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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Jan 11. 2023

잘 보기 위해 눈을 감는다.

잘 보기 위해 눈을 감는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폴 고갱(Eugène Henri Paul Gauguin, 1848-1903)은 대상을 단순화하고, 강렬한 색채를 사용해 그림을 그렸다. 그에게 그림은 현실을 기록하거나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울리는 것이다. 그의 생각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은 “미술은 눈으로 본 것 이상이어야 한다."라는 말이다. 그는 눈앞의 대상을 지나치게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자세히 베끼다 보면 미술이 갖는 정신적인 면이 흐려진다는 말했다. 

<언제 결혼하니?(1890)> 고갱 77×101㎝ 


고갱은 또 ”잘 보기 위해 눈을 감는다"라고 말했다. 눈을 감았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눈을 감은 상태에서 대상을 단순화하고 자기만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의 그림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리지 않고 창조적인 상상력을 가미하고 새로운 색감을 시도했다. 그는 단순하지만 원색의 강렬한 힘을 뿜어내는 걸작을 많이 남겼다.  


우리는 잘 보기 위해 눈을 부릅뜨지만, 고갱은 반대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잡념이 사라지고 오롯이 대상에 생각을 집중할 수 있다. 그럴수록 머릿속 이미지가 선명하고 또렷해진다. 그 이미지는 대상을 과학적 분석한 것이 아니라 화가의 상상력과 정신이 담긴 것이다. 화가가 좋은 그림을 그리는 비결은 바로 눈을 잘 감고, 남다른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펴기 때문이다.  


좋은 글을 쓰는 일에도 눈을 감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의 글뿐만 아니라 자기 글을 잘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잘 읽으려면 눈을 감고 음미하며 작가가 전하는 말을 머릿속에서 펼쳐야 한다. 물론 글을 쓰는 중에도 눈을 감고 하고자 하는 말을 미리 그려두는 것이 좋다. 자신만의 세상을 이미지화한 후 그것을 글로 옮겨야 한다. 작가의 상상력과 창조성이 담긴 글이 되어야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눈을 감는 것은 단순히 동공을 닫는 생리적 활동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무슨 말을 할지, 무엇을 그릴지 머릿속에 이미지화하는 행동이다. 어떤 것을 상상할지는 각자의 재능과 실력에 달렸다. 솜씨가 빼어난 사람은 마치 영화 필름처럼  훌륭한 이미지를 펼쳐 낼 것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제대로 된 구상을 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겨우 한두 줄의 글을 쓰거나 캔버스에 헝클어진 선만 잔뜩 그려놓는다. 


좋은 글은 문장이 유려하고 읽기가 부드럽다. 읽으면 입에 감기고 표현이 감칠맛 난다. 군더더기 없고 매끄러운 묘사는 글을 아름답게 만든다. 단어의 배치와 구성이 흠잡을 데 없고, 짜임새 또한 세련미가 넘친다. 그런 글은 스토리까지 탄탄하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글이 된다.


그림 그리는 작업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글과 그림은 묘사 방법은 다르지만, 그 과정만큼은 닮았다. 좋은 그림도 소재와 색감이 아름답고 붓질이 매끄러워야 한다. 색칠에 군더더기가 없어야 그림이 깔끔하다. 화가의 맵시 좋은 손끝에서 공간 구성과 구도도 흠잡을 데 없다. 색감, 구도, 붓의 질감에다 스토리까지 받쳐준다면 걸작이 탄생한다.


하나의 풍경, 그림과 시


<나와 마을(1911)> 유성페인트 1.92m x 1.51m 뉴욕 현대 미술관


러시아 출신의 화가 마르크 샤갈(Marc Zakharovich Chagall, 1887~1985)이 그린 고향 마을 풍경이다. 샤갈은 과거 러시아에 속했지만, 지금은 벨라루스에 속하는 작은 마을 비테프스코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렸다. 유대인이 마을 주민의 50%가 넘을 정도로 유대인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샤갈은 프랑스에서 살면서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며, 고향 마을을 주제로 많은 그림을 남겼다.


<나와 마을(1911)>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샤갈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마주한 커다란 암소 얼굴과 초록색의 사람 얼굴, 강렬하고 원색적인 색채의 대비는 고향의 유대인 전통을 표현한 것이다. 그의 그림에서 빠지지 않는 초록색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뜻한다. 꿈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는 몽환적인 그림에서 샤갈의 상상력과 간절함이 돋보인다. 


 

<비테프스크 위에서(1920)> Oil on canvas, 67cmx92.7cm 뉴욕현대미술관


그림 <비테프스크 위에서(1915~20)>에서는 눈이 하얗게 도시를 덮고 있는 황량한 겨울 풍경이다. 어깨에 자루를 메고 손에는 지팡이를 쥔 남자가 허공을 날고 있다. 마을의 가로등과 하늘 위의 남자도 비스듬히 기울어져 불안하다. 보따리를 메고 눈 덮인 마을 위를 날아가는 사내는 방랑하는 유대 민족과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떠도는 샤갈 자신을 묘사했다.  


샤갈의 그림을 본 시인 김춘수는 1969년《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라는 시를 썼다. 방황하는 샤갈의 슬픔과 마을 풍경을 시인은 훌륭한 글로 표현했다.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精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精脈)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삼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 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멋진 그림을 보면 시가 생각나고 이야기를 떠올린다. 샤갈의 그림을 보고 받은 감동을 김춘수 시인은 멋진 글로 풀어놓았다. 샤갈은 고향 비테프스크의 추억을 그림으로 그렸고, 김춘수 시인은 그것을 시로 썼다. 말하자면, 작가는 글로 마을 풍경을 그리고, 화가는 그림으로 마을 풍경을 그린 것이다.  


화가나 작가가 풍경과 대상을 묘사하는 것은 같다. 그림을 그리는 일과 글을 쓰는 일은 대상, 심지어 사람의 내면까지도 표현한다는 점에서 같다. 다만 표현하는 도구가 다를 뿐이다. 화가는 붓과 물감으로 캔버스에 그리고, 작가는 펜과 연필로 종이 위에 그린다. 하긴 요즘은 화가도 아이패드를 사용하고, 글 쓰는 사람은 키보드를 두드린다. 


글과 그림은 서로 다른 장르이지만, 눈으로 본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풍경을 화폭에 담으면 그림이 되고, 풍경을 글로 옮기면 시가 된다. 글도 그림처럼 잘 쓰기 위해서는 눈을 감아야 한다. 눈을 감고 음미하고 생각할 때 글의 느낌이 달라질 것이다. 좋은 작품을 지으려면 끊임없이 눈을 감고 명상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내면을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다.


눈을 잘 감는 사람은 재능이 있다. 문제는 재능 없는 사람이다. 타고난 솜씨가 없다면 죽어라 하고 공부하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라도 하면 겨우 그들의 발뒤꿈치라도 따라갈지 모르겠다. 오르지 못할 나무라고 지레 포기할 것은 아니다. 노력의 사다리라도 걸치면 조금은 나아질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스토리로 남기기 위해 그림일기를 시작했다. 부족하거나 아쉬운 점을 적는 것은 눈을 감고 사색하는 시간이다. 어디가 잘못되고 있는지, 붓질이 왜 서툰지를 기록하며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글도 좋아지고 그림도 나아지겠지. 그것만으로도 스토리가 될 거라는 바람으로 이번 매거진의 제목을 '글 짓는 그림일기'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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