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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Dec 06. 2022

혼술예찬

술 권하는 사회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소설가 현진건(玄鎭健, 1900~1943)이 1921년 발표한 소설 '술 권하는 사회'의 한 구절이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났다. 그때보다 지금이 나아졌을까? 여전히 대한민국은 여전히 술 권하는 사회다. 술에 관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매일 술을 권하고 있다. 하긴 이 말도 애주가의 변명에 불과할 수도 있겠다.      

    

나는 딱히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지금은 예전에 비해 술에 대해 관대해졌지만, 여전히 술을 기꺼이 찾는 편은 아니다. 옛날에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가끔 마셨다 하면 끝장을 보는 바람에 숙취로 고생했다. 과음한 다음 날의 두통과 쓰린 속 때문에 다음부터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으리라는 헛된 약속을 했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인데, 술에 관한 약속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      


세상일이라는 게 내 마음대로 된다면 후회할 일도 없고, 걱정거리도 없다. 얄궂게도 사는 일은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술을 쳐다보지 않겠다는 결심도 한 달이나 두 달이 지나면 잊는다. 가까운 지인들이 마련한 자리를 마다하기 힘들다. 한 잔 두 잔 기울이노라면, 술병은 일렬로 줄을 선다. 마치 잘 훈련받은 군인들의 열병식을 방불케 한다. 그런 밤이면 세상이 모두 내 것이고 못할 게 없이 의기양양하다.      


지금은 그렇게 폭주 기관차처럼 술을 마시지 않는다. 이 밤의 끝을 잡을 일도 없다. 나이가 들면서 술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뜻밖에 술의 참맛을 느끼기 시작했다. 과하지 않고, 그렇게 자주도 아니면서 기분이 좋을 만큼 마시는 술의 장점이 꽤 크다는 사실을 알았다. 술자리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적당히 기분을 좋게 한다.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것만큼 뛰어난 술의 장점이 또 있을까 싶다. 기분이 울적하거나 마음이 상했을 때 술을 마시면 쉬 풀린다. 누구나 삶이 버거울 때가 있다. 이럴 때 술을 한 잔 마시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부드럽게 만드는 힘도 또 다른 술의 장점이다. 평소 데면데면하고 어색한 사이도 술이 서너 잔 들어가면 친밀감이 급상승한다. 혈액 순환에 좋다거나 성인병 예방에도 좋다는 의학적 소견도 덤으로 붙인다.       


그렇다고 술이 늘 좋다는 건 아니다. 인간이 만든 발명품 가운데 술만큼 모순되고 논쟁적인 것은 없다. 술은 애주가들의 한없는 사랑과 찬사를 받는다. 반면에, 지나친 음주가 끼친 해악이 심각한 것도 사실이다. 술 때문에 벌어진 흉악하고도 민망한 일을 헤아릴 수도 없다. 매일 미디어를 통해 술 때문에 벌어진 각종 사고나 사건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니 무조건 좋다고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악의 근원이라 마냥 매도할 수만은 없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사람이 어떻게 절제하고 조절하느냐에 달렸다. 술에 관한 한 지나침이 모자람만 못하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은 진리에 가깝다.      


술과 사람

술과 사람 사이를 떼려야 뗄 수 없다. 애주가들이 남긴 명언이 이 세상의 술 종류만큼이나 차고 넘친다. 또 술을 사랑한 소설가나 시인, 화가와 음악가 이야기도 너무나 유명하다. 그 모든 명언의 공통점은 술은 마시는 사람이 문제지, 술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가운데 몇 가지만 추려보자.     

 

10세기경 중국 북송 때의 문인 구양수(歐陽修, 1007년 ~ 1072)는 ‘“술은 좋은 친구와 만나면 1,000잔으로도 부족하고,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과 말하는 것은 반 마디도 많다”라는 시를 남겼다. 구양수는 술의 좋은 점을 참 맛 갈 나게 표현했다.      


술 좋아하기로는 당나라의 시인 이백(李白, 701~762)을 따라올 사람이 누가 있을까. 동서고금을 돌아봐도 그만큼 뛰어난 시를 남긴 시인도 흔치 않다. 그런 이백과 쌍벽을 이루는 시인 두보(杜甫, 712~770)도 술 좋아하고 명시를 많이 남겼다. 두보는 이백에 대해 ‘이백은 술 한 말이면 시를 백 편 짓고 장안의 술집에서 잠을 잔다. 천자가 불러도 배에 오르지 않고 자칭 소신은 주중선(酒中仙)이라고 한다’라고 칭찬했다.      


서양에도 술을 사랑한 예술가와 문인들이 셀 수 없이 많다. 피카소, 고흐, 헤밍웨이 등 수많은 예술가가 술을 즐겼고, 술을 마신 상태에서 위대한 작품을 남겼다. 그들 중에는 너무 술을 많이 마시는 바람에 건강을 망친 사람들도 있다. ‘술·담배·연애를 포기한다면, 오래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단지 오래 산 것처럼 보일 뿐”이라고 말한 어느 문인의 말이 술 예찬으로는 백미에 속한다. 그렇다고 술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마시면 몸을 망치고 패가망신할 수도 있다.   

   

술 좋아하기로는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음주의 양과 횟수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한 번 마시면 끝장을 봐야 하는 화끈한 음주 습관도 세계적으로 소문이 퍼졌다. 위스키 한두 잔을 홀짝 마시고 수단 떠는 서양 사람과는 대조되는 마초(macho)의 모습이다. 오죽했으면 폭탄주를 세계적으로 전파하는 업적을 이뤄냈을까. 뭐 원활한 인간관계를 만들고 자기를 통제할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술을 좋아하는 이유를 잘 설명한 글로는 시인 조지훈(조지훈(趙芝薰, 1920~1968)의 '인정(人情)'을 들 수 있다. 그는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인정을 마시고, 술에 취하는 게 아니라 흥에 취한다”라고 했다. 카, 기가 막힌 말이다. 주당들이 술 마시는 것을 이보다 더 멋지게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다. 오늘 밤도 흥에 취하고 인정에 취하기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위한 아름다운 변명이다.

    

술이 마냥 좋은 건 아니다.

술을 왜 마실까? 기분이 좋아지니까 마신다. 술을 마시면 기분이 나빠지고 불쾌해지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당연히 술을 멀리할 것이다. 술을 마시면 알코올은 혈관을 지나 뇌로 들어간다. 뇌에 들어간 알코올은 쾌락 중추라고 불리는 뇌 보상회로를 자극한다. 뇌 보상회로는 쾌락 물질인 도파민을 생성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진다. 술자리를 한 사람과 친밀감이 높아지고, 나눈 대화와 술자리의 분위기가 즐겁다. 도파민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임에는 분명하다.           


우리의 뇌 신경세포는 갑작스러운 변화를 원래의 상태로 돌려놓으려는 항상성(恒常性) 기능이 있다. 인체가 스스로 만드는 도파민이면 상관없지만, 외부의 자극으로 생성되는 도파민의 분비를 일정 수준으로 통제한다. 술을 자주 마시다 보면, 도파민의 분비가 원래로 돌아간다. 마시지 않거나 조금 마시면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뇌가 알코올에 적응한 중독 상태에 빠진다. 즐거움을 느끼려면 더 자주, 더 많이 술을 마셔야 한다. 이쯤 되면 ‘맨날 술이야’하는 노랫가락이 절로 나오고, 뇌는 알코올에 젖어버린다.            


술을 마셔도 스스로 통제하며 즐기면 좋다. 자기 몸이 받쳐주고, 정신 건강에 문제가 없다면 상관없다. 뇌가 알코올을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그것에 반응하지 않으면 된다. 평소 자기 주량대로, 또 자기가 마시는 횟수대로만 조절하면 그리 큰 문제가 없다. 술에 약한 사람도 많지만, 또 자기 관리에 철저히 하면서 술을 즐기는 사람도 많다. 술을 마셔도 주변을 잘 정리하고, 오히려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술을 제대로 마실 줄 아는 주선(酒仙)이라 불러도 좋다.        

   

문제는 술을 조절하니 못하는 사람들이다. 술을 마시는 횟수와 양이 늘어나면 위험 신호가 발생한 것이다. 알코올이 생성하는 도파민에 중독성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술 때문에 사고를 일으킬 공산이 크다. 술을 너무 많이 마시면 기억을 관리하는 뇌의 해마가 잠들어 버린다. 흔히 말하는 필름이 끊어지는 일이 일어난다. 이렇게 되면 우리 뇌 안쪽에 자리한 개의 뇌가 튀어나온다. 술 마시면 개가 된다는 말이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이 밤에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를 일이다. 이런 사람은 특히 술을 조심하고 멀리해야 한다.    

     

술은 술을 부르는 묘한 속성이 있다. 한 번 제대로 발동 걸리면 뿌리를 뽑으려는 게 그리 향기롭지 않은 음주 습관이다. 그렇다고 혼자 자리를 박차고 나오기도 뭐하고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면 밤이 깊어진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과음하는 사람은 그리 없다. 마시다 보니 과음하게 된다. 여러 사람과 마시는 술자리에는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그래서 나는 불붙은 술자리에서 슬쩍 자리를 떠난다.    

  

여러 사람과 어울려 마시는 술이 즐겁긴 하지만, 대개 시간이 늦어진다. 마시는 양도 많아지기에 그다음 날 몸이 부대끼기가 십상이다. 알코올이 분해할 때 생기는 아세트알데히드를 잘 해독하지 못하는 사람은 고생한다. 심한 두통이나 구토에 시달리며 다음 날을 몽롱하게 보내기도 한다. 이런 상태가 반복된다면 술이 몸에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여러 사람이 어울려 술을 마시다 보면 분위기에 취해 마시는 술의 양이 늘어나기 쉽다. 가능하면 술자리를 자주 갖지 않거나 알아서 자기 주량을 조절해야 한다.       


혼술예찬

최근 혼자 마시는 술의 즐거움이랄까, 이걸 배워가는 중이다. 아직 집에서 술을 마시는 일이 익숙지 않다. 평소 집에서 거의 술을 마시지 않은 탓이라 처음에 혼술할 때는 아내가 놀랐다. 밖에서 뭔 일 있느냐고 걱정했다. 지금은 한두 달에 한 번쯤 집에서 캔 맥주 하나를 마시곤 하니 별말이 없다. 아직은 그리 횟수가 많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집에서 가끔 혼자 마시는 술의 장점이 많다. 과하게 마시지 않는다. 마시고 샤워하고 잠자리에 들면 숙면을 취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술자리를 한사코 마다한다는 뜻은 아니다. 가끔은 고독하게 홀로 술을 즐기는 것도 좋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이 싫어서 고독 속으로 도피하려는 의도도 전혀 없다. 거창하게 ‘고독한 군중’을 들먹일 필요도 없지만, 군중 속에 있어도 원초적인 고독은 피할 수 없다. 잠시 잊고 웃고 떠드는 순간에 위안받을 수는 있다. 그러니 외로움과 고독을 홀로 즐기는 훈련을 하는 것도 좋다. 


‘혼술’을 하다 보면, 혼자만의 세계에 침잠할 수 있다. 적당하게 자기 몸에 맞게끔 즐기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 술이 갖는 장점 가운데 좋은 점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자주, 너무 많이 마시는 건 삼가할 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자기 주량에 따라야 한다는 사실이다. 술이 사람을 뭐라고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마시는 사람이 절제하지 못해 항상 탈이 난다. 술자리에서 보여주는 절제의 미학은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다울 것이다.  


내가 ‘혼술’을 배우게 된 까닭은 딱히 술을 즐기려는 의도 때문이 아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그닥 술과  친해지지 않는 체질이다. 그보다는 고장 난 생체시계(biological clock) 때문에 가끔 '혼술'을 하려 한다. 나이가 들면서 일어나는 생체 리듬의 변화를 보정하기 위한 수단이다. 어떻게 보면 나름 슬기롭게 나이 들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거기다 과하지 않은 기분 좋음을 덤으로 얻으려 한다. 


사진 출처 : https://www.kocannews.com/column/kl5dphha86a5ax4e3d494rcl8ngypc


다음 글에서는 고장 난 생체시계와 함께 '슬기롭게 나이 듦'을 이야기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백의 시 ‘월하독작(月下獨酌)’을 감상하자. 달 아래 혼자 술을 마신다는 제목에서 ‘혼술예찬’임을 느낄 수 있다. 혼술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한 시를 본 적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워낙 유명한 시라 원문은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으니 해석판을 읽어 보자.      


‘꽃나무 사이에서 한 병의 술을

 홀로 따르네, 아무도 없이.

 잔 들고 밝은 달을 맞으니

 그림자와 나와 달이 셋이 되었네.

 달은 술 마실 줄을 모르고

 그림자는 나를 따르기만 하네.

 잠시나마 달과 그림자 함께 있으니

 봄이 가기 전에 즐겨야 하지.

 내가 노래하면 달은 거닐고

 내가 춤추면 그림자도 따라 춤추네.

 함께 즐거이 술을 마시고

 취하면 각자 헤어지는 거.

 무정한 교유를 길이 맺었으니

 다음엔 저 은하에서 우리 만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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