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특권의 상실과 대학의 위기
중세 대학은 그들만의 리그를 즐기며 차츰 권위주의에빠진다. 워낙 막강한 권한을 가진 대학이라 안주하기 시작했다. 대학이 가진 각종 특권과 혜택은 가만히 있어도 학생들을 모으기에 충분한 당근이다. 몰려드는 학생들을 주체하지 못한 대학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도시와 사이가 좋지 않거나 수틀리면 대학은 어디든지 옮겨갈 수 있었다. 유럽 내 어떤 대학에서든 라틴어로 공통 과목의 강의가 이루어진다. 대학 교수들도 자리 잡을 걱정이 없다. 이 시기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학의 황금기였다.
배가 부르면 게을러지는 것이 세상이치다. 사람이든, 조직이든 다 같은 모양이다. 대학은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이는 데 인색하고, 지적 자산의 공유라는 직분을 게을리했다. 그들만의 성역에 안주하고 캠퍼스라는 지식 플랫폼에 머물렀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고 생로병사의 원칙을 벗어날 수 없다. 아무리 예쁜 꽃이라도 영원히 만개할 수 없고, 둥근 보름달도 이내 이지러진다. 그렇듯이 중세에 세워진 대학도 탄생과 성숙의 시기를 지나면서 점차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중세 대학의 쇠퇴에는 대학 교류와 이전의 제한, 대학의 특권 박탈, 흑사병 창궐, 인쇄술의 발달 등 많은 이유가 있다. 중세 말기 강력해진 왕은 왕국의 경계선을 명확히 구분했다. 자연 교수와 학생이 국가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이동의 자유가 사라졌다. 대학 발전의 기폭제가 되었던 지식 교류의 네트워크가 끊어졌다. 대학의 거주와 이동, 상호교류의 자유가 사라진 것이다. 이제 대학은 각자 자기 도시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운명을 맞이했다.
대학이 위기를 맞게 된 결정타는 대학 자치권의 상실이다. 절대 왕권이 대학 자치권을 회수하기 시작하자 대학은 쇠퇴의 길로 걸어갔다. 중세의 몰락은 왕권 강화로 나타났고, 강화된 왕권은 대학의 권력을 제한했다. 국가 간의 경계선이 엄격하게 구분되자 대학의 교류와 이동에 제동이 걸렸다. 교수와 학생의 인적 교류의 자유가 단절되자 정보의 전달과 교육 기능도 급속히 약화했다. 게다가 도시의 팽창도 한계에 도달하자 대학은 붕괴하기 시작했다.
대학의 성장과 쇠퇴를 주도한 인쇄 출판물의 확산
인쇄 기술의 발달은 대학의 황금기를 불어왔지만, 동시에 대학이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게 하는 족쇄가 되었다. 대량으로 유포된 출판물을 활용한 전문학교, 살롱이라는 교육기관이 속속 등장했다. 인문학자, 예술가, 과학자가 그곳에 만나 서로의 지식을 공유했다. 이곳에서 전문가들이 모여 함께 토론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중세 대학의 자기들만의 리그라는 고리타분한 교육 방식에 대응하는 새로운 지식 공유 플랫폼 개척한 것이다.
중세 대학은 교회가 독점하던 지식을 대학으로 가져옴으로써 서양 학문의 발전을 이끌었다. 최초의 대학들에서는 교회의 영향력이 여전히 막강했고 교수와 학생들 역시 성직자에 가까웠다. 그러나 대학이 추구했던 학문은 수도원이나 교회보다는 합리적이고 사람들의 입맛에 맞았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인문주의, 종교개혁, 과학혁명 등으로 대표되는 서양의 근대 지성이 싹틀 수 있었다. 대학은 지식 분야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중세 유럽의 성장과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중세를 지나고 17세기에 접어들면서 대학은 급격히 변화하는 사회에 응답하지 못했다. 학문의 체계, 교육 내용, 학부의 구성 등에 전혀 변화가 없었다. 16세기의 종교적 분열은 대학을 더욱 경직시켰다. 학문은 철저하게 종교에 종속되었고, 종교적 차이는 대학에서 배척당했다. 무엇보다 근대 사회의 발전을 견인할 과학 기술의 혁신이 대학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자연과학이나 기계공학을 연구하는 인력이 늘고 공간은 확대되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시대적 요구는 대학에서 무시되었다. 전통과 권위를 중시하며 이론 중심의 학습에 초점이 맞춰진 대학의 분위기에서 과학과 기술이 교육 과정에 편입되기 어려웠다.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대학이 새로운 교육기관과의 경쟁에서 밀리자 대학 개혁의 목소리가 커졌다. 새로 생긴 고등교육기관들이 대학과 경쟁하는 상황은 대학이 위기에 처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대학이 가르치는 학문과 사회가 요구하는 지식 사이의 괴리가 생겼다. 또 대학의 학문적 전통과 사회적 요구 사이의 간극이 커졌다. 이러한 다양한 요인으로 유럽의 국가들은 새로운 체제와 교육 이념을 가진 대학을 적극으로 설립했다.
유럽 대학의 성공과 학문적 성과에 자극받은 미국 정부도 대학 설립을 지원했다. 하버드 대학, 윌리엄메리 대학, 예일 대학, 존스 홉킨스 대학 등이 이 시기에 세상에 명함을 내밀었다. 학문의 패권이 유럽 대학에서 미국 대학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의 학생들은 대거 유럽 대학의 대학원으로 유학 갔다. 연구 중심 교육 이념을 표방한 존스 홉킨스 대학이 설립되자 유럽으로 건너가는 미국 학생들의 발길도 잦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