 받는 것은 문제다. 외모에만 치중하고 내면이야 어떻든 상관없다는 세상인심이 성형을 부추긴다.      


예쁘면 모든 것이 다 용서된다면, 예쁘지 않으면 어떤 것도 용서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이건 정말 심각하게 불공정한 게임이다. 의식과 인식 같은 내면의 아름다움도 높이 평가해야 한다. 외면이 아름다운 사람도 있고,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도 많다. 속은 시커먼데 얼굴만 하얗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어릴 때 많이 불렀던 '파란 마음, 하얀 마음'의 동요를 보자. 2절의 가사를 음미하자.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겨울엔 겨울엔 하얄 거예요.

 산도 들도 지붕도 하얀 눈으로  

 하얗게 하얗게 덮인 속에서

 깨끗한 마음으로 자라니까요. '


하얗게 덮인 속에서 깨끗한 마음으로 자라는 어린이의 마음이 참 좋다. 그 시절은 깨끗한 하얀 마음만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잊어버린 그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가면 어떨까. 하얀 눈처럼 깨끗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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