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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이 끊기면 개가 되는 별난 침팬지

by Henry

화석화된 별난 침팬지의 본능과 욕망

사진 출처 https://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60626601004


대뇌 생리학자는 폴 맥클린(Paul D. MacLean)에 따르면, 인간의 뇌에는 진화의 흔적으로 파충류, 포유류, 영장류의 3층 구조로 되어 있다. 최초 아메바 같은 단세포에서 출발한 원시 생명체는 몇 차례 모양을 종의 변화를 거듭한 끝에 지구의 주인인 호모사피엔스로 진화했다. 그렇게 되기까지 약 40억 년의 긴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 중 파충류 단계 이후의 진화 흔적이 우리 두뇌에 남아 있다는 것이 맥클린의 주장이다. 그는 인간의 뇌에 여전히 악어의 뇌와 개의 뇌가 남아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인간의 뇌는 신의 실패작이라고 말한다.


맥클린은 인간의 뇌는 진화 과정에서 제일 먼저 등장한 파충류 뇌, 그다음 포유류 뇌, 그리고 제일 늦게 인간 뇌인 신포유류의 뇌가 등장했다. 그렇게 뇌가 발달해 온 것이다. 제일 안쪽에 파충류의 뇌인 뇌간, 그 위에 변연계라고도 부르는 구 포유류의 뇌, 제일 위에 신포유류의 뇌가 자리한다. 말하자면 인간의 뇌는 1층은 파충류의 뇌, 2층은 욕망이 들끓는 구 포유류의 뇌, 3층은 이성과 통제의 뇌로 이루어진 3층 빌딩이다.


https://21erick.org/column/865/



파충류의 뇌는 수면, 종족 보존을 위한 짝짓기, 살기 위해 먹기, 숨쉬기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 기능을 담당한다. 이 기능은 우리 뇌 깊숙이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는 인간의 기본 욕구다. 이들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인간은 살지 못하거나 후손을 이어가지 못한다. 이것을 자극하면 인간도 뱀이나 악어처럼 공격적으로 돌변한다.


구 포유류의 뇌는 시각, 청각, 촉각, 후각에 의해 받아들인 정보를 처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감정과 욕망을 생성한다. 다른 말로 변연계(bimbic system)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원래 라틴어의 경계라는 말에서 나왔다. 제일 바깥쪽 인간의 뇌와 제일 안쪽 파충류의 뇌를 연결하는 경계에 있다는 뜻이다. 이곳에서는 분노, 기쁨, 슬픔 등의 감정과 애착, 성욕 등 욕망을 만들어 낸다. 욕망은 늘 빛깔이 곱고 감미로워 펄펄 끓어 넘친다.


제일 바깥쪽은 이성과 지성, 그리고 논리적인 사고를 담당하는 뇌가 있다. 이 부분은 다른 말로 대뇌피질 혹은 신피질이라 부른다. 이곳에서 감각기관이 받아들인 외부의 정보를 분석하고 처리한다. 인간의 뇌는 학습, 추론, 종합 사유의 기능을 수행하며 문명 발전을 이끌었다. 다른 모든 생명체보다 발달한 신피질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었다.


술에 취하면 개가 되는 별난 침팬지

평소에는 파충류, 포유류, 이성의 뇌가 서로 잘 협력한다. 잘 소통하고 협조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기면 이들의 조화가 깨진다. 불시에 누군가 공격하거나 욕을 하면 순간적으로 발끈한다. 이성의 뇌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먼저 감정의 뇌가 반응한다. 변연계가 예민한 사람은 참지 못하고 감정을 폭발하고, 눈이 뒤집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다. 이성의 뇌와 변연계 사이의 소통이 끊어져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 것이다.


우리 머릿속에는 악어와 뱀, 늑대와 개, 그리고 이성의 뇌가 공존한다. 이들은 평소에는 잘 지내지만, 과음하거나 열받으면 문제가 생긴다. 인간의 뇌가 마비되는 순간 개나 늑대의 뇌가 튀어나와 별 해괴망측한 일을 벌인다. 겉으로는 온순한 사람이 순간적으로 욱하고 화를 폭발한다. 이것은 인간의 뇌와 파충류의 뇌 그리고 포유류의 뇌가 따로 놀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흔히 술을 많이 마시면 흔히 필름이 끊어졌다고 말한다. 혈관에 흡수된 많은 양의 알코올이 기억을 담당하는 변연계의 해마를 잠들게 만든다. 해마가 잠들면 신피질로 정보를 올려 보내는 작업이 중단된다. 인간의 뇌도 통제 기능을 상실하고 같이 잠든다. 남는 것은 잠들지 않은 파충류의 뇌와 구 포유류의 뇌이다. 변연계의 욕망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얄궂은 행동을 보인다. 술에 취해 온갖 추태를 부리는 별난 침팬지를 보면 개가 되었다고 혀를 찬다.


이렇게 인간의 뇌를 해석하면 사람들의 행동을 꽤 잘 설명한다. 맥클린의 이론이 지지되려면, 정말 우리의 두뇌가 진화 과정에서 한 층씩 두뇌를 쌓아 올렸는지가 실증적 연구로 보완해야 한다. 맥클린이 포유류에게서만 나타난다고 주장했던 부위들이 실제로는 파충류와 조류 모두에서 나타난다. 게다가 사회생활을 하는 두뇌는 포유류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조류, 파충류, 양서류에도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맥클린의 뇌의 3 층구조 이론이 아직은 불완전하다.


폴 맥클레인의 뇌의 3층 구조 이론에 대해 비판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뇌를 3단계로 구분하는 것이 너무 단순하지만, 뇌 안쪽 부위의 기능을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이 이론이 뇌에 관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증명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우리의 뇌가 욕망과 이성 사이에서 방황하는지 이유를 잘 설명한다. 뇌의 3층 구조는 나무에 오르기 전에 형성된 별난 침팬지 기억 화석이라 할 수 있다.


성격이 급하거나 심하게 욱하는 사람이라면 변연계가 과민하지 않은지 고민해봐야 한다. 조금만 싫은 소리를 들어도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길길이 날뛰면서 폭력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면 변연계 조절에 문제가 있다. 이성의 뇌가 감정과 욕망을 제어하는 끈을 순간적으로 놓친다. 이런 사람은 뇌회로를 바꿔야 하는데, 열심히 노력하면 바꿀 수 있다. 별난 침팬지의 화석화된 기억도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음을 희망으로 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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